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혼자 사는 한 51세 여성은 공공기관 계약직으로 일하며 매달 손에 쥐는 약 15만엔(132만원) 가운데 7만엔을 월세로 낸다. 원룸은 옆집 사람이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벽이 얇다. 10만엔을 들여 방음벽을 설치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꼭대기 층 모서리 방이라 여름에는 밤에 퇴근해도 실내가 30도를 웃돌 때가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사연을 전한 이 여성은 일본의 '취업빙하기 세대'다. 버블경제 붕괴 뒤 기업들이 채용을 크게 줄인 1993~2004년께 사회에 진출한 사람들로, 대체로 지금의 40·50대다. 취업난을 뚫고 안정된 직장에 자리 잡은 사람도 있지만, 파견직·계약직을 오가며 중년까지 생활 기반을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어온 사람들이 기존 세대보다 많다.
이들이 중년에 이르는 동안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일본의 전형적인 '가족' 모습도 달라졌다. 결혼하지 않거나 이혼해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늘었다. 취업빙하기 세대 1인 가구는 지금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문제는 주거비였다. 월세를 내고 손에 남는 돈은 8만엔. 이 돈이 생활비다.
부모 세대는 공공임대주택을 거쳐 내 집을 마련했다. 이 여성의 부모도 그랬다. 어릴 때 임대주택에서 지낸 기억은 따뜻했다. 그래서 임대주택을 알아보지만 빈방이 없거나, 있어도 방 3개에 월 15만엔이나 한다. 한 달 수입과 같은 돈이다. 그렇게 넓을 필요까지는 없는데.
적은 소득에서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는 노후 준비에도 부담이다. 구즈니시 리사 오테몬가쿠인대 교수는 닛케이에 취업빙하기 세대의 독신 여성 중에는 비정규직·저임금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사람이 많다며, 연금과 저축이 적어 월세를 내기 위해 계속 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월세를 낼 여력이 충분한 취업빙하기 세대의 1인 가구는 걱정이 없을까.
오사카 제조업체 기술직인 40대 독신 여성은 도쿄 근무를 자청했다.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자주 보고 싶어서였다. 교통이 편한 도심 한가운데 살면서 회사 주거비 지원도 받는다. 연봉은 약 700만엔. 대학원을 마칠 무렵이 취업빙하기였다. 교수에게 취업 추천서를 부탁하자 "남학생도 붙기 힘든 판에 여학생은 오죽하겠나. 한 곳 가지고 되겠어? 여러 장 써줄게"라는 말을 들었다. 그 시절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나날이다.
그렇지만 다음번 집 계약만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지금 집을 계약할 때 '긴급연락처'에 고령의 아버지를 적었더니 "70세 이상은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번에는 넘어가줬지만 다음번에는, 그리고 그다음번에는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집을 빌릴 때는 월세를 낼 능력 외에 '임대료 보증인'과 '긴급연락처'를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보증인은 세입자가 임대료를 내지 못하면 계약에 따라 대신 지급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긴급연락처는 입주자에게 사고나 질병 등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사람이다.
친족에게 임대료 보증을 부탁하기 어려우면 돈을 내고 민간 보증회사를 이용할 수 있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보증회사 이용률은 2010년 약 40%에서 2023년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보통 처음에 월세 0.5~1개월분을 내고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수수료를 낸다.
하지만 보증은 돈으로 해결해도 긴급연락처는 따로 요구받는 경우가 많다. 앞선 여성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도 고령자가 되면 누구에게 부탁할지 막막해한다. 형제도 없고, 친척과는 교류가 뜸해 부탁하기 망설여진다.
R65부동산의 야마모토 료 대표는 닛케이에 독신자도 집을 빌리기 쉬운 환경은 조금씩 갖춰지고 있지만 "긴급연락처 문제 등 의지할 가족이 없는 사람의 어려움은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여력이 있을 때 집을 사두면 되지 않을까. 실제로 내 집 마련이 노후의 버팀목이 된 사람도 있다. 사이타마시에 사는 50대 초반 독신 남성은 약 10년 전 역세권 신축 아파트를 약 5000만엔에 샀다. 혼자 살아갈 생활 기반을 마련하려는 선택이었다.
당시에는 큰돈이 드는 결정이라 불안했다. 그러나 올해 받아본 가격 정보에 따르면 집값은 매입 때보다 40% 이상 올라 있었다. 그는 당시 집값 급등을 예견할 만한 정보는 적었다며 "운이 좋았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결정을 미뤘다면 지금은 같은 돈으로 교통이 훨씬 불편한 외곽에서나 집을 구해야 했을 거라고도 했다. 살려고 마련한 집이 든든한 자산이 됐고, 여차하면 팔 수 있다는 여유까지 줬다.
내 집 마련 덕에 이 남성은 월세와 보증인·긴급연락처 걱정에서 벗어났다. 그렇다면 이제 해피엔딩일까? 훗날 고령자 주택이나 요양시설로 옮길 때는 '신원보증'이라는 또 다른 문턱이 기다리고 있다.
지바현에서 남편과 사는 40대 여성은 2011년 약 2200만엔에 산 단독주택의 대출을 모두 갚았다. 부부의 연봉을 합치면 약 1550만엔이고 투자자산도 충분하다. 아이를 낳아 키울 생각으로 넓은 집을 샀지만, 5년간 난임 치료를 받은 끝에 자녀 없이 둘이 살기로 했다. 침실 외 각자 개인 방도 쓸 수 있고, 정원도 가꾸며 지낸다.
집도 자산도 가족도 있는 이 여성이 말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사'라고. 남편은 자신보다 일곱 살 많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혼자 남는다. 자신도 취업빙하기를 거친 1인 가구가 된다. 그는 나이 들어 혼자가 되면 가사 서비스가 제공되는 고령자 주택 시설에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입주 때 요구받는 신원보증을 누구에게 부탁할지가 걱정이다. 앞서 소개한 50대 남성의 걱정과 같다.
고령자 시설이 요구하는 신원보증은 임대료 보증보다 역할이 넓고, 내용도 시설마다 다르다. 비상 연락 외에 비용 지급이나 사망 후 절차까지 맡아달라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긴급연락처에 이름을 적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2022년 총무성 조사에서 병원·요양시설의 90% 이상이 신원보증인을 요구했고, 보증인이 없으면 "거절한다"는 곳도 약 15%였다.
일본종합연구소는 자녀 없는 고령자가 2024년 약 500만명에서 2050년 약 10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노후에 가족이 맡아온 보증과 생활 지원을 다른 곳에 부탁해야 할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가족 대신 신원보증을 맡아주는 민간 사업자는 일본에 400곳이 넘지만 상당수가 영세하다. 일본은 사회복지협의회 등이 의지할 가족 없는 고령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법도 개정했다. 하지만 사와무라 가나에 일본종합연구소 수석전문가는 현장에서 지원을 맡을 인력이 부족하고, 고령자가 여러 제도를 직접 찾아 조합해야 하는 어려움도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없이도 안심하고 노후를 맡길 수 있는 대안은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셈이다.
처음 소개한 도쿄의 51세 여성은 요즘 셰어하우스 같은 공동생활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혼자 아플 때 구급차조차 못 불러 애먹은 적이 있어서다. 독신인 사촌들과는 "노후에는 같이 살까"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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