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에는 ‘사법 정의 실현’, 대법원의 이재명 후보 선거법 사건 파기 환송에는 ‘사법 쿠데타’. 더불어민주당이 두 사건 심판 결과에 보인 반응이다. 똑같은 사법부 판결인데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판결은 ‘정의’ 라고 치켜세우고, 불리한 판결은 ‘쿠데타’라고 깎아내린다. 유·불리에 따라 상반된 주장을 하는 더불어민주당 행태는 놀랄 일이 아니다. 늘 그래 왔다. 그러나 상식을 가지 국민이라면 민주당식 언행에 동의도, 공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1일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2심 무죄 판결을 유죄 취지로 깨는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이 후보에 대한 서울고법 형사6부(최은정 이예슬 정재오 부장판사) 의 무죄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박의 핵심 기준이 상식이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한 게 명백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무죄 판결을 파기하면서 ‘잘못’ 이라는 표현을 18회나 썼다. ‘오해’와 ‘왜곡’도 각각 8회, 2회 썼다. 대법원이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이런 용어를 쓴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서울고법 무죄 판결이 문제 투성이라는 뜻이다.
대법, 상식에 기초해 2심 무죄 판결 파기
이 후보는 성남시 백현동 부지 용도를 4단계나 상향 조정한 이유를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고 했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을 안 해주면 직무유기 이런 걸 문제 삼겠다고 협박해서’라고 했다. 이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국토부가 그런 협박을 한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만 따져 보면 된다. 법정에 나온 성남시 공무원 등 증인 22명 중 국토부 협박이 있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국토부가 성남시에 보낸 공문에는 ‘성남시가 적의 판단해서 하라’고 적혀 있었다. 성남시가 ‘알아서 판단해서’ 하라는 뜻이다.
이쯤 되면 ‘국토부가 협박해서’라는 이 후보 발언은 거짓임이 명백하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상식을 따라 이 후보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인 서울고법은 온갖 법리를 펴며 무죄를 선고했다. ‘협박 받았다’는 말은 어떤 사실을 말한 게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의미의 의견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의견 표현이기 때문에 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어떻게 의견 표현인가? 대법원은 의견 표현이 아니라 허위 사실 공표라며 유죄라고 판결했다.
일반 국민들은 ‘조작’이라는 발언을 이 후보가 김문기씨와 골프 친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한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게 상식적 판단이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은 이 부분에도 무죄를 선고했다. ‘조작’이라는 발언의 의미는 사진의 일부 내용을 확대해서 원본과 다르게 만들었다는 취지 등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며 김문기씨와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의미로만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게 상식에 맞는 판단인가? 대법원은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허위 사실 공표로 유죄라고 판단했다.
민주당, '사법 쿠데타' 맹비난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직 즉각 사퇴를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판결이다.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며 판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모든 게 끝난다는 취지로 읽힌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대법원이 1심 유죄 판결과 똑같은 판결을 했기 때문에 파기 환송심의 형량도 1심 형량(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재명 후보는 피선거권이 박탈돼 대선 출마 자격이 없어진다. 다만 재판 절차에 걸리는 법정 시간 상 대선일 이전에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는 어렵다. 그래서 법적으론 유죄가 확정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유죄’이다. 그런 상태에서 선거를 치르게 된다.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선 출마가 정당한지, 대통령 자격이 있는지 하는 논란으로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고 나라는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법원을 향해 비상식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사법 쿠데타, 대선 개입’ ‘이것들 봐라? 한 달만 기다려라’ ‘조희대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 등등. 심지어 ‘사법부를 없애야 할지도 고민해야’ '사법 내란'이라는 말까지 한다. 파기환송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을 향해서는 '(오는 15일로 예정된) 이 후보 공판일을 대선 이후로 바꿔라, 안 하면 재판 막을 것이다'라고 했다. 일부 의원들은 서울고법에 '경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썼다. 민주당 비난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되지만 모두 법과 상식에 어긋난다.
