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중국몽(中國夢)은 회색코뿔소를 타고온다

  • 기술 굴기로 질주하는 中 …구조적 위기 넘겨야 역사의 편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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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심서(中國心書) 2025 ⑪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몽(中國夢)과 '중국제조 2025' 

2049년은 중국에게 매우 특별한 기념비적 해이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톈안먼 성루에 올라 신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선포했다. 새 국가(國歌)가 울렸고 새 깃발이 게양되었다. 중국 국치(國恥)의 세기가 끝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이면 중국이 모든 면에서 미국을 추월해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이자 '세계의 중심나라'라는 한자 그대로의 중국(中國)이 돌아오는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소위 중국몽(中國夢)이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전 패권국가였던 중국을 원형으로 간주한다.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 중국은 대수학과 삼각법을 포함한 수학 분야에서 선진적 발전을 이루고 나침반과 화약 같은 항해와 군사 혁신을 이끈 발명품도 내놓았다. 19세기 바야흐로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의 동양 지배)에 중국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때 제국주의 열강 세력으로부터  중국이 온갖 시련을 당하고  왕좌를 잃어버리게 된 큰 원인으로 삼는 게 과학기술이다. 신중국이 과학기술 자력갱생에 매진하는 이유이다.

마오쩌둥은 일치감치 1950년대부터 원자탄과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양탄일성(兩彈一星)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시대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과학기술이 진정 놀라운 속도로 발전한 시기가 지금의 시진핑 집권기이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미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중국은 더 나아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선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몽은 2012년 출범해 2022년 집권 3기에 들어간 시진핑 체제의 핵심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1단계로 2021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샤오캉 사회’를 건설하고, 2단계로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며, 마지막으로 건국 100주년인 2049년 경제·군사·외교 등 모든 면에서 세계 최강인 미국을 뛰어넘는 '전면적인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는 지금 어떤 시각으로 중국몽을 바라보고 있을까? 

 2015년 시진핑 국가주석은 제조업 혁신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 ‘중국 제조 2025'를 내걸었다. 이 비전의 발표 당시만 해도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기술 강국이 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러나 중국은 10년 사이에 ‘저가 생산 공장’에서 ‘최강의 제조 강국’으로 환골탈태 했다. 정부 주도의 공급망 생태계를 혁신하고 기술 자립도와 수출 경쟁력을 크게 높였다. 중국의 제조업 수출액은 작년도 기준 3조6000억 달러로 미국의 1조4400억 달러 대비 2.5배 정도이다. 중국과 미국의 격차가 10년 만에 3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중국은 전기차·로봇·드론· 배터리 등 여러 분야에서 이미 압도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첨단 반도체 칩과 소프트웨어 수출 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바이오테크·반도체·양자기술 등 핵심 첨단 분야에서 약진은 연일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우주정거장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달 뒷면에 세계 최초로 착륙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중국이 이처럼 기술력이 강한 제조업 강국으로 환골탈태한 비결은 뭘까? 무엇보다도 천문학적 연구개발(R&D) 투자와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꼽을 수 있다. 신한투자증권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 R&D 지출이 3.6조 위안(약 720조원)으로, 대한민국 1년 예산(657조원)을 웃돈다. 화웨이, 텐센트, 알리바바, BYD 등 대형 민간기업들은 R&D 투자를 선도했다.  중국 기술굴기의 또 다른 원동력은 인적 자원이다. 최상위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 대학의 인기학과는 전기공학·전자공학·기계·컴퓨터공학 등 공학 분야이다. 또 하나는 공산당 국가 권력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정부와 민간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효율성과 창의성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팍스 시니카' 시대 열리나

'중국 제조 2025'로 상징되는 중국의 산업굴기에 맞서 미국은 공급망 다변화를 모색하고 대중 기술통제와 함께 미 국내로 동맹국들의 반도체 배터리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대표 정책인 ‘중국제조 2025'의 다음 버전을 마련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서방국가의 오해나 비판을 피하기 위해 ‘중국제조 2035’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향후 10년의 정책을 구체화하고 반도체 제조 장비 등 미래먹거리인 첨단분야 기술자립에 한 걸음 더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중국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계속 낮아진다고 해도 향후 20년간 중국의 평균 성장률은 4% 후반대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같은 기간 미국은 평균 2.1%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고, 이렇게 되면 중국은 2028~ 2030년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2차 대전 종전 이후 초강대국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 질서를 유지했다. 그러나 스스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무너뜨리며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25년 시간은 중국의 편일까?  과연 21세기 중반에는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즉 팍스 시니카 시대가 열릴까?   

