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오일쇼크의 경고, '위기설 진화'로는 부족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이 이번 중동발 에너지 위기를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스 충격을 합친 수준”이라고 규정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카타르 LNG 시설 타격, 중동 전역 에너지 인프라 훼손은 단순한 공급 차질을 넘어 글로벌 에너지 질서의 균열을 예고한다. 전쟁이 당장 종료된다 해도 시장 정상화까지 최소 4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해협이 재개방되더라도 글로벌 석유·가스 시장은 최소 4개월간 공급 부족 상태를 이어가고, 올해 생산량도 당초 목표 대비 3%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충격은 곧바로 시장에 반영됐다. 코스피는 6% 가까이 급락했고, 일본 닛케이225와 상하이종합, 홍콩 항셍지수도 3% 가량 하락했다. 환율은 1,510원을 돌파했다. 금융시장이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정부는 “4월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며 위기설 차단에 무게를 두고 있다. 비축유 방출, 대체 도입선 확보, 나프타 수출 물량의 내수 전환 등 필요한 조치들이 제시됐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는 단기 수급 관리로 안심시킬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시장이 불안해하는 것은 물량 자체보다 그 물량의 지속 가능성과 비용, 경로의 불확실성이다. 

나프타 가격은 한 달도 채 안 돼 90% 가까이 급등했고, 석유화학 업계 재고는 2주 남짓에 불과하다. 일부 기업은 공급 불가항력 선언을 검토하고 있다. 자동차·조선·전자 등 전방 산업으로의 충격은 이미 시작됐다. 이 상황에서 “관리 가능하다”는 반복된 메시지는 설득력을 잃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의 대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연일 회의를 열고 있다. 공급망 점검, 비상 대응, 업계 간담회. 형식은 갖춰져 있다. 그러나 시장과 현장이 체감하는 것은 다르다. 회의는 보이지만, 실행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물량은 얼마나 확보됐는지, 운송 경로는 얼마나 안전한지, 비용 상승은 어디까지 감내 가능한지, 사태 장기화 시 다음 단계 대응은 무엇인지—이 모든 질문에 대한 수치와 시나리오가 빠져 있다. 

이 상태에서의 낙관은 정책이 아니라 기대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도 공포도 아닌 구조적 대응과 구체적인 실행이다. 

우선 에너지 외교의 복원과 다변화가 시급하다. 일본이 이란과의 협의 채널을 가동하는 것은 자국 에너지 안보를 위한 실용적 선택이다. 한국 역시 미국과의 공조를 전제로 하되, 중동 주요 산유국과의 직접 채널을 복원하고 ‘수입선 확보 외교’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시장이 아니라 국가가 움직여야 확보된다. 

산업 대응도 선언이 아니라 실행 매뉴얼로 제시돼야 한다. 나프타 공급 차질 시 업종별 우선 배분 기준, 생산 조정 방식, 비용 분담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조정 가능하다”는 수준으로는 산업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시장과의 소통 역시 바뀌어야 한다. 위기설을 진화하려는 접근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린다. 시장은 안심이 아니라 정보를 원한다. 수급 계획, 재고 수준, 도입 일정, 비용 전망,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중장기적으로는 에너지 구조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프타 중심의 석유화학 구조와 중동 의존적 수입 구조는 이번과 같은 충격에 취약하다. 원전, LNG 다변화, 재생에너지와 수소를 포함한 에너지 믹스 재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번 위기는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다.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다. 에너지, 금융, 산업이 동시에 흔들리는 전형적인 복합 충격이다. 이 국면에서 필요한 것은 메시지 관리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다.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정부가 ‘위기설’을 끄는 데 집중할수록 시장은 더 큰 위기를 상정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 그리고 그에 걸맞은 행동이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이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 캔버라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현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위기는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 공급 충격을 모두 합쳐놓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이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 캔버라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진행한 연설에서 "현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위기는 1970년대 두 번의 오일 쇼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가스 (공급) 충격을 모두 합쳐놓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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