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의 세상읽기] 이재명 대통령에게 드리는 고언 -권력을 비추는 15개의 거울

  • 일치일란의 역사 앞에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묻는 '좋은 정치'의 길

정치는 무엇인가. 권력을 얻는 기술인가, 권력을 유지하는 기술인가. 선거에서 이기는 일인가, 여론조사의 지지율을 관리하는 일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끌어안아 한 시대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일인가.

동서고금의 정치철학은 수천 년 동안 이 문제를 물어왔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고, 공자와 맹자는 정치의 근본에 인의(仁義)와 민심을 놓았다. 노자는 지나치게 세상을 휘어잡으려 하지 말라고 했으며, 《중용》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균형의 지혜를 가르쳤다. 불교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경계했고, 성경은 높은 자일수록 더 많이 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시대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철학도 다르지만 한 곳에서 만난다.

권력이 자신을 위해 존재하기 시작하면 정치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도 새로운 정치기술이 아니라고 본다. 더 정교한 홍보도 아니고, 강성 지지층을 더 단단하게 묶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잘됐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냉정하게 돌아보고 국민 앞에서 다시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 출발점을 맹자의 네 글자에서 찾고 싶다. 일치일란(一治一亂),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운명론이 아니다. 치세에 난세를 준비하고 난세에는 다시 치세를 만드는 것, 그것이 인간과 정치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1. 정치는 일치일란이다
《맹자》 「등문공 하」에 '天下之生久矣 一治一亂'이라는 말이 나온다. 천하가 생겨난 지 오래되었으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졌다는 뜻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나라가 번성할 때는 그 번영이 영원할 것처럼 보이고 권력을 잡은 사람은 그 권력이 계속될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영원한 치세도 없고 영원한 난세도 없다. 흥하면 쇠하고, 교만하면 흔들리며, 혼란이 극에 이르면 다시 질서를 찾으려는 힘이 생겨난다. 그래서 일치일란의 진정한 뜻은 순환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치세에 안주하지 말고 난세에 체념하지 말라.

이것이 오늘 대한민국 정치에도 필요한 통찰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올해 한때 60%대 중반까지 올라갔다가 최근 크게 하락했다. 리얼미터의 9월 첫째 주 조사에서는 긍정 평가가 37.4%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8주 연속 하락했다. 다른 방식의 NBS 조사에서도 9월 7~9일 긍정 평가가 43%, 부정 평가가 48%로 나타났다. 조사 방식에 따라 절대치는 다르지만 최근 상당한 폭의 민심 이탈이 나타났다는 방향성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지율은 대통령 인격에 대한 인기투표만이 아니다. 경제와 주거, 일자리와 증시, 사법정책과 인사, 여당의 행태와 대통령의 언어까지 국민이 종합적으로 평가한 결과다. 그러므로 지지율이 떨어질 때 가장 위험한 대응은 야당 탓, 언론 탓, 보수 유권자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높은 지지율에는 이유가 있었고 낮아진 지지율에도 이유가 있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지지율이 내려갈 때가 아니라, 왜 내려가는지를 듣지 않는 순간이다.


2. 윤석열의 계엄이 남긴 권력의 교훈
한국 현대 정치에서 두고두고 연구될 사건 가운데 하나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이다. 역사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자해가 종종 등장한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역시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라는 거대한 외교적 업적을 남겼지만 워터게이트 사건과 은폐 과정으로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권력자가 가장 위험해지는 때는 권력이 약할 때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할 때 위험해진다.

“내가 하는데 누가 감히 막겠는가.”

이 생각이 권력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 정치적 판단과 개인적 욕망의 경계가 무너지기 쉽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박수를 크게 치는 참모가 아니라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참모다. 조선의 왕에게도 간관이 있었고 군주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다. 마키아벨리 역시 군주 주변에 현명한 조언자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군주가 아첨꾼에게 둘러싸이면 판단력을 잃는다고 경계했다. 권력자는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원로가 필요하고, 자신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며, 자신의 말을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교훈은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3. 이재명 정부를 세웠던 세 기둥
이재명 정부의 출범과 초기 높은 지지를 가능하게 했던 힘을 세 가지로 압축하면 민생, 실용주의,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능력이었다고 본다.

첫째는 민생이었다. 부동산, 주식시장, 일자리다. 국민에게 이 세 가지는 경제지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은 결혼이고 가족이며 노후이고 계층 이동의 사다리다. 주식시장은 국민의 자산이고 미래에 대한 기대다. 청년 일자리는 한 세대의 희망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가 고프고 집이 없고 일자리가 불안한 국민에게 아무리 화려한 국가 비전을 이야기해도 설득력이 약하다.

