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의 자투리 리뷰] 숨어있는 4인의 퇴마사들이 지켜낸 혼돈의 세계

1990년대 한국 사람들에게 전지구적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히어로란 꽤 명확했다. 피지컬 좋고 정의롭고 좀 잘생기기까지 한 서양 남자.
 
세상을 구하는 사람은 다 미국에 있었다. 하늘을 나는 슈퍼맨, 밤거리를 지키는 배트맨, 타국의 적과 홀로 싸우는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 지구에 위기가 닥치면 뉴욕이 무대가 됐고, 영웅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드러냈고, 사람들의 환호 속에 세상을 구했다.
 
그 이후 1993년 파란 화면에 하얀 글씨만 오고 가던 공간에 등장한 '퇴마록'은 그 익숙한 영웅의 문법을 뒤집었다. 이우혁 작가가 PC통신 하이텔의 ‘납량특집관’에 연재하기 시작한 '퇴마록'은 오컬트 판타지 장르의 흥미 가득한 이야기였다. 귀신과 악령, 초자연적 존재들이 등장했고 퇴마사들은 그들과 맞서 싸웠다.
 
PC통신 하이텔의 메인화면 사진安東學人 웹페이지
PC통신 하이텔의 메인화면 [사진='安東學人' 웹페이지]

이렇게 PC통신 속 와글거리는 흰 글씨로부터 추앙받던 ‘퇴마록’이 시리즈로 출간됐고 지금까지 통틀어 천만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판타지 소설이 되었다. 90년대 청년들이 이토록 '퇴마록'에 열광한 이유를 다양하게 나열할 수 있겠으나 가장 결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당시 젊은 세대가 처음으로 한국인 영웅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웅들은 본인들도 다 각성하지 못한 숨은 영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몰래 구하곤 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 대가를 얻으려 하지 않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전세계에 생중계 되곤 하는 슈퍼맨의 활약에 익숙한 한국의 독자들은 이 은둔하는 영웅들에게 열광했다. 그 무엇보다 한국적이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고뇌하며 함께 괴로워하는 영웅들의 수난과 극복, 해원을 이루는 4인의 여정은 그만큼 길고, 험난하며 처절하였다.
 
애니메이션 퇴마록2025 사진쇼박스
애니메이션 '퇴마록(2025)' [사진=쇼박스]

10년도 더 전에 퇴마록의 ‘외전’까지 끝낸 이우혁 작가가 퇴마록의 속편을 내기로 발표하며 작년에 진행한 인터뷰에서 "'퇴마록'은 사람들을 무섭게 하려는 소설이 아니라 공포를 이겨내게 도와주는 소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생각해보면 '퇴마록'은 처음부터 공포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일반적인 공포물은 알 수 없는 존재 앞에서 인간이 무력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퇴마록'에서는 귀신이 등장하더라도 결국 누군가가 그것과 맞서 싸운다.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은 이름을 얻고, 형체를 얻고, 마침내 극복된다. 독자들이 얻은 것은 공포가 아니라 안도감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을 향해 가열찬 투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시점에 그 텅빈 이념의 공간은 각종 문화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독재와 민주주의, 진보와 보수 같은 거대한 대립 구도가 비교적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음악과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문화로 채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타나 대중음악계를 뒤집어놨고 충무로에서는 젊은 감독들이 나름의 이야기를 영화로 자유롭게 만들던 시대였다. PC통신에서는 이 새로운 세대들이 모여를 ‘취향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집단적 정체성과 추상적 이념이 약화되고 개인의 삶과 취향, 감성 등이 고양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시하고,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하지만 자유가 커진 만큼 불안도 커졌다. 이전 선배님들이 가졌던 세상을 바꾼다는 분명한 목표 대신 90년대 청년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알기 쉽지 않았다. 입시와 취업, 경쟁과 성공만으로는 내 삶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퇴마록'은 바로 그 혼란에 따라 비어버린 독자들 내면의 공백을 거대한 판타지의 세계관으로 양껏 채워주었다. 독자들이 열광한 핵심은 귀신의 퇴치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의 혼란을 정리해주려 애쓰는 존재들에게 향해 있었다. 현실에서는 설명되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이 소설 속에서는 악령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퇴마사들은 그것과 싸웠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영웅들의 태도였다. 슈퍼맨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만 결국 세상의 인정을 받는다. 배트맨은 도시 전체가 아는 전설이 된다. 대부분의 히어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기억된다. 하지만 박신부와 현암, 준후와 승희는 달랐다. 신문에 이름이 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능력이 알려지는 것도 반기지 않았다. 사람들을 구한 뒤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오히려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들은 세상을 구하지만 환호와 박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퇴마록'이 한국 독자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였는지 모른다. 당시 독자들이 처음 본 한국인 영웅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명예보다 책임을, 인정보다는 숙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독자들은 그들에게서 초인적인 힘보다 인간적인 태도를 봤다. 세상을 구하는 능력보다 누군가를 돕고도 조용히 사라지는 품성을 봤다. 그들은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이웃집 사람 같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흘렀다.
 
당시 '퇴마록'을 읽던 청소년들은 이제 중년이 됐다. IMF 외환위기를 겪었고 금융위기를 지나 팬데믹과 인공지능 시대를 통과했다. 한국 문화가 세계 곳곳을 누비는 천지개벽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인 영웅은 낯선 존재가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 음악과 스포츠 곳곳에서 한국인 주인공들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책 신 퇴마록-신세편2026 사진출판사 반타
책 '신 퇴마록-신세편(2026)' [사진=출판사 '반타']
 
그런 시대에 '신 퇴마록'이 곧 다시 등장했다. 단순한 향수 마케팅으로 보기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2026년의 세상 역시 불안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미래는 더 예측하기 어려워졌고, 사람들은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30년 전 독자들이 퇴마사에게서 찾았던 것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아니었다. 세상을 이해하게 해주는 힘이었다. 불안을 직면하고 극복하게 만드는 용기였다. 이우혁 작가가 말한 것처럼 '퇴마록'은 사람을 무섭게 하는 소설이 아니라 무서움을 이겨내게 하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퇴마록 영웅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1994년의 독자들이 사랑했던 것도, 2026년의 독자들이 다시 만나고 싶어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영웅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구한 뒤 환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묵묵히 불안을 걷어내는 사람 말이다.
 
'퇴마록'은 오컬트 소설이었지만,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귀신이 아니다. 귀신보다 먼저 두려움 앞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근처 어딘가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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