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네타냐후의 위험한 도박…트럼프식 외교 해법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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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8일 유엔 총회 연설에 나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도화선이 점화된 폭탄을 그린 도표(diagram)를 들고 나와 이란 핵개발을 경고했다.[ AP}  



'레드 라인'을 넘은 이란?

베냐민 '비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연설이나 기자회견에서 각종 소품을 활용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유명하다. 2012년 9월 유엔 총회 연설에서 그는 퓨즈에 불이 붙은 폭탄을 그린 도표(diagram)를 들고 나와 청중에게 물었다.

"핵폭탄을 만들려면 고농축 우라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리고 이란은 그 선에 얼마나 가까이 왔습니까? 자, 보여드리겠습니다."

네타냐후는 매직펜으로 이스라엘이 용납할 수 없는 우라늄 농축도 90%에 해당하는 붉은 선(red line)을 그리며 이란이 그 경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방 언론은 이를 '와일 E. 코요테 만화 같은 핵폭탄'이라며 조롱했지만 이 순간부터 이란 핵문제는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이란 정부는 네타냐후의 주장을 '근거 없는 연극'이라 일축하며 오히려 이스라엘에 자국의 비공개 핵무기를 해소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이스라엘은 핵탄두를 80~200기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모호성 정책(Policy of Ambiguity)'을 유지하며 핵무기 보유 여부에 대해 명확히 인정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있다.

세월이 흘러 2025년, 네타냐후는 마침내 "이란이 이미 선을 넘었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이달 13일 전폭기를 동원해 이란 핵시설 공격에 나섰고, 이란도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우방국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에서 이견을 좁혀가는 상황에서 감행된 이번 공격은 중동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 정치와 핵 비확산 체제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네타냐후의 리더십과 정치적 상황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수 총리인 네타냐후(75)는 강경 보수주의자이자 탁월한 소통 전략가로, 그의 리더십 아래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와 금융 투자가들에게 경제 선진국 지위를 확고히 인정받았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 통합 측면에서는 전혀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과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내적으로 네타냐후 정부는 우파 리쿠드당을 중심으로 극우 성향의 종교 정당, 초정통파, 민족주의 정당 등과 연정으로 겨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정부의 사법부 권한 약화 시도는 대규모 시민 시위로 이어졌고, 국론 분열과 정치적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2일 야권이 발의한 연립정부 해산안은 가까스로 부결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네타냐후의 정치적 위기 탈출용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 대한 초기 대응 실패도 도마에 오르며,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핵시설 공격이라는 도발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네타냐후는 이란 핵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일관된 강경책을 펼쳤다. 미국, 특히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구축과 아랍 국가들과의 수교(아브라함 협약)로 이스라엘의 외교적 지평을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 유럽과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최대 걸림돌로 비판받고 있다. 그의 '폭탄 도표' 같은 상징적 시각자료를 활용한 연설은 과장과 선동이라는 비판과 함께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를 국제적 의제로 만드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이란의 핵 개발 현황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란이 현재 핵탄두 9개를 제조할 수 있는 408㎏ 상당의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주장과 달리 IAEA와 미국 정보기관은 이란이 아직 핵무기 제조 결정을 내렸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란을 '잠재적 핵무장국(threshold state)'으로는 보지만 실질적 무기화 판단에는 명확한 선을 긋고 있다.

이란 정부는 자국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2015년 체결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농도와 재고를 제한하고 국제적 감시체제를 확립했다. IAEA는 오랫동안 이란의 합의 이행을 공식 인정해왔으나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탈퇴하고 경제제재와 외교적 압박을 재개하면서 상황이 변화했다. 이에 대응해 이란도 우라늄 농축 농도와 핵활동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감시를 축소했다.

현재 이란은 준무기급인 60% 농도까지 우라늄을 농축하며, 단기간에 무기급(90%) 고농축 우라늄 생산 능력을 갖춰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농축 우라늄이 실제 핵무기로 전환됐다는 물증은 아직 없다. 이스라엘의 기드온 사르 외교장관은 21일 독일 빌트지와 인터뷰하면서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이후 "우리는 그들(이란)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최소 2~3년 지연시켰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포르도 연료농축시설의 전략적 중요성

이란의 포르도 연료농축시설은 2009년 국제사회에 공식 발견된 이래 논란의 중심에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런 깊숙이 매설된 핵시설을 심각하게 파괴할 수 있는 3만 파운드(1만3500㎏) 벙커버스터 폭탄이나 B-2 스텔스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란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군사력은 미국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미국에 군사적 개입을 지속적으로 촉구했다.  

트럼프의 딜레마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과 중동 전쟁 개입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하다가 21일(현지시간) B-2 폭격기와 미사일을 동원해 포르도를 포함한 이란 내 핵시설 3곳을 직접 타격했다. 지난 19일 이란에 최종 시한으로 2주를 부여한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이틀 만에 기습공격을 단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우리는 포르도와 나탄즈, 이스파한 등 이란의 3개 핵 시설에 대한 매우 성공적인 공격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특히 "폭탄의 전체 탑재량이 주요 지점인 포르도에 투하됐다"며 "이제는 평화의 시간"이고 "이란은 이제 이 전쟁을 끝내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폭스뉴스는 미국이 포르도 핵시설에 벙커버스트 6개를 투하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포르도에 다수의 벙커버스터가 투하됐고, 초기 피해 평가 결과 해당 시설은 무력화됐다"는 판단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이란원자력위원회는 미국의 공습에도 핵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공격 결단이 "역사를 바꿀 대담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이란과 협상 가능성을 내비치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레 이란을 직접 타격함에 따라 중동의 불안한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미국 대통령이 공군을 동원해 이란의 주요 시설을 타격한 것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이다. 특히 포르도 핵시설을 타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희망했던 외교를 통한 해법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평가이다. 트럼프가 제시한 '2주 시한'을 이용해 유럽과 중동의 중재국들이 긴박하게 협상 테이블을 오갔지만 외교적 해법의 돌파구는 마련되지 못했다. 
 
미국은 이란과 핵 협상에서 이란이 민간 사용 목적을 포함해 모든 핵 프로그램을  전면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이란은 민간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할 수준은 허용돼야 한다고 맞섰다.  트럼프는 20일 이란에 일부 우랴늄 농축을 허용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란은 세계 주요 산유국인데 "왜 민간용으로 그런 것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상군 파견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가장 원치 않는 것이 지상군(파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의 분열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한다면 이란은 미군기지, 동맹국, 유류선박에 대한 공격과 사이버전까지 전방위적 반격을 예고했다. 이란의 대반격으로 미국이 지상군 파견까지 고려하는 상황이 온다면 이는 미국이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한 수렁에 다시 빠질 위험성을 내포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해 "이미 벼랑 끝에 내몰린 지역에서의 위험한 확전이며 국제 평화 및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또 "이 분쟁이 급속히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질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민간인은 물론 해당 지역과 나아가 전 세계에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의 이란 군사 개입과 관련해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 내 분열이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지지자들은 해외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반면 국가안보 보수파들은 이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이 균열은 단순한 이란 문제를 넘어 트럼프의 외교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트럼프식 외교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는 그의 접근 방식은 복잡한 국제 분쟁에서 일관된 전략을 구사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동맹국을 배제한 일방적 의사 결정 스타일은 이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앞으로 트럼프가 국내 지지층의 균열을 최소화하면서도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그의 결정은 단순히 이란 핵 문제를 넘어 앞으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중동 정책의 향방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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