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V 막힌 화웨이 승부수…'무어의 법칙' 넘을 '타오의 법칙' 공개

  • 트랜지스터 미세화보다 신호 전송 최적화 초점

  • 2031년 1.4나노급 성능 목표…TSMC 도전장

  • 올 가을 신형 기린칩에 첫 적용…메이트 90 탑재

  • '반도체 여왕' 허팅보 등장…中 기술 자립 상징

  • 업계 신중론도…"상용화·양산은 별개 문제"

화웨이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화웨이 로고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가 미국의 반도체 제재 속에서도 첨단 노광장비(EUV) 없이 칩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설계 노선을 제시했다. 기존 반도체 초미세화 공정 경쟁의 한계를 넘어서는 독자 기술 전략을 공개하면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중국 상하이증권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화웨이 반도체 팹리스(설계) 부문인 하이실리콘 허팅보 사장은 25일 상하이에서 열린 '2026 IEEE 국제 회로 및 시스템 심포지엄'에서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길 탐구와 실천'이라는 기조연설에서 무어의 법칙 한계를 뛰어넘는 '타오(韜)의 법칙'을 공식 발표했다.

중국에서 '반도체 여왕'으로 불리는 허 사장은 1996년 화웨이에 입사한 뒤 2003년부터 화웨이 칩 개발 책임자로 임명돼 하이실리콘을 글로벌 팹리스 기업으로 키워낸 핵심 인물이다. 로이터는 그를 "미국 제재 속 중국 반도체 자립 의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허 사장은 이날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드는 기존 무어의 법칙에 의존해서는 반도체 성능 향상에 물리적·경제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며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컴퓨팅 성능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 공정 노선으로 타오의 법칙을 제시했다.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이름을 딴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집적도가 2년마다 갑절로 늘어나 칩 처리능력이 2배로 향상된다는 법칙으로, 1960년대 이후 줄곧 반도체 업계의 정설로 여겨졌다.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 하나의 반도체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컴퓨팅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공정이 7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이하의 초미세화로 접어들면서 트랜지스터 크기가 원자 규모에 가까워져 사실상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게 되자 업계에서는 새로운 성능 향상 방안을 모색해 왔다.

특히 미국의 수출 통제로 첨단 EUV 노광장비 확보가 어려워진 화웨이는 기존 미세화 경쟁 대신 새로운 설계 구조 개발에 집중해왔다.

타오의 법칙은 트랜지스터를 단순히 더 작게 만드는 대신, 칩 내부 회로와 데이터 전송 구조 전체를 최적화해 신호 전달 시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타오'는 전기 신호 전달 시간을 의미하는 물리학 용어인 '타우(τ)'라는 시간 상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화웨이 내부에서는 허팅보 사장의 성을 따 '허의 법칙'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허 사장은 지난 6년간 모바일 소비자가전 네트워킹 자동차 컴퓨팅 제품 등 여러 분야에서 타오의 법칙을 적용해 381종의 칩을 설계 및 양산했다고도 밝혔다.

또 이 법칙을 구체화한 차세대 칩 아키텍처인 '로직폴딩(LogicFolding)'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도 밝혔다. 로직폴딩은 회로를 물리적으로 접는 적층 구조로 칩 내부 신호 이동 거리를 줄여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동시에 개선하는 기술이다.

화웨이는 이 기술이 적용된 차세대 '기린' 스마트폰 칩을 올해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화웨이에 따르면 새 구조를 적용할 경우 기존 설계 방식보다 트랜지스터 밀도가 55% 높아지고 전력 효율도 41% 개선할 수 있다. 해당 칩은 차세대 스마트폰 메이트90 시리즈에 탑재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향후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로의 확장 가능성도 제시됐다.

화웨이는 이번 설계 혁신을 바탕으로 2031년까지 글로벌 선두 업체들의 1.4나노급 공정 수준에 근접하겠다는 목표도 내놨다. 이는 인텔과 TSMC가 각각 2028~2029년경 1.4나노 칩 양산을 추진하는 계획보다는 뒤처진 일정이지만, EUV 장비 없이도 성능 향상을 시도할 수 있는 독자 노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양산 공정은 일반적으로 7나노 수준으로 평가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중국 기업이 세계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 새로운 원칙을 제시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발표 직후 중국 증시에서는 SMIC와 화훙반도체 등 주요 반도체 관련주가 급등했다.

특히 화웨이의 이번 발표는 글로벌 AI 칩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최근 "미국 정부의 대중국 AI 칩 수출 통제로 중국의 거대 내수 시장을 화웨이에 통째로 넘겨줬다"고 토로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화웨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업계에서는 아직 실제 상용화 가능성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대만 반도체 산업 전문가 천쯔앙은 싱가포르 매체 연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대부분의 웨이퍼 장비는 평면 공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트랜지스터 적층 구조를 기존 장비로 구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설령 구현에 성공하더라도 전력·성능·면적 등 종합적인 검증을 통과해야 하며 결국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샹쑹캐피털 선멍 대표도 "새로운 기술 노선을 제시한 것과 상용화·양산 단계에 진입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기술 노선의 차이를 기준으로 기존 미세공정 수준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마치 '사과와 배를 비교하는 격'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학 법칙은 구호를 외친다고 성립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반복적인 검증을 거쳐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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