중국에서 나오는 경제 전망 수치나 보고서들이 다소 장밋빛 전망에 치우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예측이 완전 빗나가는 경우도 드물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에 상당히 뿌리를 내린 혐중 정서에 기댄 극우세력의 일부 주장을 보면 중국 경제가 곧 붕괴하거나 시진핑 실각설 등 공산당 체제가 혼란에 빠질 것처럼 호도하는 사례가 적지않다. 여기서 우리가 현실로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중국이 서방의 압력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자신감을 계속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전혀 굴복하지 않고 지금 중국은 오히려 자유 무역을 외치고 있다. 그만큼 경제 맷집이 세진 것이다. 일부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며 일방주의에 치우치는 미국을 떠나 중국 편에 서는 현상도 중국의 전략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25년, 미국은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키운 셈이다.  

공교롭게도 '중국 제조 2025'를 내세운 해인 2015년은 중국 경제가 뉴노멀(새로운 정상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즉 과거의 두 자릿수 고성장에서 7% 미만의 중속 성장으로 전환된 것이다. 어떤 경제도 7% 이상의 고성장을 영원히 지속할 수 없기에 이 전환은 불가피했다. 2019년 시 주석은 중국 경제가 당장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위험을 인정했다. 그는 수백 명의 공산당 고위 간부들에게 중국은 ‘검은 백조'와 ‘회색 코뿔소’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색 코뿔소(gray rhino)라 함은 이미 누구나가 다 문제라 인식하고 있으나 그 규모가 지나치게 큰 나머지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경제 문제를 일컫는다. 검은 백조(black swan)처럼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갑자기 발생해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는 ‘블랙 스완’과는 다른 개념이다.


중국 경제의 ‘회색 코뿔소’

일반적으로, 중국이 키우고 있는 ‘회색 코뿔소’로 꼽히는 문제로 출산율 급락으로 인한 인구 위기, 탈동조화(미국 등 주요국과의 기술·산업·공급망에서 분리되는 현상)와 공공 부채 등이 꼽힌다. 장기적으로 저출산에 의한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는 중국 경제 성장과 활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해 말 기준 중국 인구가 14억1175만명으로 전년 대비 85만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경제 침체와 고용불안으로 출산과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큰 젊은 층의 출산 기피 현상 심화가 인구감소로 이어진 것이다. 생산가능인구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1년 약 70%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줄어들다 지난해 62%까지 내려왔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일부 지방정부 부채도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 국영기업은 그동안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에도 무리한 투자로 몸집을 키우면서 부채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진 상황이다. 제2금융권 등에서 이뤄져 제대로 관리가 안되는 기업대출, 소위 '그림자 금융'도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정부가 잘 알고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분야이다.  
 

지난 5년 동안 중국은 세계 경제 성장에서 평균적으로 30% 정도의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곧바로 세계 경제의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중국 경제는 장기화된 부동산 시장 침체와 내수 부진과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순항 중이다. 올해 3분기 성장률은 4.8%로 예상치에 부합하고 올해 목표치인 약 5% 달성 경로는 유지되고 있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참예한 무역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수출주도 성장 모델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고 있다.

중국 산둥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힙자다 M. 우스만 (Sahibzada M. Usman) 박사는 '모던 디플로머시' 기고문에서 "수억 명을 빈곤에서 구해낸 중국의 성장 모델은 기로에 서 있다"며 중국 경제의 과감한 개혁을 촉구했다. 그는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가 만만찮은 도전이지만, 이를 중국 성장의 유일한 장애물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부진한 소비, 흔들리는 부동산 시장, 감소하는 외국인 투자 등이 복합적으로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며 "이러한 도전을 헤쳐 나가려면 중국은 과감한 개혁을 통해 부동산 부문을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기업과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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