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한 대이란 군사 충돌이 한 달을 넘겼다. 전쟁 초반 도널드 트럼프는 단기간 내 종전을 장담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전선은 오히려 확대됐고, 중동 전역은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걸프협력국과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확산하면서 지역 전체는 불안정의 임계점을 넘어섰다. 국지전으로 시작된 충돌은 이제 중동 질서 자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위기로 비화하고 있다. 힘을 앞세운 강대국의 전쟁은 정당한가. 침묵은 과연 중립인가, 아니면 또 다른 동조인가. 국제사회는 이 질문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
이번 충돌에서 국제법적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유엔 헌장이 금지한 무력 사용 원칙을 훼손한 일방적 군사행동이라는 비판은 비등하고 있다. 자위권이라는 명분을 제시하지만, 선제적 공격과 광범위한 군사작전은 이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힘이 정의를 대체하는 순간 국제질서는 붕괴한다. 규범보다 군사력이 우위에 서는 세계에서 약소국은 상시적 생존 위협에 노출된다. 강대국의 판단이 정의로 받아들여지는 질서는 더 이상 질서가 아니다. 그것은 약육강식 정글일 뿐이다. 이번 전쟁은 정치적 위기에 몰린 베냐민 네타냐후의 불장난에 미국이 동조한 결과라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전쟁은 곧 경제 위기로 확산됐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자 국제 유가는 즉각 반응했고, 글로벌 금융시장은 급격히 흔들렸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되면서 달러 강세는 심화됐고, 원자재 가격은 연쇄적으로 급등했다. 해상 운송로의 불안정성까지 겹치며 물류비 상승 압박도 커졌다.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원유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유가 상승은 곧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고, 기름값은 리터당 2000원대에 진입했다. 한 달 사이 코스피 시장에서 이탈한 외국 자본만 50~60조원에 달한다. 기업 투자 심리는 위축됐고 소비 역시 둔화하면서 실물경제 전반에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대피 명령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 이주도 이어지고 있다. 수백만명이 삶의 터전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다. 물과 전기, 도로와 다리 등 기본 인프라가 파괴되며 일상은 붕괴됐다. 학교와 병원마저 기능을 잃으면서 사회의 최소한 안전망도 사라졌다. 이는 단순한 군사작전을 넘어 특정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드는 전략적 파괴에 가깝다. 이스라엘은 앞서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 가자지구에서도 유사한 군사작전을 수행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았다. 국제 인권 단체는 이를 집단적 처벌이자 인종 청소로 규정하고 있다. 이란 전쟁은 영토 분쟁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를 지우는 단계로 치닫고 있다.
20세기 인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극단의 폭력을 목격했다. 전후 국제사회는 다시는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며 국제법과 인권 규범을 구축했다. 그러나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그 다짐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폭력은 형태를 바꾼 채 반복되고, 희생자는 여전히 민간인 몫이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란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이란과 오랜 기간 경제·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77년 수교 이후 테헤란에는 ‘서울로’,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생겼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페르시아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초원을 가로질러 신라와 교류했다. 이는 처용가와 역사적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양국 간 뿌리 깊은 신뢰를 의미한다. 수교 이후 양국은 건설, 에너지, 문화 교류를 통해 깊어졌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이란 관계는 흔들렸다. 최근에는 외교적 발언 하나로도 갈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이는 외교가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원유 대금 문제 역시 갈등의 핵심이다. 우리가 대금 결제를 지연하는 바람에 양국 간 신뢰는 크게 훼손됐다. 한국은 국제 금융 제재라는 불가피한 결정임을 이유로 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말기 정세균 총리는 이란을 방문해 이런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는 물건을 가져가고 돈을 치르지 않는 약속 불이행으로 인식하고 있다. 신뢰가 무너진 외교는 언제든 갈등으로 비화한다. 지금 상황은 그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유럽연합과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국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벌인 이번 전쟁에 부정적이다. 그러나 공개적 비판에는 소극적이다. 사실상 침묵에 가깝다. 한국과 일본 역시 파병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명분 없는 전쟁에 가담할 수 없다는 국내 정서를 수용한 결과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최소한 균형 감각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적극적인 중재와 평화 노력의 부재는 또 다른 문제다. 침묵은 전쟁을 장기화하는 요인이다.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미국과 동맹이라는 현실적 제약은 존재하지만, 국제법과 인도주의라는 원칙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국익과 가치가 충돌할수록 기준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전쟁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종전을 촉구하는 것은 주권 국가로서 책임이다. 인도적 지원 확대와 외교적 중재 노력 역시 병행해야 한다.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국가로 가는 길이다.
정의는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규범과 책임,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서 나온다.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가볍지 않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관이며, 방관은 결국 공범이 된다. 이 전쟁은 정당한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물어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선택의 결과로 기록된다. 지금 침묵이 훗날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감사원 정책자문위원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 ▷순천향대 초빙교수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전 국회 부대변인 ▷전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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