둘째는 실용주의였다. 진보의 정책이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의 정책이라서 거부하는 것도 아니라, 국익에 도움이 되면 박정희의 정책도 김대중의 정책도 쓰겠다는 자세였다. 기업인을 등용하고 산업과 기술을 중시하며 일본과도 필요하면 협력하는 모습은 상당수 중도층에게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셋째는 대통령 개인의 행정능력과 정치적 감각이었다. 이 대통령은 사안을 빠르게 파악하고 숫자를 이해하며 복잡한 내용을 대중적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이다. 국무회의 공개도 초기에는 자신감으로 읽혔고, 국민생활의 작은 문제까지 챙기는 모습도 세심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바로 이 세 기둥이 최근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4. 민생의 핵심은 ‘정책의 선의’가 아니라 국민의 결과다
정부는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지만 국민은 결과를 경험한다. 정책 당국이 아무리 좋은 뜻이었다고 설명해도 집값이 오르고 대출이 막혀 내 집 마련이 더 멀어졌다고 느끼면 국민의 평가는 달라진다. 증시도 마찬가지다. 올해 5월 27일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각각 2배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ETN 상품들이 대거 상장됐다. 레버리지 상품은 수익 가능성도 크지만 가격 변동 위험과 이른바 ‘음의 복리 효과’도 큰 고위험 상품이다.

따라서 이것을 곧바로 “정부가 증시를 폭락시켰다”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 증시는 글로벌 경기와 금리, 반도체 업황, 수급과 지정학 등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당국이 개인투자자에게 고위험 레버리지 상품의 문을 넓혀 놓았다면 그 상품이 젊은 투자자에게 어떤 위험을 만들어내는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청년들에게 주식은 때로 탐욕의 수단이 아니다. 집을 살 수 없으니 자산을 만들기 위해 택한 마지막 사다리다. 그 사다리에서 크게 다친 사람이 많아지면 정치적 분노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정책이 발표됐다가 시장과 여론의 반발을 확인하고 다시 물러서는 일이 반복되면 정책의 내용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예측 가능성의 상실이다. 정책은 틀릴 수 있지만 오락가락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발견해 고치는 것과 철학 없이 흔들리는 것은 다르다.


5. 8·31 개각은 왜 쇄신보다 의문을 남겼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8·31 개각은 중요하다. 정확히는 8월 30일 발표된 6개 부처 개각이다.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후보자에 이형일,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김승원,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강신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홍지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이소영,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용혜인이 지명됐다.

개각은 대통령에게 가장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다. 지지율이 흔들리는 상황에서의 개각은 특히 그렇다. 국민은 그 명단을 보며 대통령이 무엇을 반성했고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를 읽는다. 그래서 이번 개각의 핵심 질문은 한 가지다.

국민이 요구한 쇄신과 대통령이 내놓은 쇄신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는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승원 의원은 검찰개혁 강경파로 분류돼 왔고, 이 대통령 관련 공소취소를 요구해온 의원모임의 대표를 맡았던 전력이 있어 인선 직후부터 논란이 일었다. 이것만으로 김 후보자에게 어떤 부당한 ‘미션’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사는 사실만큼 메시지가 중요하다. 대통령 자신의 사법 문제와 관련한 의심이 정치권에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이력이 있는 인사를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민이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 예상했어야 했다.

더욱이 김 후보자는 이후 코로나19 치료제 관련 민원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전달한 과정 등을 놓고 이른바 ‘신약 청탁’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김 후보자가 식약처장에게 관련 절차를 빨리 살펴봐 달라는 취지의 연락을 한 사실 등이 보도됐고, 관련 고발에 따라 경찰도 다시 사건을 들여다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 후보자 측에는 당연히 소명권이 있으며 현재 단계에서 범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자녀의 과거 위장전입 사실까지 새롭게 확인됐고 후보자 측도 교육 목적의 주소 불일치를 인정하며 송구하다는 입장을 냈다.

이 정도가 되면 중요한 것은 진영논리가 아니다. 법무부 장관은 다른 장관보다 높은 도덕성과 신뢰를 요구받는 자리다. 대통령은 청문회 결과와 사실관계를 냉정하게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 사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의리가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대통령의 더 큰 의리다.


