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의 시시비비] 미국이 지키려 한 것은 엔화가 아니었다

국제 금융시장은 종종 예상 밖의 방식으로 움직인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면 답을 찾기 어렵다. 최근 미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고 엔화 가치 방어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은 미국이 동맹국인 일본을 돕기 위해 나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외교와 다르다. 국제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언제나 자국의 이익이다. 이번 조치 역시 일본을 위한 지원이라기보다 미국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최근 엔화 가치는 4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본 정부가 환율을 방어하려면 대규모 달러가 필요하다. 문제는 그 달러를 마련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미국 국채를 파는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세계 최대 수준의 미국 국채 보유국이다. 만약 일본이 시장에서 대규모 국채 매도에 나선다면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장기금리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금리 상승은 미국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른다. 이미 막대한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 정부 역시 더 비싼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결국 일본의 환율 방어가 미국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이 지점에서 등장한 것이 미국 연준이 도입한 달러화 자금 공급 제도인 'FIMA 레포(Repo)'다. 이름은 낯설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미국 국채를 시장에 팔지 말고 연방준비제도에 담보로 맡기면 필요한 달러를 빌려주겠다는 제도다. 일본은 국채를 처분하지 않고도 달러를 확보할 수 있고, 미국은 국채시장에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겉으로는 일본의 환율 방어를 지원하는 장치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채시장을 보호하는 안전판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금융정책의 변화다. 과거에는 위기가 발생하면 기준금리나 양적완화 같은 거시정책이 중심이었다. 이제는 시장의 충격이 발생하기 전에 유동성을 공급해 위험을 흡수하는 미세조정 방식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FIMA Repo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시장이 흔들린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가능성 자체를 줄이려는 접근이다.

물론 이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열쇠는 아니다. 미국 장기금리는 물가와 연준의 통화정책, 재정적자, 국채 발행 규모, 글로벌 투자자의 수요 등 수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FIMA Repo 하나만으로 장기금리가 안정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시장이 가장 우려하는 급격한 국채 투매를 막는다는 점에서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은 미국 금리와 환율 변화에 민감한 개방경제다. 미국 장기금리가 흔들리면 외국인 자금의 흐름이 바뀌고 원·달러 환율도 영향을 받는다. 국내 채권시장과 증시 역시 자유롭지 않다. 환율을 이해하려면 더 이상 외환시장만 봐서는 안 된다. 미국 국채시장의 움직임까지 함께 읽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번 사례는 국제금융의 본질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국가는 동맹을 이야기하지만 금융은 이해관계를 계산한다. 미국이 일본을 도운 이유도 결국 미국 경제와 달러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세계 기축통화를 가진 나라조차 국채시장의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현실은 금융시장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국제금융은 언제나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게임이다. 눈앞의 환율보다 그 뒤에 있는 국채를, 국채 뒤에 있는 달러를, 그리고 달러 뒤에 있는 미국의 전략을 읽어야 한다. FIMA Repo는 단순한 유동성 공급 제도가 아니다. 미국이 금융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새로운 방어 방식이며, 오늘날 세계 금융질서가 어디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엔화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미국의 의도를 읽을 때 비로소 국제금융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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