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된 지 27년이 지났건만 아무도 그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그는 누구냐하면 1999년 어느 날 모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다. 김영하 작가의 단편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속 사건의 당사자다.
읽은 지 20년이 훨씬 넘었을 이 소설이 당시 얼마나 ‘센세이셔널’ 했는지, 아직도 이야기 속 몇몇 장면은 영화를 본 것마냥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예를 들면 그 남자가 5층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상체가 끼인 채 두 발이 밖으로 대롱대롱 삐져나와 있는 장면 같은 것 말이다.
이를 목격한 같은 아파트 주민인 주인공은 출근하던 중에 남자를 목격하고 그를 밖으로 꺼내는 대신 신고하겠다고 결정했다. 회사에 지각할 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당시에 주인공은 핸드폰이 없었다. 관리실 경비원은 순찰중이시라 자리에 안 계시고, 아무도 그에게 핸드폰을 빌려주지 않는다.
결국 퇴근할 때까지 주인공은 신고를 할 수가 없었는데 집에 돌아온 후 그 남자가 어떻게 됐는지 관리인이나 이웃들에게 물어보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니, 그런 사건 자체가 있었는지조차 아무도 알지 못한다.
20년도 더 전에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받은 그 ‘센세이셔널’한 충격은 ‘무관심’이라는 막연한 단어가 소름끼치도록 체감된 데서 온 것 같다. 그리고 따라오는 그 남자에 대한 궁금함, 그리고 또 따라오는 ‘분개’는 끝내 결말을 안 써준 작가로부터 온 것.
그리고 김영하 작가는 27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그 남자의 후일담을 얘기한 적이 없다. 독하기도 하지. 사정이 이러하니 필자는 아직도 그 남자를 잊지 못하고 이 길지도 않은 단편 소설을 곱씹는다.
이 소설을 읽었을 당시 젊었던 필자는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준 동네 주민들, 버스 승객들, 회사 직원들이 얼마나 야속하고 미웠는지 모른다. 회사 비품을 아끼겠다고 휴지를 대소변에 따라 몇 칸 쓰도록 할 것인지 정하는 회의 장면은 기가 막혔다. 그런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주인공은 또 얼마나 한심했는지.
그런데 지금 이 소설을 떠올리며 다시 감상을 말해보라 한다면 주인공 당신은 다소 소심하기는 했어도 참 위대했다 말하고 싶다. 이렇게까지 주인공을 두둔하게 된 이유는 그 주인공이 지금까지도 그 회사에 다니고 있을 것만 같고, 그가 거쳐왔을 긴 세월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방해요소가 닥쳐와도 끝내 출근을 해내는 그 주인공은 아마 어떻게든 지금까지 버텨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에 대한 궁금함과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언짢음이 긴 세월을 지나며 희미해지고, 대신 반복되는 일상을 묵묵하게 버티고 그 와중에 돌연 달려드는 특별한 사건을 견디고 해결하는 수많은 직장인이 새삼스럽게 기특해진다.
갓 서른이 넘었던 김영하 작가는 타인에 무관심하고 무표정과 무감각을 철통 같이 여기며 제 맡은 일만 딱 하겠다는 사람들이 얄미운 나머지 그 소설을 썼겠지만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김영하 작가는 지난 1일 음악과 이야기를 엮은 마티네 콘서트(한낮에 열리는 공연)로 관객과 만났다. 공연은 오페라 아리아와 영화 음악 연주 사이에 작가의 해설이 더해지는 형식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영하 작가는 등단 30주년을 맞아 열린 기념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시네마 천국’을 두고 “예전에는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로 봤는데 다시 보니 자신을 만든 과거와 공동체를 이해하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봄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사랑이 얼굴에 드러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모난 거 같았던 작가의 아우라가 많이 둥글어진 느낌이다. 그 작가의 글을 읽었던 필자도 마찬가지로 많이 둥글둥글해졌다. 사람들의 비루함을 세월과 경험의 힘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꽤 나이를 먹었을 소설 속 주인공이 위험에 처한 어떤 타인을 위해 이제는 뭐라도 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 사람을 향한 연민을 갖는 것, 그것이 지금은 더 소중하다.
* 자투리 리뷰 :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주요한 감상을 빼고 난 후 남겨진 또다른 감상의 자투리를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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