6. 개각 하루 뒤 정책실장이 떠난 장면
8·31 개각과 관련해 또 하나 생각할 대목이 있다. 당초 개각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던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이 바로 다음 날인 9월 1일 물러났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부동산과 금융정책을 둘러싼 책임론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인사를 하루 늦게 할 수도 있고 내부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는 묘하게 비칠 수 있다. 쇄신개각이라면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와 책임 소재를 충분히 검토한 뒤 한꺼번에 메시지를 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다.

인사는 콘텐츠이면서 연출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연출이 혼란스러우면 대통령의 판단체계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기초연금이나 부동산 세제 같은 주요 정책에서 발표 직전 또는 발표 후 방향이 바뀌는 모습까지 반복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사람들은 어느 정책이 옳으냐보다 “이 정부가 확신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정권의 국정엔진에서 ‘푸르륵, 피시식’ 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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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생성


7. 사법개혁은 검찰을 위한 것도 경찰을 위한 것도 아니다
검찰개혁은 필요하다. 검찰권이 과도하게 집중돼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오랜 세월 누적돼 왔다. 그러나 검찰개혁의 목적은 검찰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권리를 더 잘 지키는 것이다.

이 원칙에서 벗어나면 검찰개혁은 또 하나의 권력기관 재편에 불과하다. 특히 검찰의 보완수사권 문제는 진영논리로만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상당히 높게 나온 사례들이 있다. 한국갤럽의 7월 조사에서는 유지 의견이 61%, 폐지가 23%였고, KSOI 조사에서도 폐지 반대가 55.3%, 찬성이 27.4%였다.

여론조사가 언제나 정책의 정답은 아니다. 전문적 제도개혁은 때로 여론보다 앞서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불안해하고 있는데 “우리가 옳으니 따라오라”고만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여성과 아동, 노인과 범죄 피해자처럼 사회적 약자가 수사기관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로 피해를 볼 가능성은 없는지 다시 살펴야 한다. 검찰이냐 경찰이냐가 핵심이 아니다.

피해자가 보호받느냐가 핵심이다.

개혁은 기관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8. 실용주의를 버리면 ‘뉴 이재명’도 떠난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 모두가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는 아니었다. 계엄과 윤석열 정부에 반대했던 중도층도 있었고, 성장과 실용을 기대했던 사람도 있었다. 2030 여성 가운데 안전과 사회정책을 보고 지지한 사람도 있었고, 3040 남성 가운데 부동산과 자산 형성 정책을 기대한 사람도 있었다. 말하자면 이재명 정부의 출범에는 전통적 지지층을 넘어선 ‘기대연합’이 존재했다.

이들은 충성으로 결합된 사람들이 아니다. 성과에 대한 기대 때문에 모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들어오는 속도도 빠르지만 나가는 속도도 빠르다. 이른바 ‘뉴 이재명’ 세력이 떠난다는 여권 내부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에서 서울과 20·30대의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는 점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청년은 정치에 냉담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떠난다. 중도층도 마찬가지다. 한 번 지지했으니 5년 동안 계속 지지해야 할 의무는 없다. 대통령 지지율에는 소유권이 없다. 국민의 지지는 매일 새로 얻어야 한다.


9. 개헌도 대통령 자신에게서 한 발 떨어져야 한다
개헌은 필요하다. 1987년 헌법 이후 대한민국은 너무 많이 변했다. AI 시대가 열렸고 저출생과 지방소멸, 기후변화와 새로운 기본권의 문제가 등장했다. 대통령 권력구조 역시 다시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개헌에서 한 가지는 분명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의 이해관계와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개헌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개헌하면 현직 대통령이 곧바로 다시 출마해 장기집권한다”는 식의 단정은 헌법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대통령도 최근 프랑스 방문 중 “제 임기는 헌법상 명확히 제한돼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더라도 국민에게 더 명확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있다. 대통령이 개헌의 직접적 수혜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법조문에만 맡기지 말고 정치적으로도 분명히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정치는 법률적 무죄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신뢰가 필요하다. 국민이 “이 개헌은 대한민국을 위한 것인가, 대통령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개헌은 힘을 잃는다. 큰일을 추진하려면 자신을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10. 정치의 타락은 말에서 시작된다
우리 정치에서 또 하나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말이다. 상대를 설득하는 언어보다 모욕하는 언어가 많고, 논리를 겨루기보다 사람에게 낙인을 찍는다. 민주당 지지자가 보수 국민을 조롱하고 보수 지지자가 진보 국민을 모욕한다. 상대 정파의 지도자에게 인간적 존엄까지 빼앗는 표현을 쓴다.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유튜브 조회 수는 얻을지 모르고 강성 지지층의 박수도 받을 수 있지만 국가는 갈라진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대통령 비판을 둘러싼 논란도 그렇다. 권력을 지지했던 지식인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 자체는 건강한 일이며 대통령과 여당은 그 비판 가운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비판하는 지식인 역시 언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란’, ‘왕정’, ‘최하급 정치’ 같은 표현이 논쟁을 밝히기보다 상대방을 규정하는 낙인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말은 생각을 지배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몸과 말과 생각, 즉 신·구·의(身口意)의 삼업으로 본다. 구업(口業)을 무겁게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거짓말, 이간질, 거친 말, 남을 현혹하는 말이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칼의 상처는 아물 수 있지만 말의 상처는 수십 년을 간다. 특히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정책이 되고 시장의 신호가 되며 수십만 공무원의 행동 방향이 된다. 그래서 대통령에게는 말을 많이 할 능력보다 말을 절제할 능력이 더 중요하다. 여당도 야당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말의 전쟁이 아니라 말로 전쟁을 막는 기술이어야 한다.


