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는 이 그림이 그렇게 유명했는지도 몰랐고,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으며, 그저 ‘수영장 그림’으로만 머릿속에 각인됐다. 나는 왜 이 수영장 그림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을까. 저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이며, 왜 저러고 엉거주춤 서서 수영하는 이를 보고 있는가.
데이비드 호크니가 지난 11일 88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현대미술을 지탱한 거목이 89세 생일을 한달 정도 남기고 자택에서 평화롭게 작고하였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수영장의 ‘쨍한 풍경’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미지와 시각을 자유분방하게 왜곡한 ‘팝 아트’가 미술계를 휩쓸던 시절, 호크니는 지긋이 바라본 풍경에 집중했다. 호크니는 형상을 왜곡해 표현하기에는 그 정도로 반항적이지 않았고 외려 천진난만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호크니의 그림은 ‘무엇을 그렸나?’가 아닌 ‘무엇을 보았나?’가 더 잘 느껴진다. 물보라의 물방울, 햇빛의 반사, 물결의 흐름을 지켜본 화가의 시선이 느껴지고 그 순간의 삶이 캔버스에 기록된 듯하다. 거기에 더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고 전후의 사건을 상상하게 하는, 다시 말해 그의 그림에는 서사도 담겼다.
아는 거라곤 미술교과서 어디엔가 있던 뭉크의 ‘절규’ 정도뿐인 무학무식의 범인(凡人)조차 호크니 작품의 가치가 느껴지는 바이니, 그 그림이 어찌 위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술가의 초상(Potrait of the Artist)’ 역시 저 두 사람이 갖고 있을 스토리가 무척 애절할 것으로 나름 상상해본다. 그림을 그린 당사자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는 일단 뒤로 하고, 필자의 느낌은 저 두 사람은 분명 무척 애절하고 애틋했을 것.
이른바 ‘수영장 시리즈’에 이어진 호크니의 작품은 ‘2인 초상화’ 연작들에 이어 ‘포토 콜라주’ 실험, 원색을 적극 사용한 풍경화에서 노년에는 아이패드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를 거친다. 단지 작법은 다양했으나 그가 집중한 것은 ‘보는 것’ 그 자체임은 변하지 않았다.
청력을 상실한 이후 더욱 찬란해진 그의 풍경화는 자연을 기쁘게 응시하는 그의 아이같음이 여전함을 느끼게 한다.
호크니의 스타일이 연상되는 영화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는 제목부터 호크니의 작품명에서 따왔을 정도로 유사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네 남녀의 미묘한 관계의 변화와 의뭉스러움 역시 호크니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공백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스타일적으로 호크니의 작품이 떠오르는 영화는 ‘비거 스플래시’ 말고도 샬롯 웰스 감독의 ‘애프터썬’을 꼽을 수 있겠다. 영화는 아버지와 어린 딸의 터키 휴양지에서의 한 때를 담아냈다. 쨍한 햇살과 푸른 수영장, 그리고 물 표면의 반짝거리는 윤슬마저 호크니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애프터썬’은 평화롭게만 보이는 부녀의 여행을 담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영화다. 호크니가 물 표면의 반짝거림을 포착하기 위해 수없이 붓질을 반복했던 것처럼 아빠와의 어린 시절 추억을 캠코더의 흐릿한 화질으로나마 애써 붙잡아두려는 먹먹함이 있다.
이밖에도 호크니의 스타일이 연상되는 영화는 1969년작 ‘수영장(The Swimming Pool, 원어로는 La Piscine)’에서부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나 ‘싱글맨’ 등이 떠오른다. 각자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뽐내고 있는 이 영화들은 호크니의 작품세계를 연상시키는 요소들의 일정 부분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그에 더해서 필자는 호크니의 스타일만이 아닌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 그러니까 찬란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어떻게든 붙잡아두려는 그의 해사한 시선 그 자체를 영화 속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그러한 시선을 담은 영화는 참 많을 것이지만 필자가 떠올린 영화는 두 작품이다.
호크니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시선이 담긴 영화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Death In Venice)’은 1971년작으로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죽음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타지오(비요른 안드레센)’라는 소년의 얼굴이다. 세기의 미남이라는 타이틀로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간간히 소개됐던 덕분에 소년의 얼굴만큼은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나 정작 영화를 끝까지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타지오’가 아니라 그를 흠모하는 ‘구스타프(더크 보가드)’다. 병에 걸려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휴식을 취하러 굳이 베니스로 혼자 여행 온 구스타프는 그곳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은근히 표현된 동성애적 코드와 놀라운 비주얼의 소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서사 없이 베니스의 풍경과 구스타프의 애끓는 시선만 주구장창 보여지는 2시간 10분의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다. 그렇지만 마지막 구스타프의 죽음 직전, 노을 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타지오의 실루엣이 그 모든 지루함을 상쇄하고도 남도록 애달프다.
죽어가는 육체가 마지막 순간에 느낀 생동하는 육체의 소중함.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이 극명한 대비를 통해 죽음 자체를 생생하게 관객이 느끼도록 했다. 곧 사라질 아름다움에 대한 안타까움을 탐미적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호크니의 세상을 보는 시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두 번째로 떠올린 영화는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영화 속에 담긴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바로 주인공 ‘조’가 그토록 소원했던 클럽밴드의 일원이 되는 것에 성공한 후 어쩐지 허망해진 마음을, 떨어지는 낙엽 하나가 벅차게 채워주는 장면이다.
평생의 숙원을 이루고 무척 기쁠 줄 알았건만 ‘조’는 다시 반복되는 일상에 파묻혀 적적함을 느낀다. 풀 죽은 조는 그러다 문득 떨어지는 노란 나뭇잎을 떠올린다. 피자의 익숙한 맛을 떠올렸고 긴장할 때 물었던 막대사탕과 어머니의 실타래를 떠올렸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음악을 함께 듣던 날, 햇살이 머리로 떨어지던 날, 환풍구로 올라오는 바람을 떠올렸다.
마침내 떠올린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느끼자 ‘조’는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 그 자체에 감동한다. 태어난 것만으로 충분히 삶은 가치있다는 것을 새삼 알려준 영화 ‘소울’ 역시 호크니의 그 천진난만함을 닮아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저는 요크셔 길가에 고인 작은 물웅덩이와 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만 봐도 경이로워요”
호크니의 죽음은 현대회화의 한 거장이 붓질을 멈추고 세상과 이별한 것임과 동시에,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은 88세의 아이 같았던 한 낙관주의자의 세계가 마감한 것이기도 하다. 그 낙관의 시선만큼은 회화의 문외한인 필자에게까지 소중한 유산으로 남겨졌다.
* 자투리 리뷰 :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서 주요한 감상을 빼고 난 후 남겨진, 또다른 감상의 자투리를 리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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