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회계연도 내 예산 통과 빨간불… 다카이치 정권, 기세 주춤?

  • 참의원 '여소야대' 장벽 못 넘고 임시 예산 편성… 야당 "예견된 사태"

  • 중의원 '불도저' 심의에 참의원 자민당도 탄식, 다카이치 리더십 '상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AFP·연합뉴스]



지난 2월 중의원(하원) 선거 대승으로 기세를 올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공언해온 ‘회계 연도 내 예산안 통과’ 목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야당의 파상 공세와 참의원(상원)의 ‘여소야대’ 장벽에 가로막히면서 목표 달성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는 23일 자민당 임원회의에서 2026년도(2026년 4월~2027년 3월) 예산안의 회계연도 내(3월 31일까지)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 11년 만에 ‘임시 예산(잠정예산)’ 편성 검토를 자민당에 지시했다. 복수의 정부·여당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르면 이날(24일) 임시 예산안 편성 작업을 공식 표명할 전망이라고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일본 정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지지율만 믿고 참의원의 현실을 무시한 다카이치 정권의 ‘안일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예산안 처리 차질 사태는 다카이치 총리가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는 평가다. 중의원 자민당은 지난 13일, 4분의 3이라는 압도적 의석을 무기로 회계연도 내 예산안 통과를 위해 지난 20년 내 최단 시간 심의 기록을 세우며 예산안을 강행 통과시켰다. 하지만 과반 의석에 4석이 부족한 참의원은 전혀 다른 전장(戰場)이었다. 야당은 참의원 내 문교과학위원회, 총무위원회 등 핵심 상임위원장 자리를 장악한 채 “충분한 심의 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여기에 마쓰모토 요헤이 문부과학상의 불륜 스캔들까지 터지며 참의원 자민당의 협상력은 마비됐다.

야당의 반응은 냉담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임시 예산 편성을 두고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라고 표현하자, 사이토 요시타카 입헌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아니라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상황”이라고 직격했다.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 역시 소셜미디어(SNS) X(옛 트위터)를 통해 “참의원에서 심의 일정이 꼬여 결국 임시 예산을 짤 수밖에 없는 지경에 빠졌다. 정부의 정세 판단이 너무나도 안일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야당이 ‘참의원 자민당’의 노력은 평가하면서도 ‘중의원 자민당’의 독주를 비난하는 전략을 쓰면서, 여당 내에서도 중·참의원 간의 미묘한 분열 양상이 포착되고 있다. 실제로 참의원 자민당 내부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1월 중의원 해산 결정으로 선거가 치러진 탓에 이미 예산 심의 일정이 촉박해진 상황에 더해, 중의원 자민당이 야당을 무시하며 무리하게 속도전을 벌인 탓에 참의원이 야당의 ‘인질’이 됐다는 불만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참의원 자민당의 한 간부는 “총리가 입버릇처럼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겠다’고 말해왔지만, 목표로 하는 것과 실제로 실현하는 것은 천지차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헌법 규정에 따라 예산안은 중의원을 통과한 뒤 참의원이 30일 이내에 의결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통과된다. 지난 13일 중의원을 통과한 이번 예산안은 내달 11일이면 자동으로 통과되지만,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가 끝까지 ‘연도 내 통과’를 고집한 배경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총리 측근을 인용해 “중의원 선거 대승의 기세를 이어가려면 정책 수행의 속도감을 입증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게 총리의 판단”이라고 전했다. 특히 미일 정상회담 성공과 높은 내각 지지율에 고무된 다카이치 총리는 심의 시간 확보를 우선하는 국회 운영 방식에 강한 불만을 품어왔고, 사실상 스스로 ‘연도 내 통과’라는 깃발을 내릴 명분을 찾지 못했다. 이러한 정치적 자존심 싸움은 결국 자동 통과되는 11일까지 단 11일간의 예산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별도의 예산서를 새로 찍고 국회 심의를 다시 거쳐야 하는 초유의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게 됐다. 당장 이번 주 후반이 예산서 인쇄를 위한 물리적 마지노선이다.

단순한 행정력 낭비도 문제지만, 정작 이번 사태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중의원 선거 압승과 미일 정상회담 성공으로 승승장구하던 다카이치 총리의 리더십이 처음으로 정면 돌파에 실패하며 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 예산 굴욕’이 다카이치 총리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헌법 개정과 안보 강화 로드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국정의 가장 기본인 예산 처리조차 제때 못 하는 무기력함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자민당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두고 “치킨 게임의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다카이치 총리가 야당에 고개를 숙인 이번 사태가 향후 정권의 국정 동력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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