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노동시장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양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가 쪼개지고 재편되는 구조적 변화다.
한국 기업에서 AI가 대체하는 업무 비중은 아직 10% 수준에 머문다. 수치만 보면 위협은 제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충격은 이미 노동시장 내부에서 진행 중이다. 일자리는 유지되는 듯 보이지만, 그 내용과 진입 경로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청년층이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을 중심으로 신규 채용이 줄어들고 있다. 기업은 기존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신입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입구가 좁아진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몇 년간 감소한 청년 일자리의 대부분이 AI 고노출 업종에서 나타났다. 이는 경기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변화다.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더 심각한 변화는 고용의 ‘질’이다. 취업자 수는 늘었지만, 전문직과 기술직, IT 관련 일자리는 줄고,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가 늘어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청년층 일자리는 줄고, 고령층 일자리는 늘어나는 구조도 뚜렷하다. 일자리는 존재하지만, 숙련이 축적되는 경로는 약해지고 있다.
기초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신입 단계에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숙련 인력이 사라지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다른 흐름도 동시에 나타난다. AI 도입 이후 채용이 늘었다는 기업도 적지 않다. 다만 이 일자리는 특정 역량을 가진 인력에 집중된다. 데이터 활용 능력, 소프트웨어 이해, AI와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결국 노동시장은 두 갈래로 나뉜다. 기술을 활용하는 인력과, 그렇지 못한 인력이다. 문제의 중심은 일자리 수가 아니라 역량 격차다. 그럼에도 정책은 여전히 ‘일자리 숫자’에 머물러 있다. 공공 일자리 확대, 고용 보조금, 고용 유지 정책이 중심이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러한 접근이 한계를 드러낸다.
AI는 직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직무를 바꾼다. 같은 직종 안에서도 요구되는 능력은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정책의 방향 역시 이에 맞춰 전환될 필요가 있다.
첫째, ‘일자리 보호’에서 ‘역량 유지’로 중심을 옮겨야 한다. 특정 직무를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기술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 노동자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노동시장 입구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신입 채용 감소는 단순한 고용 감소가 아니라 경력 형성 경로의 단절로 이어진다. 청년층이 첫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셋째, 기업의 인력 전략도 바뀌어야 한다. AI 도입은 인력 축소가 아니라 직무 재설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 기존 인력을 새로운 역할로 전환하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넷째, 사회 안전망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실업 이후를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직무 전환과 재교육을 전제로 한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AI는 노동시장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일자리를 기준으로 한 정책으로는 이 변화를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자리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새로운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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