11. 도(道)와 덕(德)이 없는 실용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능한 정치인이다. 이것은 반대 진영에서도 인정할 부분이다. 판단이 빠르고 행정을 이해하며 정치적 순발력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유능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유능함 위에 도와 덕이 있어야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도는 세상을 억지로 움켜쥐는 힘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알고 자신을 낮추는 지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결국 바다를 이룬다. 그래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말했다.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대통령도 물과 같아야 한다. 국민 위에 올라가 지시하기보다 국민의 삶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중용》의 중도 역시 좌와 우의 중간쯤에 서는 정치가 아니다. 그 시대, 그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길을 찾는 것이다. 때로는 왼쪽 정책이 답이고 때로는 오른쪽 정책이 답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다. 실용주의도 도와 덕을 잃으면 편의주의가 된다. 오늘 필요하면 이것을 하고 내일 유리하면 저것을 하는 식이면 국민은 결국 지도자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실용주의를 완성시키는 것은 신뢰다.


12. 성경·불경·도덕경·중용이 권력자에게 하는 하나의 말

인류의 오래된 경전에는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권력을 찬양하기보다 권력을 경계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높은 사람이 되려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지도자의 위대함을 지배가 아니라 섬김에서 찾았다. 불교는 탐·진·치, 즉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인간의 근본적인 번뇌로 본다. 권력자가 탐욕에 빠지면 권력을 사유화하고, 분노에 빠지면 반대자를 적으로 만들며, 어리석음에 빠지면 자신의 판단만 옳다고 믿는다.

공자는 政者正也,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윗사람이 바르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중용》은 균형을 가르치고 《도덕경》은 자신을 낮추라고 한다. 천부경 역시 특정 정치이론으로 함부로 단정해 해석할 수는 없지만 하나에서 시작해 다양하게 펼쳐지고 다시 하나의 질서로 돌아간다는 사유는 오늘의 공동체에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다름 속에서 하나를 찾는 일, 그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13. 가장 시급한 것은 ‘신뢰’의 복원이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핵심 문제는 지지율 37%냐 43%냐가 아니다.

신뢰다.

국민이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아도 정책은 신뢰할 수 있고, 정책에 반대해도 대통령의 말은 믿을 수 있다. 그런 정부가 강한 정부다. 그러나 대통령을 좋아해도 그의 말을 믿지 못하기 시작하면 정권은 위험해진다.

그래서 지금은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필요하다고 본다. 홍보성 행사가 아니라 국민에게 질문받는 자리여야 한다. 불편한 질문도 받아야 한다. 개헌 문제도 답하고 사법개혁 문제도 답하고 부동산·세금과 증시 문제도 설명해야 한다. 8·31 개각에 대해서도 왜 이런 사람들을 선택했는지 직접 말할 필요가 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인정하면 된다. 잘못된 정책은 바꾸면 되고, 인사가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철회하면 된다. 그것이 굴복인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말을 듣는 것은 굴복이 아니라 통치다.


