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일본이라고 하면 ‘친절하다’거나 ‘꼼꼼하다’, ‘세심하게 배려한다’와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과거 필자의 칼럼(2024년 1월 25일 “‘돌다리도 조심조심’ 日… 새해에는 대변화 바람 부나”에서도 “진흙다리라도 일단 건너기 시작하면서 생각해 보는” 한국과 대비해 “돌다리라도 두들겨 보고 건너거나, 결국엔 건너지 않는 경우도 있는” 일본의 사회적 경향을 소개한 적이 있다. 어느 한쪽의 기질이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장점이 곧 단점이 되기도 하기에 한국과 일본의 상반된 특성을 “더해서 둘로 나누는 정도가 딱 좋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곤 한다.
실제로 그동안 해외에서 일본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온 것이 있다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오모테나시(세심한 배려가 담긴 환대) 정신’이나 ‘장인 정신’, 그리고 철저한 매뉴얼 관리를 통한 치밀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고객에게 웃음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일본 맥도날드의 정신을 나타내는 “스마일 0엔” 메뉴나, 식당이나 술집에 들어서면 모든 직원이 우렁찬 목소리로 “이랏샤이마세!”라고 외치는 환영 인사는 그런 일본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감정이나 그날의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미소와 인사조차도 철저히 시스템화하여 높은 품질을 보장할 만큼 치밀하고 공고한 일본의 매뉴얼 문화를 보여 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매뉴얼이란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지극히 효율적이면서도 일하기 편하게 해 준다. 그러나 매뉴얼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일본 사회는 과거 순탄하게 작동하던 시절의 매뉴얼로는 더 이상 대응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바로 몇 년 전까지 약 20년간 일본을 떠나 있었는데, 오랜만에 일본으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가끔 강한 이질감과 위기감을 느낀다. 과거 내가 알던 일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근본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안타까운 사건과 사고가 종종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공고해 보였던 매뉴얼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사회 곳곳에서 기능 부전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매뉴얼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스스로 생각하고 임기응변으로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조차 든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이 밝혀질수록 그 일상의 이면에 숨어 있던 놀라울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운행을 맡은 버스 회사와 학교 측은 오랜 거래 관계와 신뢰를 이유로 사전에 계약서나 견적서를 주고받지도 않은 채 오직 구두로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게다가 버스 회사의 일방적인 설명에 불과하긴 하지만, 비용을 낮추기 위해 회사 정식 차량이 아닌 렌터카를 사용했고 회사 소속이 아닌 외부 운전기사를 고용했다는 것이다. 경악스럽게도 고령의 운전기사는 버스 운행에 필요한 자격증도 없고, 최근 몇 달 사이 수차례 교통사고를 반복해 경찰로부터 운전면허 반납을 거듭 권고받은 인물이었다. 당연히 버스 회사에서 이루어졌어야 할 절차인 사전 자격증 확인조차 생략된 채, 학교 측도 버스 회사를 믿고 있었다고 한다.
사고 직전, 운전 이상을 감지한 학생들이 마치 죽음을 예감한 것처럼 “소중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두자”는 말을 주고받았고, 어떤 학생은 가족에게 휴대전화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당시 인솔 교사는 당초에는 버스에 동승할 수도 있었지만 짐 운반을 위해 자가용으로 이동하기로 하면서 결과적으로 버스에 탑승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 명의 어른이라도 함께 탑승해 위험을 느낀 시점에 차를 멈췄다면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관행으로 지속해 온 방식이 ‘늘 그랬으니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근거 없이 신뢰받았고, 그 과정에서 묵인된 수많은 작은 위험들이 결국 큰 사고를 일으키고 만 것이다.
일본 중·고등학교에는 ‘부카츠(部活, 부활동)’라는 것이 있다. 이는 한국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동아리 활동과는 궤를 달리하는 독특한 교육 시스템이다. 수업과는 직접 상관이 없고 참가 역시 자율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학교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집단생활의 규율을 배우고 스포츠나 문화 활동에 몰두함으로써 체력과 정신력, 나아가 어느 정도의 불합리함도 견뎌 내는 인내심을 기르는 교육의 장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나 또한 학창 시절 내내 축구부에서 주말과 공휴일은 물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공을 차며 보냈다. 부활동을 통해 프로 스포츠 선수가 되려는 아이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오로지 좋아서 부활동에 참여한다. 1년에 360일은 부활동에 시간을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그 혹독한 훈련을 함께 버텨 낸 부원들은 지금도 평생의 친구로 남아 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요즘은 부활동의 일수나 시간에 제한을 두는 등 무리 없는 운영을 위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독특한 교육 시스템이 오늘날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근저에는 다름 아닌 교사의 자발적인 봉사 정신과 학부모들의 헌신적인 협력이라는, 주변 어른들의 선의에 의존해 온 구조가 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는 ‘아름다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기도 하고 일본 특유의 미덕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가혹한 노동 환경 속에서 현장이 시간을 들여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할 여유를 잃어버린다면, 그 선의에만 기대 온 시스템은 너무나도 무력하게 무너질 수 있다. 앞서 사고 배경에 깔려 있던 ‘늘 그랬으니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태도는 제도적 지원이나 충분한 인력 배치도 없이 현장의 열정과 관행만으로 무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일본 사회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하다.