민주당은 대법원이 심리 두 번 만에 선고하는 등 졸속 재판을 했다고 비난한다. 6만 쪽에 이르는 재판 기록을 언제 다 읽어 봤느냐고도 한다. 이는 막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소리다. 대법원 재판 시스템을 전혀 모르거나 모르는 척해서 하는 소리다. 대법원 재판은 사실심이 아니라 법률심이다. '이재명 피고인이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 같은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게 아니다. 그가 한 말이 선거법 상 허위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느냐 아니냐 하는 법률적 판단을 하는 곳이다. 사실 관계는 이미 1심과 2심을 통해 다 드러났고 정리됐다. 대법관들의 심리에 앞서 수십명의 재판연구관들이 1, 2심 재판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법률적 쟁점을 정리한다. 대법관들은 이를 토대로 심리해서 결론을 내린다.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들이 모여서 하는 심리는 일반적으로 한두 번이 전부다.
판결 내용 비합리성 지적 못하고 엉뚱한 절차 시비
이재명 후보의 다른 사건 재판 때도 그랬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시키려 한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혐의로 재판 받았다. 2심은 이 후보 말이 거짓이라며 벌금 3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대법원이 2020년 7월 전원합의체 재판을 열어 이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이로 인해 이 후보는 기사회생했다. 이때 전원합의체는 딱 한 번 심리하고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번에 두 번 심리했다. '심리를 딱 두 번 하고 선고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민주당 주장은 이 후보 사건 전례에 비춰 봐도 설득력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이 졸속 주장을 들고 나온 시점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이 후보 2심 무죄 재판 기록을 지난 3월 28일 접수했다. 4월 22일 전원합의체에 넘겨 첫 번째 심리를 하고 4월 24일 두 번째 심리를 했다. 그리고 4월 29일에 '5월 1일 선고하겠다'고 공지했다. 이런 과정은 언론 보도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졌다. 재판이 신속히 진행되고 있음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었다. 민주당은 이때까지만 해도 대법원 재판 진행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았다. '왜 그렇게 서두르냐'고 하지 않았다. 아마 2심 무죄 판결이 그대로 확정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자기들 예상과 달리 유죄 취지 판결이 나오자 졸속 재판 주장을 들고 나왔다. 졸속이라면 왜 진작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나? 무죄 판결이 나왔더라도 졸속 재판이라고 주장했을까? 민주당 주장이 얼마나 정략적인지 보여준다. 민주당이 진정으로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려면 판결 내용의 비합리성을 납득할 수 있게 지적하면 된다. 비합리성은 한마디도 지적하지 못하고 졸속 재판이라는 비난만 하고 있다.
민주당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재판부에 이 후보 공판 기일을 대선 이후로 늦추라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대놓고 법을 무시하는 처사다. 공판 기일 연기 신청은 피고인만이 할 수 있다. 이 후보가 선거운동 등의 관계로 연기 신청을 하면 된다. 물론 받아들일지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한다. 피고인이 아닌 민주당이 공판 기일을 늦추라고 주장할 법적 근거는 없다. 이는 법을 떠나 상식의 문제다. 민주당의 공판 기일 연기 강요는 사법부 겁박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탄핵 결정' 승복한 국민 법치 의식 못 따라가
민주당의 비상식적인 사법부 겁박 행태는 윤석열 탄핵 사태를 통해 나타난 국민의 높은 의식 수준에 맞지 않는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놓고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몇 달이나 두 쪽으로 갈려 싸웠다. 갈등과 분열이 하도 심해서 헌재가 어떤 결정을 해도 나라가 두 쪽이 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헌재가 윤석열 파면 결정을 하자, 거리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하고 차분해졌다. 탄핵 반대파들은 더 이상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탄핵 반대자들은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난입할 정도로 극렬했었다. 그런데도 헌재의 탄핵 결정에는 모두 승복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때도 헌재가 재판을 지나치게 서두른다는 비판이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헌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40%나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 결정이 나오자 모두 승복했다.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고 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는 상식을 따른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 국민의 높은 상식 수준과 법치 의식 수준이다. 대법원을 향해 온갖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민주당 행태는 국민 상식 수준을 못 따라가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성숙한 법치 의식을 조롱하는 일이기도 하다.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민주당의 비상식적 사법부 겁박이 국회 다수당의 힘으로 사법부를 무력화하고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깨뜨리는 일임을 다 안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층 표심으로 나타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