14. ‘진정자’의 길, ‘인문자’의 자세
정치인은 권력을 다루지만 대통령은 시대를 다룬다. 그래서 대통령에게는 정치인의 기술만으로 부족하고 인문자의 눈이 필요하다. 인문자(인간 .문화.자연을 사랑하는 이)는 국민을 37.4%라는 숫자로만 보지 않는다. 그 숫자 뒤의 사람을 본다. 취직하지 못하는 청년을 보고, 집값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를 보고, 평생 모은 돈을 주식에 넣었다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장을 보며,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도 수사기관 사이를 헤매는 여성을 본다. 고금리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자영업자를 보고 정부 정책이 언제 바뀔지 몰라 투자를 주저하는 기업인을 본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삶이다. 그래서 진정자의 길은 어렵다. 진정자(진리.정의.자유를 추구하는 이)는 자기편의 박수를 좇지 않는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한다. 진리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시작하고, 정의는 권력의 편이 아니라 원칙의 편에 서는 것이며, 자유는 나의 자유뿐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자유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진리·정의·자유.

이 세 가지는 어느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수도 지켜야 하고 진보도 지켜야 하며 대통령은 더더욱 지켜야 한다.


15. 대통령께 드리는 마지막 고언
이재명 대통령에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37%라는 조사도 있고 43%라는 조사도 있으며 지지율은 다시 오를 수 있다. 국민은 냉정하지만 동시에 관대하다. 진심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정책을 바꾸면 다시 기회를 준다. 오히려 지금이 변곡점일 수 있다.

그러려면 국정의 우선순위를 다시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첫째, 민생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동산, 세금, 증시, 청년 일자리를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기준으로 다시 점검해야 한다. 둘째, 실용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왼쪽을 더 챙길 것인가 오른쪽을 더 끌어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필요한 답이 무엇인지 찾으면 된다. 셋째, 사법개혁을 국민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검찰을 없애느냐 경찰을 키우느냐가 아니라 범죄 피해자를 누가 가장 잘 보호할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넷째, 인사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측근인지 아닌지, 진보인지 보수인지보다 능력·도덕성·공공성을 먼저 봐야 한다. 8·31 개각 후보자들에게 제기된 의혹도 진영의 방패로 막을 일이 아니다. 충분히 검증해 부적절하면 거두면 된다. 다섯째, 개헌을 대통령 자신에게서 분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면 추진하되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이해와 관계없다는 사실을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쓴소리를 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참모는 대통령을 돕는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이 틀렸을 때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살리는 사람이다. 일곱째, 언어의 품격을 되찾아야 한다. 대통령이 절제하면 여당도 절제하고, 여당이 절제하면 지지층도 달라진다.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정치에서 상대와 함께 살아가는 정치로 이동해야 한다.

맹자의 일치일란으로 돌아가 보자. 천하는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진다. 그러나 맹자는 혼란 앞에서 팔짱을 끼지 않았다. 인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했고 인간이 할 일이 있다고 믿었다. 오늘도 같다. 지지율은 올라갈 수 있고 내려갈 수 있으며, 정권은 흥할 수도 있고 쇠할 수도 있고, 정당은 선거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진정한 평가는 그 숫자를 넘어선 곳에서 이루어진다. 권력이 가장 강할 때 얼마나 절제했는가, 비판받을 때 얼마나 귀를 열었는가, 반대자를 얼마나 품었는가, 자신의 이해보다 국가의 이해를 얼마나 앞세웠는가, 그리고 떠날 때 대한민국을 얼마나 더 좋은 나라로 만들어 놓았는가가 결국 역사의 평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이 우리 정치에 남긴 가장 큰 교훈도 거기에 있다. 권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인은 상대에게 패해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해서 무너질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다시 권한다. 유능한 대통령을 넘어 덕 있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강한 대통령을 넘어 포용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는 대통령을 넘어 좋은 시스템을 남기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을 지지한 국민의 대통령을 넘어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까지 품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마키아벨리의 냉철함을 배우되 마키아벨리에 머물지 말고, 공자의 정명과 맹자의 인의를 품으며, 노자의 겸허와 《중용》의 균형을 배우고, 불교의 자비와 성경의 섬김을 정치의 바닥에 놓기를 바란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다. 사람을 잃으면 권력을 얻어도 실패하고, 사람을 얻으면 지지율이 잠시 떨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치세에 안주하지 말라. 난세에 체념하지 말라.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이 있을 때 자신을 이겨라.

자신을 이기는 지도자만이 시대를 이길 수 있다. 8·31 개각을 둘러싼 논란도, 민생과 사법개혁을 둘러싼 갈등도, 떨어지는 지지율도 대통령에게는 위기이면서 기회다.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있다면 지금의 위기는 몰락의 시작이 아니라 더 큰 정치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에서 많이 이긴 대통령보다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좋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진정자의 고언이고, 인문자의 바람이며, 그리고 그것이 진리·정의·자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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