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의 삶은 ‘자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천재적 문사(文士)이자 청백리 관료였던 그는 '실천'을 통해 새 시대를 여는 데 기여했다. 58세가 되던 해인 1577년(선조 10), 왕명을 받아 '을사삭훈반교문(乙巳削勳頒敎文)'을 지은 것이 대표 사례다. 선조는 선왕인 명종 초에 발생한 을사사화에 따른 여파를 매듭짓고자 을사사화 당시 타인을 살육하면서까지 공신에 오른 이들의 공을 역사에서 삭제토록 하는 내용의 교서를 내리고자 했다. 혹시 모를 정치적 피해로 가문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이를 쓰겠다며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이후백은 달랐다. 그는 명문으로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르며 '새 시대로의 진입'을 선언했다. '메아리'가 있는 글이었다. 이러한 메아리가 있는 이후백의 글들을 모은 <신편신역 청련집>(태학사)이 나왔다. 심경호 고려대 명예교수가 신편 신역을 맡았다.
심경호 교수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 아주경제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결정적인 순간, 욕먹을 각오를 하고 실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며 “이후백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서면 스스로 나서 이를 담당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이후백은 59세 때까지 24년간 조정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호남 암행어사를 지냈고, 대사간⋅이조판서⋅호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이후백은 엘리트 관료로서 민생 안정에 힘썼다. 글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다. 실록과 목민심서는 이후백을 '문장이 밝고 행정이 공정한 사람'이라 기록한다. 실제 그는 암행어사로 호남을 순찰할 때는 미흡한 행정을 지적했고, 함경도관찰사가 되어서는 곳간보다 백성의 삶을 우선했다. 부세를 감면하고 굶어죽어가는 이들에게 곳간 문을 열었다. 벼슬을 요구한 친족에겐 "구하는 자만이 얻게 되면 공도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그렇기에 그의 글은 울림을 준다. 심 교수는 "청련은 젊었을 때 지제교, 50대 이후에는 예문관 제학을 하며 국정 운영을 비롯해 철학사 등에 중요한 글들을 남기셨다"며 특히 이후백의 문장은 정치적 혹은 외교적 목적으로 국가적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른바 경국문장(經國文章)이었다고 강조했다.
심 교수는 이후백의 '을사삭훈반교문'이 목릉성세(穆陵盛世)를 열었다고 강조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 선조 치세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등 뛰어난 학자들이 활동하며 학문과 문화, 인재 등용이 크게 융성했던 시기를 목릉성세라 표현한다.
"청련이 '을사삭훈반교문'을 쓴 것을 시작으로 정치적 안정성과 공정성이 논의되기 시작했죠. 그 덕분에 퇴계나 율곡 등 훌륭한 학자들과 관료들이 활동할 수 있었어요. 우리 문화의 꽃을 피울 만한 인물들이 각 분야에 있는 아주 화려한 시대였어요."
또한 이후백은 51세였던 1570년(선조 3) '국조유선록서(國朝儒先錄序)' 서문을 지어 올렸다. 조선 유학의 도통을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으로 정리하며 국가의 철학적 정체성을 제도적 언어로 선언했다.
심 교수는 이를 통해 "우리 문화의 자긍심과 우리나라 철학사의 주체성을 세울 수 있었다"고 평했다. "중국을 중심에 둔 해동 혹은 동국이 주류였던 시대에 국조라 했어요.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네 분을 우리나라의 훌륭한 유학자로 선정해 문묘에 종사하게 했죠. 그 이후 광해군이 이를 계승, 여기에 퇴계 이황을 추가해 국가의 자존심을 높였어요. 역사는 만들어지기도 하죠. 가장 중요한 서문을 이후백이 써서 문제의 소지를 없앴어요."
심 교수는 '실천'의 중요성을 말했다.
"관료제 자체가 나쁜 게 아니에요. 충실한 사람을 얻지 못해 문제가 발생하는거죠.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임무를 맡기고, 그 사람이 실천적으로 해나간다면 정치든 행정이든 나쁜 방향으로 갈 일이 없죠.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통해 말하듯 높은 관직이든 낮은 관직이든 누구나 직무에 충실해야 해요. 제도나 이념을 떠나서 책무를 자담한 이후백 같은 사람이 현대에 필요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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