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컬럼] 트럼프의 개선문, 미국은 지금 무엇을 세우려 하는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한복판에 거대한 개선문을 세우겠다고 했다. 높이는 약 76미터다. 링컨기념관보다 훨씬 크다. 꼭대기에는 횃불을 든 조각상이 올라가고 양옆에는 독수리가 서며 아래에는 사자가 배치된다. 금빛 장식까지 더해진다. 한눈에 봐도 강하고 화려한 상징이다. 이 계획이 공개되자 사람들의 반응은 갈렸다. 어떤 이는 위대함의 표현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과도한 과시라고 비판한다. 이 장면 자체가 이미 하나의 정치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워싱턴 DC에 건립을 추진하는 개선문의 조감도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워싱턴 DC에 건립을 추진하는 개선문의 조감도. [로이터 연합뉴스]

개선문은 원래 승리를 기념하는 건축물이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방식이다. 전쟁에서 이긴 권력이 도시로 돌아오며 시민 앞에서 승리를 선언할 때 세운다. 그래서 개선문은 늘 크고 높고 눈에 띈다.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멈춰 서고 위를 올려다보게 된다. 그 순간 사람들은 생각하기보다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이겼다는 감정이 먼저 들어온다. 트럼프가 선택한 형식이 바로 이것이다. 긴 설명 대신 한 장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생긴다. 지금 미국은 무엇에 대해 승리를 말하려 하는가. 미국은 전쟁에서 막 돌아온 나라가 아니다. 사회가 하나로 묶여 있는 상태도 아니다. 오히려 갈등이 깊다. 정치적 입장은 날카롭게 나뉘어 있고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개선문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방향을 드러내는 신호가 된다. 승리를 강조하는 상징은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 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배제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방식은 늘 분명했다. 그는 설명보다 장면을 선택한다. 긴 정책 설명보다 짧고 강한 말을 던진다. 그리고 그 말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만든다. 사람들은 복잡한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대신 강한 이미지를 기억한다. 트럼프는 이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큰 건물을 세우고 강한 상징을 만든다. 이번 개선문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위대함이라는 말을 돌과 금으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는 대가가 따른다. 단순한 메시지는 사람을 빠르게 끌어당기지만 오래 유지되기는 어렵다. 현실은 구호처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도 복잡하고 국제 관계도 얽혀 있다.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는 사회에서 하나의 목소리만 강조되면 다른 목소리는 밀려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은 더 커진다. 개선문이 상징하는 승리는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포함되지 못했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워싱턴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대비는 더 또렷해진다. 링컨기념관은 조용한 공간이다. 그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더 엄숙하다. 말을 아끼게 만드는 장소다. 이 두 공간 사이에 거대한 금빛 개선문이 들어선다면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억과 성찰의 공간 사이에 선언과 과시의 상징이 놓이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계획을 두고 고민한다. 이 장소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반대의 목소리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경관을 해친다는 우려가 있고 규모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비용 문제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상징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크다. 전쟁이 끝난 것도 아니고 사회가 하나로 묶인 것도 아닌 상황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형태가 적절한지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건축을 넘어서 정치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런 반대에도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논쟁이 커질수록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고 본다. 찬성과 반대가 뚜렷해질수록 자신의 메시지는 더 선명해진다. 중간은 줄어들고 양쪽만 남는다. 이 구도는 지금 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하기보다 서로를 밀어내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개선문은 그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결국 이 문제는 하나로 모인다. 미국은 지금 어떤 나라가 되려 하는가. 큰 소리로 승리를 외치는 나라가 될 것인가 아니면 다양한 목소리를 품는 나라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건국 250주년은 분명 중요한 순간이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일수록 무엇을 남길지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기념물은 단순히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연합뉴스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연합뉴스]


나라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높은 건물이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쌓일 때 나라의 힘이 만들어진다. 개선문은 그 힘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그 힘이 충분할 때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트럼프의 개선문은 아직 계획 단계다. 앞으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설계가 바뀔 수도 있고 멈출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이미 분명해졌다. 이 계획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무엇을 기념하려 하는가 그리고 그 기념의 방식이 지금의 미국과 맞는가라는 질문이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오래 남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의미라는 점이다. 그리고 의미는 돌이 아니라 사람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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