이처럼 ‘아름다운 이념과 관행’의 그늘에 가려 안전대책이 마비되어 버리는 구조는 또 다른 사고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교토의 한 고등학교가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보트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미군 기지 건설을 위해 매립이 진행 중인 헤노코(辺野古) 앞바다로 평화학습을 나간 보트가 악천후로 인해 전복되며 탑승했던 학생 18명 전원이 바다에 빠졌고, 이 가운데 고등학생 1명과 선장 1명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교과서나 자료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현장 분위기를 느끼고 전쟁과 평화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현장학습은 원래 교육의 깊이를 더하는 훌륭한 이념에 기반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 사고 역시 그러한 숭고한 교육적 가치와 구체적인 안전 확보 사이에 존재하는 잔인한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사고 당일은 ‘파랑 주의보’가 발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출항 판단이 내려졌다. 게다가 당초 함께 탑승할 예정이었던 교사 2명은 직전 상황 판단에 따라 승선하지 않았고, 보트 2척에는 학생 18명과 선장을 포함한 선원 3명만이 탑승한 채 바다에 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운행된 보트가 해상운송법(海上運送法)상 유상·무상과 무관하게, 제3자의 요청에 따라 사람을 반복적으로 운송할 때 필요한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던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선장이 속해 있으면서 보트의 소유자인 시민단체가 학교와 아무리 공고한 신뢰관계가 있었다고 해도, ‘의미 있고 훌륭한 교육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늘 해 왔던 일이라 익숙하니까 괜찮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과신이 안전불감증을 일으킨 것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두 사고 모두 고등학생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고였기에 일본 사회의 관심은 매우 높았고, 책임 소재에 대한 추궁이 이어지고 있다. 진상 규명이 끝나기 전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이 두 사고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안전대책의 치명적인 결함은 교육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례로, 2022년 홋카이도 시레토코(知床) 앞바다에서 발생한 관광선 침몰 사고를 들 수 있다. 승객과 선원 2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이 대참사 역시 아침부터 ‘강풍주의보’와 ‘파랑주의보’가 나와 있는 상태였고, 이후 파도가 더 격해질 것이 예상되어 동종 업계의 다른 선박들이 일제히 결항을 결정한 상황 속에서 “파도가 높아지면 되돌아오면 된다”는 안이한 판단으로 바다에 나섰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해당 업체는 관광선에서 연락을 받는 수단인 운항사무소 내 무선 안테나가 고장 난 것을 방치했고, 선장 휴대폰이 통화 불능 지역에 해당됨을 인지하고도 출항을 강행하는 등 극도로 허술했던 실태가 지적되었다. 이는 어떤 실수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이중 삼중의 안전 시스템’을 비용이나 이익, 혹은 일시적인 편의를 위해 스스로 포기해 버림으로써 벌어진 사고이고,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아 완전히 무너진 안전불감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 사고들은 얼핏 도저히 믿기 힘들 정도의 무책임함이 부른 대형 사고로 보인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매달려 온 근거 없는 ‘안전 신화’의 기능 부전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큰 문제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는 안이함이 지적되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그렇게 믿으려는 것일까. 그저 단순하게 누구도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필자는 오히려 ‘괜찮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잡아 최면을 걸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현재 일본 사회의 가혹한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본래 일본 조직에서 어떤 업무를 수행할 때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을 미덕으로 삼아 왔다.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성실하게 ‘돌다리를 두들겨 보기’ 시작하면 온갖 리스크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쏟아져 ‘돌다리만 두드리다 결국 건너지 못하는’ 사태, 즉 아무것도 도전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한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관행대로 진행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의 부활동이나 야외학습처럼, 애초부터 교사의 봉사 정신이나 학부모들의 선의와 헌신에 의지해 간신히 유지되어 온 영역에서는 시간을 들여 안전장치를 완벽하게 갖추고 ‘절대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리소스도 시간적 여유도 남아 있지 않다. 일본의 교사는 세계적으로도 노동 시간이 길기로 유명하고, 이미 일상 업무만으로도 한계에 이른 것이 현실이다. 수업 준비와 성적 처리는 기본이고, 여기에 수학여행 같은 큰 행사, 나아가 주말 부활동 인솔 등으로 과중한 부담이 더해진다. 학부모 응대나 보고서 작성, 행정 절차에 필요한 서류 작업 등의 잡무도 엄청난 부담이다. 신중하게 절차를 밟으려니 돌다리를 ‘건널 수 없고(행사를 실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충분한 안전망을 짤 여유도 없다. 그 결과 현장은 ‘좋은 일을 하니까’, ‘지금까지도 아무 일 없었으니까’, ‘괜찮을 테니까’라는 안전불감증에 도박을 걸듯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개인의 선의에만 위임해 온 일본의 기존 시스템은 이제 완전히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념과 관행에 지탱되어 온 일본의 ‘안전 신화’는 급격한 환경 변화와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서 조용히 붕괴되고 있다. 과거 완벽한 매뉴얼을 통해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일의 품질’은 허울만 남았고, 막상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대처 능력의 부족만 여실히 드러난다. 과거 한국 사회는 잇따른 대형 사고들을 겪으며 ‘안전불감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고, 뼈아픈 자성의 시간 속에서 대책을 모색해 왔다. 그러한 사고들을 접하며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던 일본이지만,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위기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키워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국력 쇠퇴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과 비용을 최우선시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비슷하게 마주하게 되는 위기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물론 몇몇 사건과 사고만으로 사회 전체를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그토록 치밀하고 안전하며 환대 정신으로 넘치던 일본 사회가 이제는 ‘있을 수 없는 사고’를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가슴 아픈 사고들이 남긴 교훈이 언론에서 소비만 되고 잊히기 전에, 그 뒤에 도사린 사회의 취약성을 직시하고 지금 당장 진지하게 마주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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