기술 수출은 이제 K-바이오를 설명하는 익숙한 언어가 됐다. 어느 기업이 얼마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는지, 선급금은 얼마인지,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은 어떻게 구성됐는지가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처럼 받아들여진다.
2017년 정부가 제약·바이오를 미래 신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한 이후 기술 수출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성과 지표로 자리 잡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 규모가 13조원을 넘어선 것도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다. 국내 기업이 신약 하나를 끝까지 개발하기에는 현실적인 부담이 크다. 신약 개발의 최대 고비인 임상 3상은 통상 환자 1000~3000명을 대상으로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최종 검증하는 단계다. 자체 글로벌 판매망을 갖춘 기업도 손에 꼽힌다.
국내 기업들이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기술 수출을 선택해 온 것은 연구개발(R&D)을 이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전략이다. 다만 상업화 과정에서 창출되는 가장 큰 부가가치가 기술을 이전받은 글로벌 제약사 몫으로 돌아가는 구조는 늘 아쉬운 부분이다.
기술 수출 시 발표되는 계약 총액이 주목받지만 실제 선급금은 계약 구조에 따라 총액의 2~3%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술 수출은 분명 필요한 전략이지만 산업의 경쟁력이 기술 수출에 멈춰서는 안 된다. 국내 기업이 더 긴 호흡의 개발을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것이 장기적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전문가들이 국민성장펀드와 성공불융자, 메가펀드 확대 등 자본 소통을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금 부담 때문에 개발을 포기하거나 너무 이른 단계에서 기술을 이전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최근 정부가 바이오 지원 확대에 나서는 것은 반가운 변화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예산 규모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느냐에 달려 있다. 특히 글로벌 빅파마들이 매년 수십조 원을 R&D에 투자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정된 정책 자금은 규모보다 방향이 중요해진다.
여러 기업에 소액을 나누는 방식이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후기 단계에 지원이 집중되는 방식으로는 산업의 체질을 바꾸기 어렵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민성장펀드 역시 고위험 리스크를 분담하기보다는 임상 후기나 상용화 단계 등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분야에 자금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며 "공공 자금이라면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을 먼저 메우는 역할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 자금은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구간을 메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초기 스타트업이 개념검증(PoC) 단계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기업의 존폐가 걸린 임상 3상에서는 R&D 리스크를 함께 분담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래야 민간 자본도 후속 투자에 나설 수 있고, 국내 기업도 기술 수출 이후를 선택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정책 자금마저 민간 투자와 같은 기준으로 움직인다면 존재 이유는 희미해진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후기 단계나 대형 기업에 지원이 쏠릴수록 정작 자금이 절실한 초기 혁신기업은 시장에서 버틸 여력을 잃게 된다.
기술 수출은 K-바이오가 쌓아온 중요한 성과다. 이제 축적해야 할 것은 계약 건수가 아니라 기술 수출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지 않는 산업 구조다. 국내 기업이 끝까지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기술 수출 다음에 준비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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