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막고굴 벽화가 살아 움직여요"…천년의 둔황, 문화 IP로 되살아나다

  • 인구 18만 고대 실크로드 관문...연간 2000만명 방문

  • '디지털 둔황'…천년 문화유산에 새 생명을 불어넣다

  • 게임·공연·굿즈로 확장된 둔황 IP…젊은세대 사로잡다

  • 보존을 넘어 활용으로…세계문화유산의 새로운 실험

웨둥둔황 공연 사진간쑤성 문화관광국 홈페이지
'웨둥둔황' 공연 [사진=간쑤성 문화관광국 홈페이지]


"동굴 속 벽화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2일 저녁 중국 간쑤성 둔황. 동굴 몰입형 공연 '웨둥둔황(樂動敦煌)'이 끝나자 기자 옆자리에 앉은 한 인도네시아 관광객이 감탄을 쏟아냈다.

70분간 이어진 공연은 관객들을 천 년 전 막고굴 벽화 속 세계로 이끌었다. 막고굴은 중국 3대 석굴 중 하나로, 실크로드를 오가던 동서 문명이 천 년 동안 축적한 불교 예술의 정수를 간직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오현비파와 배소, 연화완 등 고대 악기의 선율이 가득 채운 공연장에서 하늘을 나는 천상의 무희 '비천(飛天)'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니고 아홉 빛깔 사슴인 '구색록(九色鹿)'은 뛰논다. 호선무(胡旋舞·서역의 회전무)와 요고무(腰鼓舞·허리북 춤), 비파무(琵琶舞·비파를 연주하며 추는 춤), 가릉빈가무(迦陵頻伽舞·불교의 상상 속 새 '가릉빈가'를 형상화한 춤) 등 천 년 전 벽화 속 춤은 홀로그램과 함께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눈앞에서 되살아났다.

실크로드 문화가 꽃 피운 고대 둔황 예술은 오늘날 첨단 기술과 만나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었다.

둔황의 문화유산은 일상 곳곳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사람 대신 낙타 모양의 신호등, 비천과 구색록으로 장식된 가로등과 버스정류장, 그리고 막고굴 벽화 특유의 색채와 문양이 반복된 건물 담벼락까지, 천 년 전 실크로드 문화유산은 현대 도시의 거리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기자가 둘러본 둔황은 도시 전체가 고대 역사 유적을 문화 지식재산권(IP)로 발전시켜 공연과 전시, 디지털 콘텐츠, 게임, 굿즈 산업까지 연결하는 거대한 문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실제 인구 18만 명의 작은 도시 둔황은 지난해 관광객 2391만 명을 유치하며 처음으로 연간 2000만 명을 넘어섰다. 관광산업은 지역 경제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막고굴 관람은 둔황 여행의 시작일 뿐이다. 둔황은 문화재를 디지털 콘텐츠와 문화 IP로 발전시켜 관광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사진배인선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중국 간쑤성 둔황 막고굴 외부 전경. 동굴 보호를 위해 내부 사진은 찍을 수 없다. [사진=배인선 기자]

대표 사례가 '디지털 둔황' 프로젝트다. 벽화 훼손을 막기 위해 실제 막고굴의 관람 시간과 조명을 엄격히 제한하는 대신 735개 석굴과 4만5000㎡ 규모의 벽화를 초고해상도로 디지털화했다. 관람객들은 막고굴 입장 전 들르는 디지털 전시센터에서 실제 석굴에서는 자세히 보기 어려운 벽화와 천장 문양까지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기자도 어두컴컴한 속에서 가이드의 손전등에 기대 8개 동굴밖에 둘러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디지털 막고굴 체험으로 달랠 수 있었다.

둔황 IP의 영향력은 게임 산업에서도 확인된다. 전 세계 월간 활성 이용자(MAU)가 2억6000만 명에 달하는 텐센트의 국민 게임 '왕자영요'는 둔황연구원과 협업해 막고굴 비천과 구색록 등을 모티브로 한 한정 스킨을 선보였다. 특히 비천 스킨은 4000만 세트 이상 판매돼 문화유산이 게임 콘텐츠로도 흥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넷이즈의 모바일 게임 '역수한' 제작팀도 직접 둔황을 답사해 막고굴은 물론, 초승달 모양의 사막 오아시스 명사산과 월아천의 풍경을 게임 속에 재현했다. 둔황 벽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춤을 모션캡처 기술로 재현하고 고증 전문가를 자문으로 참여시켜 문화유산을 게임 속 세계관으로 확장한 것이다.

비천과 구색록은 이제 단순한 둔황박물관 기념품이 아닌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패션 액세서리 상품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문화유산을 보존의 대상에서 소비와 체험의 대상으로 연결한 것이다. 특히 게임 등을 통해 둔황의 환상적인 문화를 접해 본 20~30대 관광객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둔황박물관 굿즈샵 전경 사진배인선 기자
둔황박물관 굿즈샵 전경. [사진=배인선 기자]

둔황박물관 굿즈숍에는 관광객들이 각종 뮷즈(박물관 굿즈)를 구경하느라 인산인해를 이룬다. 냉장고 자석과 엽서, 컵, 접시는 물론 막고굴 벽화를 담아낸 다양한 문양의 실크 스카프나 마우스 받침, 도장 인감, 벽화 속 동물을 소재로 한 블라인드 박스까지, 심지어 비천을 소재로 한 스케이트보드도 있다. 둔황은 자금성과 함께 연간 100억 위안(약 2조2563억원) 이상 매출을 달성하는 중국 주요 인기 뮤즈 IP가 됐다.

최근 중국은 궈차오(國潮·중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 열풍 속 문화유산을 단순한 관광자원이 아니라 문화 소프트파워와 콘텐츠 산업의 원천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둔황은 천 년 전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을 디지털 기술과 콘텐츠 산업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IP 산업'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둔황 야시장 전경 사진배인선 기자
둔황 시내 거리 풍경. [사진=배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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