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영성은 처음부터 하늘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단군 신화에서 환인은 하늘의 신이고,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이며, 단군은 하늘과 땅, 신성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이것은 단순한 건국 설화가 아니다. 한국인의 정신 깊은 곳에는 인간은 하늘과 끊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늘의 뜻을 땅 위에서 실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오래된 신앙은 천지인,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질서 안에 있다는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무속의 핵심은 바로 이 연결이다. 무당은 신을 섬기는 사람인 동시에 사람들의 아픔을 대신 말하는 사람이다. 굿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막힌 것을 풀고, 끊어진 것을 잇고, 억울한 것을 달래며,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행위였다. 병든 사람에게는 치유의 언어였고, 죽은 사람에게는 위로의 길이었으며, 남은 사람에게는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공동체의 의례였다.
한국 무속에는 산신, 칠성, 용왕, 성황신, 서낭신, 조상신이 함께 등장한다. 이것들은 서로 따로 떨어진 종교라기보다 한국인의 삶 속에서 하나로 엮인 신앙의 그물이다. 산은 생명의 근원이고, 물은 풍요의 원천이며, 별은 운명과 장수를 상징하고, 조상은 가족과 공동체의 뿌리였다. 한국인은 이 모든 것 안에서 신성을 보았다. 그러므로 한국 무속은 자연 숭배이면서 조상 숭배이고, 공동체 신앙이면서 치유의 종교이며, 동시에 하늘을 향한 영성의 통로였다.
한국 무속의 가장 큰 특징은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눈물을 감추지 않으며, 죽음을 침묵 속에 묻어 두지 않는다. 굿판에는 울음과 노래, 춤과 음식, 기도와 해원이 함께 있다. 그래서 한국 무속은 비극을 비극으로만 끝내지 않는다. 억울한 영혼을 달래고, 산 사람의 마음을 풀어 주며, 다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꿈을 꾸게 만든다. 이것이 한국 무속의 생명력이다.
아시아의 여러 영성 가운데 한국 무속은 매우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인도의 힌두교가 우주의 거대한 질서를 말하고, 불교가 고통의 원인과 해탈의 길을 말하며, 도교가 자연과 무위의 지혜를 말하고, 일본 신토가 자연 속의 가미를 말한다면, 한국 무속은 하늘과 땅과 인간 사이의 막힌 길을 풀어 주는 영성이다. 그것은 추상적인 철학보다 삶의 현장에 가깝고, 교리보다 눈물에 가깝고, 제도보다 사람의 한과 기도에 가깝다.
한국 무속은 한민족의 가장 오래된 영성의 원형이다. 그 안에는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 자연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조상을 잊지 않는 마음,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한국 무속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인의 종교심, 예술, 민요, 춤, 제례, 마을 공동체, 심지어 오늘의 문화적 감수성까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무속 이야기는 이제부터 세 갈래로 이어질 것이다. 첫째는 하늘과 인간을 잇는 영성의 시작이다. 둘째는 굿, 산신, 칠성, 조상신으로 이어지는 생활 속 신앙이다. 셋째는 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무속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가 하는 문제다.
한국 무속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이 고난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 오래된 마음의 기술이었다. 하늘을 향해 빌고, 땅을 딛고 살며, 조상의 이름을 부르고, 공동체의 아픔을 함께 풀어 온 이 영성의 길은 한국 문화의 가장 깊은 뿌리 가운데 하나다. 이것이 우리가 일본 신토 다음에 한국 무속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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