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 정책을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형성되는 분위기다. 정책은 투기꾼을 이길 수 없다는 냉소가 서서히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앞선 민주당 정부에서 연거푸 집값 폭등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부동산 정책 실패는 민주당 정부에게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문재인 정부 몰락 또한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랬던 회의적인 분위기가 이제는 은근한 기대감으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강남권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언론 보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자산시장 호황’의 결과물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노동·가족·세대 이동까지 왜곡하는 구조적 질병에 가깝다.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막막함 때문에 청년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회피하고 있다. 무주택 서민들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좌절감 속에 희망을 잃었다. 부동산에서 비롯한 자산 격차는 극심한 계층 갈등을 낳았다. 주거는 본래 ‘삶의 기반’이어야 하지만,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왜곡된 부의 축적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체념과 박탈감이 널리 퍼져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부동산 정책에서 보여준 태도는, 시장에만 맡겨두지 않겠다는 분명한 신호로 읽힌다. 정부는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 등으로 묶어 과열 조짐을 선제적으로 차단했다. 당시 규제 목적을 “상승 기대에 편승한 가수요 억제”로 명확히 했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은 거래 지연이라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레버리지-단기 차익’ 구조를 좁혀 투기 수요를 차단하는 데 의미를 둔 조치였다. 잦은 정책 번복으로 신뢰를 잃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이번에는 정책 방향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이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은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는 단순한 상징적 행위 이상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시장의 기대심리에 개입하는 강력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숫자만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아니라 심리에 크게 좌우되는 시장이다. 지도자가 방향을 분명히 하고, 예외를 줄이며, 스스로 규칙을 따를 때 시장의 심리는 빠르게 재정렬된다. 최근 강남권에서 급매물이 늘어나고 호가가 조정 흐름을 보이는 것도 이러한 정책 기조 영향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실수요자가 “정말 달라졌다”고 체감하려면 수요 억제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정책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첫째, 실수요 금융의 정교함이 필요하다. 투기 레버리지는 단호하게 조이되 생애 최초·무주택 실수요자의 장기 고정금리·분할 상환 접근성은 넓혀야 한다. 같은 DSR 규제라도 목적에 따라 충분히 미세조정이 가능하다. 예컨대 생애 최초 구입자에 대해 장기 고정금리 비중을 조건으로 우대하거나, 공유형 모기지 확대, 청년·신혼부부의 ‘전세→매입’ 사다리를 연결하는 전환 대출 같은 설계를 병행할 수 있다. 규제의 칼날이 투기꾼만 겨눈다는 신뢰가 형성되면 정책 저항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둘째, 주택공급은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규제가 상승 기대를 꺾는 역할이라면 공급은 그 기대가 되살아날 여지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도심 역세권 고밀 개발, 공공기여를 전제로 한 재건축·재개발 절차 단축, 중소형 중심의 혼합형 단지 유도, 그리고 임대·분양·공공분양을 한 단지 안에서 결합하는 ‘사회적 혼합’ 모델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양적 공급이 아니다. 직주근접과 교통·교육 접근성을 갖춘 실거주 중심 주택을 늘려 ‘똘똘한 한 채’ 쏠림을 완화하는 데 있다.
셋째, 세입자에게 불똥이 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중요하다. 이는 정책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기도 하다. 다주택자 매도가 늘면 전월세 공급이 줄어 임대료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늘 제기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확대와 사각지대 축소,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에 대한 심사와 정보공개 강화, 전세대출이 갭투자 레버리지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 등이 필요하다. 금융 규제가 투기 차단을 위해 전세와 주담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충격이 세입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보증·공급·복지 대책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임대주택 공급 구조 재편이 뒤따라야 한다. 현재 전세 중심 구조는 가계부채와 가격 변동성을 동시에 키워왔다. 전세 시장을 시장에만 맡겨두기보다 공공 매입임대와 전세 임대 확대, 민간 자본이 장기 임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기관 임대 활성화, 임대료와 주거 품질 기준을 명확히 하는 장기 임대 표준 도입 등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세입자에게 필요한 것은 ‘버티기’가 아니라 ‘선택지’다. 월세 세액공제 확대, 주거급여 현실화, 청년과 고령층 맞춤형 공공임대 확대 같은 생활 정책이 함께 작동할 때 임대시장은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
부동산 시장 안정은 한 번의 대책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정책 방향이 흔들리지 않되 실수요, 세입자, 공급이라는 세 축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후속 설계가 뒤따를 때 비로소 효과가 나타난다. 이재명 정부의 강점은 분명한 정책 신호와 일관성이다. 여기에 실수요자가 체감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와 세입자를 보호하는 안전망, 그리고 임대공급 구조 재편이 더해진다면 부동산 정책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는 ‘민주 정부=부동산 실패’라는 오래된 정치 공식을 끊어내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순천향대 초빙교수 ▷전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국민소통위원 ▷국가유산청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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