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사각 액정에 얇은 금속 밴드, 수십 년째 거의 그대로인 디자인. 한때 '치프카시오(싸구려 카시오)'라 놀림받던 저가 시계가 간판 브랜드 G쇼크를 제치고 일본 시계업체 카시오의 새 성장축으로 떠올랐다. 싼 맛에 차던 시계가 이제는 젊은층이 찾는 트렌디한 레트로 소품이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G쇼크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는 사이 저가 브랜드 '카시오워치'가 여성과 젊은층을 사로잡으며 시계 사업의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고 6일 보도했다.
카시오워치의 뿌리는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나온 디지털 시계 '카시오트론'에서 출발해 1989년 'F-91W' 같은 초저가 스테디셀러를 앞세워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오랫동안 '싸고 실용적이지만, 멋과는 거리가 먼 시계'의 대명사였다.
반전은 2021년 시작됐다. 카시오가 브랜드를 재정비하고 옛 디자인을 살린 신제품을 잇달아 내놓자, 오래된 외형이 촌스러움이 아니라 개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시간 확인용 도구가 아니라 옷차림에 맞춰 바꿔 차는 액세서리로 고르는 소비자가 늘면서 금속 밴드의 복고풍 모델 'AQ-240'이 주력으로 떠올랐고, 인도와 브라질 등 신흥국에서도 판매가 늘었다. 다카노 신 사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카시오워치의 호조를 설명하며 "세계적으로 여성과 젊은층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싸구려'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돈도 더 잘 번다. 카시오는 카시오워치가 G쇼크에 비해 광고선전 등 비용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수십 년째 팔리는 스테디셀러 위주인 데다, 최근의 인기도 광고가 아니라 레트로 유행을 탄 입소문에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SBI증권의 츠루오 미쓰노부 시니어애널리스트는 지난 회계연도 시계 사업의 판매량이 6%, 단가가 4% 늘었고 그 대부분이 카시오워치의 기여라며 "판촉비 부담이 적어 수익성은 G쇼크보다 다소 높다"고 평가했다. 판매 단가가 오르면서 유럽에서는 통신 기능을 얹은 모델을 기존보다 40유로 비싼 80유로에 파는 사례까지 나왔다.
수익 개선은 실적과 주가로 이어지고 있다. 시계 사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회계연도 15%로 전년보다 약 3%포인트 올라 3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인력 감축 등 어두운 소식에 가라앉았던 주가도 지난달 약 5년 만의 최고 수준을 회복했다.
다만 동종 업계와 비교하면 카시오의 성적표는 아직 초라하다. 최근 3년 주가 상승률은 57%로, 같은 기간 6.1배로 뛴 세이코그룹이나 2.7배가 된 시티즌시계에 크게 못 미친다. 시가총액도 두 회사에 이은 '만년 3위'다. 시티그룹증권의 후지와라 다케로 애널리스트는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자본 효율을 끌어내린 주된 요인은 쌓여만 가는 현금이다. 카시오의 현금성 자산은 2026년 3월 말 기준 사상 최대인 1506억엔(약 1조4218억원)으로, 세이코의 3배가 넘는다. 투자 부담이 가벼운 사업 구조 탓에 벌어들인 돈이 좀처럼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카시오도 문제를 알고 있다. 지난 5월 발표한 새 중기경영계획에서 2029년 3월까지 현금성 자산을 약 500억엔 줄이고, 이 가운데 300억엔을 해외 광고와 판매망 확충, 인수·합병(M&A)에 투입할 계획을 내놨다. 다만 직전 중기경영계획에서도 250억엔 규모의 투자를 내걸었지만 사이버 공격 대응에 밀려 대부분 집행하지 못했다. 후지와라 애널리스트는 "이번에야말로 실행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카시오에 투자해온 한 일본 기관투자가는 닛케이에 "신사업과 신제품 창출에 오랫동안 고전했지만 카시오워치의 부상으로 흐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반세기 동안 변하지 않은 디자인이 이제 회사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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