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호르무즈에 가려진 파괴 …레바논이 지워지고 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세상의 관심이 온통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가 있을 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 레바논 남부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침공과 대이주가 일어나고 있다. 국경을 넘어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고강도 침략전쟁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5월 첫 주말에도 휴전 협정이 지켜지지 않은 채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는 지옥 같은 공습이 계속되었다. 이미 점령이 거의 마무리되어 국토의 80% 이상이 초토화되어 버린 가자지구에서도 저항하는 가자 주민들을 위한 무차별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 10월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최소 사망자 7만2736명, 부상자 17만2535명 수치를 가자 보건부가 발표했다. 더 놀라운 것은 2025년 10월 가자 지구의 휴전 협정 발효 이후에만 850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243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하니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의장을 맡고 있는 평화위원회의 명칭이 인류사회를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란 전쟁으로 관심 우선순위가 밀려난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이미 유엔 회원국 151개국이 승인한 팔레스타인 국가가 들어설 서안 지구도 사실상 82%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다. 그곳에 불법거주하는 유대인 정착민들의 실효적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점령 계획도 갈수록 노골화되어 가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4조. 338조 등에 의해 국제법상 불법 점령지에 해당되는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정착한 유대인 숫자는 73만명을 넘어섰다. 의도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키기 위해 5월 7일 베잘렐 스모트리치 이스라엘 국방장관 겸 재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서안 지구 북부에서 팔레스타인 소유의 올리브 나무 약 3000그루를 뽑아낸 사건이 발생했다. 2025년 9월 2500그루, 2025년 12월 6300그루의 올리브 나무 제거 이후 또 다른 도발이었다. 샤케드 유대인 정착촌 인근에서 이스라엘 당국이 밀어붙인 이 작전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물론 이스라엘 인권 단체에서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을 악화시키고 그들의 생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올리브 나무 파괴는 팔레스타인 농민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수천 년간 뿌리내렸던 삶과 토지의 연결고리를 파괴하는 반문명적 공격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번 유대인 정착촌 부지 확장을 위한 도발 행위는 스모트리치 장관의 공언대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이라는 이상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국제사회의 기본 합의를 뒤흔드는 사태라 볼 수 있다.
 
레바논의 상황도 갈수록 악화일로다. 지난 금요일 하루에만 5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최악의 폭격이 이어졌다. 급기야 레바논 남부 점령에 이어 인구 밀집지역인 수도 베이루트까지 공습을 확대했다. 미국과의 전쟁으로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 여력이 없는 이란의 위기를 이용하여 이 조직을 뿌리뽑겠다는 무모한 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미 2759명의 사망자와 851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애초부터 이스라엘과 레바논 정부의 휴전 협의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생색내기라는 비난에 휩싸였다. 사실상 레바논 내 최대 군사조직이고 정부 구성권에서 강력한 주도권을 잡은 시아파 정치세력인 헤즈볼라를 배제한 평화협정 논의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가 미국-이란 간 휴전 협정에 매몰되어 있는 때를 이용하여 레바논 남부에서 유례없는 초토화 작전을 펼치고 있다. 네타냐후 정권이 이란의 지원이 차단된 헤즈볼라는 쉽게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 전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면서 그곳에 주둔 중인 유엔 평화유지군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스테판 두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이스라엘군 진지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집중포화로 레바논 남부의 평화유지군이 큰 피해와 위협에 처해있다고 폭로했다. 미국의 중재 아래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벌이고 있는 레바논 정부도 연일 이스라엘에 휴전 준수를 촉구하고 있다. 마론파 기독교인인 조셉 아운 대통령은 레바논이 더 이상 누구의 전쟁터도 되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하고, 이스라엘이 의료진과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행위와 점령된 마을에서 불법적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평화회담 자체를 형해화하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을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정에 강하게 반대해 왔다. 핵무기 개발 기술을 확보하고 이스라엘을 공습할 수 있는 극초음속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이란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 위협으로 궤멸 대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란이 철저히 파괴될수록 그만큼 자국 안보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대이란 전쟁에서 효율적인 출구를 찾지 못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 협상에서 오락가락 외교로 지루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확실히 매듭짓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은 주로 헤즈볼라가 장악하고 있는 이스라엘 접경 지역의 레바논 남부에 집중되었다. 티레, 나바티예, 주베일 같은 도시가 집중 공습을 받았다. 소도시인 아룬, 크파르 티브닛, 알 만스리, 부르즈 라할, 나바티예 알 파우카 등 리타니강 이남의 거의 모든 도시가 공격을 받았다. 지난주에는 나바티예에서 아버지와 함께 알사바흐 고등학교 근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어린 소녀가 세 차례 연속 드론 공격으로 아버지와 함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레바논 국영 뉴스에 따르면 티레에서도 차를 타고 가던 가족 세 사람이 모함마드 사드 고등학교 근처에서 이스라엘 공중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무차별적인 참혹한 비인도적 이스라엘 공습에 종파를 떠나 레바논 국민 전체가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에도 이스라엘은 막무가내다. 레바논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소개명령을 내리고 테러분자를 색출하고 헤즈볼라의 비무장을 완결할 때까지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국제법과 글로벌 공동체의 보편가치를 비웃고 있다. 한술 더 떠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레바논과 이스라엘 사이의 평화를 주선한 최초의 대통령이라고 스스로를 치켜세우고 있다.
