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반도체 적자는 기업 몫, 흑자는 국가 몫인가

김나윤 산업부 기자
김나윤 산업부 기자 [사진=아주경제DB]


지난 3월 새벽을 밝히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제4공장(P4) 건설 현장을 보며 느낀 것은 삼성전자가 감당하고 있는 거대한 중압감이었다. 초미세 공정의 한계를 뚫기 위해 매년 수십조원의 설비투자(CAPEX)가 집행되고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패권을 쥐기 위해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 비용이 쏟아 부어지는 곳. 반도체 생산 현장은 그야말로 매일이 사투가 벌어지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정치권, 사회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반도체 초과이익 재분배' 논란을 보고 있노라면 현장의 치열함과는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아 탄식이 나온다. 정교하게 숙의되지 않은 사안을 정부가 섣부르게 화두로 던지면서 산업 현장의 혼란과 사회적 갈등만 극대화됐다. 시장경제의 기본 문법조차 망각한 위태로운 불장난과 다를 바 없어 보일 정도다. 

도대체 '초과이익'의 정의는 무엇인가. 기업은 리스크를 무릅쓰고 혁신을 이뤄내 이윤을 창출하는 경제 주체다. 정당하게 번 이익에 '초과'라는 주홍글씨를 씌우는 순간 그 결실은 마치 불로소득이거나 별도로 환수해야 할 대상처럼 오인된다. 어디까지가 '적정 이익'이고 어디서부터가 '초과 이익'인지에 대한 합리적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한 채 단지 숫자가 커졌다는 이유만으로 배분을 논하는 것은 지독한 오만이다.

공급망 협력사 배분, 특별목적세 신설, 인공지능(AI) 피해 계층 지원 등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는 분배 방법론도 할 말을 잃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 이익에 대한 국가의 정당성 없는 개입이자 주주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는 위험한 발상에 불과하다.


더 큰 모순은 '손실의 비대칭성'이다. 반도체는 업황 사이클에 따라 실적이 크게 출렁이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불과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수조원대의 적자를 내며 존립 자체를 위협받았다. 2024년과 2025년 2년 연속 법인세를 내지 못했을 정도로 당시 반도체 사업의 위기감은 절박했다. 하지만 기업이 적자의 늪에 빠져 있을 때 정부나 사회가 단 1원의 손실이라도 보전해주지 않았다. 

쓰라린 손실은 오롯이 기업과 주주의 몫이었다. 반면 업턴이 찾아와 거둔 결실에 대해서만 '사회적 몫'이라며 숟가락을 얹으려는 논리는 그 어떤 자본주의 문법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과거 스웨덴이 기업 이윤을 거둬 근로자 기금을 조성하려다 사유재산권 침해와 사회주의 논란 끝에 폐기했던 실패의 역사가 있지 않나.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은 파격적인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쏟아 부으며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미래 투자가 아닌 사회적 환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경쟁국들이 뛸 때 스스로 모래주머니를 차는 격이다.

경쟁 기업인 대만 TSMC, 미국 인텔과 엔비디아는 국가적 지원을 등에 업고 미래 기술을 향해 천문학적 자금을 폭격하듯 퍼붓고 있다. 반도체 기업이 거둔 이익은 창고에 쌓아두는 '남는 돈'이 아니라 내일의 첨단 라인을 깔고 치열한 생존 싸움에서 버텨낼 필수 실탄이자 안전판이다.

정부는 앞에서는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이라고 높이 평가하면서 정작 뒤에서는 기업이 힘들게 확보한 실탄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며 소모적인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이 번 돈을 어떻게 빼앗아 나눌까'라는 소모적 논쟁이 아니다.

기업이 더 과감하게 투자해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할 때다. 정부가 기업의 주머니를 탐내기 전에 국가 산업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본연의 역할이 무엇인지부터 엄중히 성찰해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