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은교'의 젊음과 '맨 끝줄 소년'의 재능을 욕망하는 것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서 노(老)시인 이적요(박해일)의 욕망은 젊음의 생기를 향해 있었다. 그것이 대상화된 은교(김고은)를 향한 이적요의 갈구는 세속의 눈으로 보자면 늙은 남자가 어린 여고생에게 추근대는 저급한 모양새일 것이다.
 
그러나 이적요의 입장에서, 은교를 동경하는 것은 여고생을 어떻게든 취해 보겠다는 추잡스러운 노욕이라기보다, 생생하고 깨끗한 젊음 그 자체를 순수하게 갈망하는 것에 가깝다.
 
물론 그것조차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상스럽게 볼 수 있겠으나 이적요는 스스로 그 갈망이 절대 더럽지 아니하며, 늙어버린 자신에게 결핍된 젊음 그 자체에 끌리는 자신의 욕망은 매우 순수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을 것이다.
 
그래선지 영화 속에서 이적요의 은교를 향한 시선은 나름 우아한 면이 있다. 사람들의 속된 시선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홀로 독야청청 꿈처럼 몽환적이고 신비롭기 그지 없다.
 
영화 은교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은교'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은교’에서는 주로 이적요의 젊음(은교)을 향한 순도 높은 욕망을 공허한 환영처럼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는 또다른 욕망이 기생하고 있다. 이적요의 제자 서지우(김무열)의 졸렬한 욕망이 그것이다.
 
서지우는 이적요의 제자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스승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엄청난 열등감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서지우의 욕망이 얼마나 졸렬한가 하면, 그는 스승 이적요의 천재성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쳐박혀 있던 이적요의 원고를 주워다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만행을 저지른다.
 
이 잘못된 선택에 따른 서지우의 죄책감은 은교를 탐하는 스승 이적요를 음탕하다 비난하고 조롱하면서 스승이 갈망하는 대상인 은교를 본인이 강제로 취하는 것으로 발현한다.
 
영화 은교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은교'의 한 장면.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은교’는 이적요의 욕망을 순수한 것을 향한 동경인 것처럼 슬며시 내보이더니, 연이어 서지우의 졸렬한 내면을 백일하에 관객들 앞에 드러낸다. 그러면서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그 어떤 대상을 강렬하게 열망하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공허하고 부끄러운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결국 서지우는 파멸하고, 이적요는 혼자 쓸쓸히 남겨졌고, 젊은 은교는 유유히 그곳을 떠났다. 추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욕망·시기·질투는 얼룩만 요란하지 실체는 사라진 것이다.
 
이처럼 끝이 예정돼 있는 ‘욕망의 전차’는 하지만 다른 인물,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여전히 폭풍처럼 질주한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의 허문오(최민식)가 그러하다. 명문대 국문학과 교수라는 빠지지 않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허문오의 욕망은 얼마나 또 옹졸하고 비열할까.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중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중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20년 전 첫 소설을 발표한 후 더 이상 새로운 글을 써내지 못하는 허문오는 실패한 작가다. 독설이나 내뱉는 괴팍한 교수로 강단에 머물러 있던 그는 어느 날 강의실 맨 끝줄에 앉아 있던 공대생 이강(최현욱)의 글에 매료된다. 이강을 특별하다 치하하며 자신의 제자로 두고, 새로운 글을 독촉해댄다. 그리고 점점 이강의 글에 빠져들며 실제와 허구를 분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허문오의 열패감은 대학 동기이자 유명한 작가가 돼 있는 김수훈(허준호)을 향하고 있다. 이강의 글은 바로 그 김수훈의 파멸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허문오는 이강의 글을 추앙하는 것을 넘어 집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인기작가 김수훈의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듯했던 이강의 글은 허문오를 파멸에 빠트릴 도구에 불과했다. 질시에 사로잡힌 허문오는 이 허구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야기 속에서 몰락해가는 김수훈은 허문오가 보고, 듣고 싶어하는 스토리의 총체였다. 아마 약물에 취하듯 ‘도파민’에 취해버렸을 것이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중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중 한 장면. [사진=넷플릭스]
 
이렇게 영화 ‘은교’와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안에서 무언가를 욕망했던 세 인물이 있다. 나름의 순수성을 지녔던 이적요의 욕망은 쓸쓸하고 고독하지만 애상이 깃들여져 있다. 단지 생동하는 젊음을 향한 욕망이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본능이라고 할 만하며, 그 욕망은 욕심보다는 꿈에 가깝기 때문에 덜 추하다.
 
그러나 서진우와 허문오는 그들의 욕망에 탐욕이 포함돼 있다. 열등감을 가지게 된 구체적인 상대가 적시돼 있으며 그 상대의 추락을 기원하는 행위를 대범하게도 감행한다. 선을 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의 욕망은 더 추하며, 파멸로 향하는 길을 기어코 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적요의 욕망은 옳고, 서진우와 허문오의 욕망은 그릇된 것인가?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서진우는 그야말로 자멸했고 허문오는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이적요 역시 쓸쓸하게 홀로 남는 형벌을 받는다.
 
결국 인간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것 그 자체로 어떻게든 대가를 치른다. 돈이나 명예를 욕심 내는 것을 넘어 젊음, 아름다움, 순수함, 사랑 같은 원초적인 개념을 욕망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에 절망감을 느낄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섣부른 욕망은 내 평정심을 흐트러뜨리고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관객과 시청자들은 이 세 인물을 통해 인간의 부끄럽고 추악한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평소에는 애써 외면하거나 합리화했던 욕망도 이야기 속에서는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영화와 드라마는 타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한 번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나의 내면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것. 그것은 슬프지만 욕망하는 것을 자제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선망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매우 절제된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그 소중한 행위를 통해 짧지 않은 인생에서 평정심을 갖고 끝까지 삶을 잘 버티게 하는 힘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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