 
이미 인구 20%가 고향을 떠났고 약 12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는 레바논 보건부의 발표가 있었다. 헤즈볼라 문제를 넘어 이제는 레바논 국민 전체가 종파와 이념을 넘어 조국을 지키겠다는 의지만 더욱 키워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섣부른 이란 공격으로 47년 신정 폭압정권을 종식시키려던 강력한 시민 민생시위가 오히려 잠재워지고 조국 수호라는 결사항전 의지를 결속시켜 전쟁을 수렁으로 빠져들게 한 것과 같은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에 헤즈볼라는 테러조직일 뿐이다. 그러나 레바논 정치 지형에서 헤즈볼라는 자국 내 32%의 시아파 주민들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정치 집단으로 쉽게 와해시킬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레바논을 식민 지배하던 프랑스가 떠나면서 자국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마론파 기독교인들에게 대통령직을 포함해 지나치게 권력을 집중시킨 것이 화근이었다. 1932년 이후 공식 인구조사까지 금지해 늘어나는 무슬림들의 인구 증가에 따른 민주적 연합체제 구성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결국 이스라엘이 마론파 기독교인들을 통해 지배력을 강화해 나가고, 서구 외세가 개입하면서 레바논은 1975년부터 장장 15년간 참혹한 내전 상황을 겪었다. 1990년 내전을 종식하기 위해 다양한 종파 간에 타이프 협정을 체결하고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의 의회 의석수 비율을 5대5로 고정하고 헌법을 통해 대통령직은 마론파 기독교인,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으로 명시해 놓았다. 이미 무슬림 인구가 60%를 넘었고, 최근에는 150만명에 달하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무슬림들에 의한 새로운 정치질서 재편을 요구하면서 극도의 정치 불안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정부군보다 강력한 군대조직을 보유하고, 의회에 단단한 정치 기반을 가진 시아파 헤즈볼라가 레바논 정치 구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제 세계의 최대 관심은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팔레스타인 점령 이슈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초기 미국-이란 간 휴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중지를 요청한 양국 협상안 초안을 이스라엘이 백지화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상 이스라엘은 양국 협상의 결정적 이슈인 이란의 농축 핵 물질 해외 이전이나 핵 프로그램 파기 조항에는 관심이 덜하다. 어차피 이스라엘은 핵 보유국이고 충분한 내부 정보자산을 활용하여 어느 순간 핵무기로 전환한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존적 위협인 초음속 탄도미사일 개발 저지가 더 시급한데, 미국이 이 문제에 소극적인 것도 이스라엘과 미국 사이에 의견 차이를 보이는 주된 이슈다. 그사이 이스라엘은 협상 지연으로 시간을 벌면서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 위협 제거와 팔레스타인 가자와 서안 지구의 점령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네타냐후 총리의 이런 침략 일변도 정책이 장기적으로 이스라엘 국익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전 세계 유대인들은 종래와는 전혀 다른 위험에 처할 것이고 유대인을 바라보는 지구촌의 시선도 결코 긍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 국제법과 국제사법 재판소의 결정을 어기고 개인적으로 정치적 위기 돌파를 위해 약자와 빼앗긴 소수자를 짓누르는 폭압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필자 주요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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