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빠져나온 日 유조선 첫 귀항…정유업계 "마냥 기뻐 못해"

  • 사우디산 원유 200만 배럴 도착… 아이치 정유소 12일분


  • 美·중남미산 대체 조달 확대에도 운송·보험료 부담

호르무즈 해협 사진AFP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 [사진=AFP연합뉴스]



이란 군사충돌 이후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온 일본 대형 유조선이 처음으로 일본에 귀항했다.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온 이 유조선의 귀항은 공급 불안 완화의 신호처럼 보이지만, 일본 정유업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대비해 조달처를 미국·중남미·아프리카 등으로 넓히는 과정에서 운송비와 보험료, 정유소 가동 비용이 동시에 늘어나며 ‘고비용 원유 조달 시대’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26일 이데미쓰코산의 대형 유조선 ‘이데미쓰마루’가 전날 아이치현 지타시 앞바다 전용 부두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이데미쓰마루에는 사우디산 원유 약 200만 배럴이 실렸다. 이는 이데미쓰코산 아이치 정유소가 12일간 처리할 수 있는 물량으로, 휘발유와 기초화학제품 원료인 나프타 생산 등에 쓰인다.

이데미쓰마루는 2월 25일경 호르무즈 해협 서쪽 페르시아만에 진입했다가, 28일부터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약 60일간 발이 묶였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일본 선박이 본국으로 돌아온 것은 이란의 군사충돌 이후 처음이다. 이데미쓰 관계자는 “다른 회사 선박을 포함해 페르시아만에 아직 남아 있는 배가 있다”며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ENEOS계 선박도 5월 중순 통과했지만, 닛케이는 일본 선박 39척이 여전히 페르시아만에 남아 있다고 전했다. 정상화 전망도 불투명하다. 영국 조사기관 우드맥킨지는 최악의 경우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026년 말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해협이 다시 열리더라도 산발적인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은 원유의 95%를 중동산에 의존한다. 해협 봉쇄가 3개월에 접어들면서 일본 정유사들은 조달처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대체 조달처로는 러시아와 미국, 멕시코·에콰도르 등 중남미, 아프리카 등이 거론된다. 일본의 구매력 자체는 높아 당장 필요한 물량은 확보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어떻게든 3개월 앞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수준”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체 원유 구해도 문제 


하지만 대체 원유를 확보하더라도 비용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동산 원유는 일본까지 약 3주면 운송할 수 있지만, 미국 등 원거리 산지에서 들여오면 기간이 두 배 이상 걸린다. 운송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선박 운임과 보험료 부담도 커진다. 외국 선박에서 일본 선박으로 원유를 옮겨 싣는 방식도 거론되지만, 이 역시 추가 비용이 든다.

정유소 가동도 쉽지 않다. 일본 정유소는 오랫동안 중동산 원유 처리에 맞춰 설비와 공정을 최적화해왔다. 하지만 원유는 산지에 따라 성질이 다르다. 산지별 원유를 적절히 섞지 못하면 정유소 가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휘발유·경유·중유 비율도 달라진다. 대체 원유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정유소별로 따져야 하는 이유다.

가격 불안도 장기 조달 전략을 어렵게 한다. 아시아 원유시장의 지표인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1월 한때 배럴당 60달러를 밑돌았지만, 최근에는 70% 가까이 오른 배럴당 10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세계 원유 재고가 줄어드는 가운데 100일치 수요분을 밑돌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석유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쟁탈전이 벌어지면 안정 조달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데미쓰코산의 사카이 노리아키 사장은 에너지 안보를 고려하면 조달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석유제품의 안정 공급에는 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며 “자구 노력으로 흡수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은 판매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인 3명이 승선한 이데미쓰마루의 귀항은 일본 정유업계에 일단 반가운 소식이지만, 조달망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닛케이는 정유사들이 정부와 협력해 공급력과 안보를 함께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90%를 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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