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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막 오른 '거짓말 혐의' 재판, 이재명 대표 운명 가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구속될지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앞에는 구속 여부보다 더 긴박한 사법 리스크가 놓여 있다. 3월 3일 시작되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부장판사 강규태)는 최근 공판준비기일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3, 17, 31일을 공판 기일로 지정했다. 2주일마다 재판이 열린다. 이 재판에는 피고인인 이 대표가 직접 출석해야 한다. 재판 결과는 이 대표 정치적 운명을 결정적으로 가르게 된다. 100만원 이상 벌금형만 나와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국회의원직도 즉시 박탈된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시절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논란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혐의로 기소됐으나 2020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이번에도 ‘거짓말 혐의’를 무사 통과할까? "김문기씨 모른다" 거짓말 여부가 쟁점 이 대표는 작년 9월 8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됐다. 혐의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선 후보 시절인 2021년 12월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사업 실무를 담당했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한 부분이다. 또 하나는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하지 않을 경우)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한 부분이다. 두 혐의 가운데 ‘국토부 협박’ 여부는 큰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가 용도 변경 문제에 대해 ‘성남시가 잘 알아서 판단하라’고 보낸 공문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성남시에 협박을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재량권을 준 셈이니 ‘국토부 협박’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반면에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게 허위 사실, 즉 거짓말인지는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죄가 성립하려면 말할 당시 허위 사실인 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를 ‘허위 사실의 인식’이라고 한다. 결과적으로 허위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말할 당시에는 허위 사실의 인식이 없었다면, 즉 거짓말인 줄 몰랐다면 허위 사실 공표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대표가 허위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는지가 앞으로 재판의 최대 쟁점이 될 것이다. 검찰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선거에 미칠 영향을 의식해 몰랐다고 했다고 공격할 것이고 이 대표는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아 모른다고 했다고 반박할 것이다. 그럼 허위 사실 인식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2005년 7월 22일 판결에서 허위 사실 인식 여부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05. 7. 22. 선고 2005도2627 판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행위자가 그 사항이 허위라는 것을 인식하였는지 여부는 성질상 외부에서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우므로,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피고인이 밝히는 사실의 출처 및 인지 경위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및 그로 말미암아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행위자가 허위 사실을 인식했는지 여부는 사람의 마음속 일이라 외부에서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우니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등의 여러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마음속 의사는 ‘겉으로 드러난 정황으로부터 추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형법의 기본 원리이다. 대법원 판결도 이 원리를 말한 것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거짓말 판단 기준으로 보면 이 원리를 이 대표가 김문기씨를 몰랐다고 한 말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이 대표는 김문기씨 등 10명과 함께 2015년 1월 6~16일 호주·뉴질랜드 출장을 같이 갔음이 당시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으로 드러났다. 동영상에는 이 대표와 김씨가 농담하는 장면도 나온다. 검찰은 이 대표 공소장에서 이 대표가 변호사 시절인 2009년 6월부터 김씨를 알고 지냈고, 두 사람이 2009년 8월 26일과 12월 1일 정책 토론회에 함께 참여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2013년 11월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사한 이후 2016년 4번, 2017년 2번, 2018년 1번 등 총 7번에 걸쳐 이 대표에게 대장동 관련 보고를 했다고 밝혔다. 2017년에는 이 대표가 기자회견을 할 때 김씨가 3차례 동석했다고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대법원이 허위 사실 인식 여부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로 제시한 ‘소명 자료의 존재 및 내용’에 해당한다. 반면 이 대표는 방송 인터뷰에서 “성남시장 재직 때는 몰랐다”(2021년 12월 22일 SBS)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사람”(2021년 12월 24일 CBS), “얼굴도 모르고”(2021년 12월 27일 KBS), “얼굴이야 봤겠지만 그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 (2021년 12월 29일 채널A)라고 김문기씨를 모르거나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방송 인터뷰라는 공개된 자리에서 네 번이나 말했고, 내용도 애매하지 않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는 대법원이 고려 요소로 제시한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공표 경위와 시점’에 해당한다. 이 대표는 중·고교 검정고시를 통해 중앙대를 나왔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 생활을 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도 지냈다. 학력과 경력 등으로 볼 때 기억력이나 사리분별력이 일반인보다 나으면 낫지 못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대법원이 고려 요소로 제시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에 해당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이 대표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소명 자료의 존재와 내용, 이 대표가 네 번이나 방송에 나와 ‘모른다’고 한 공표 경위 및 공표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이 대표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 등 사정을 종합할 때 이 대표가 도저히 김문기씨를 몰랐거나 기억에 없을 수는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할 당시에는 정말로 기억이 안 났을 수도 있다고 해야 할까? 상식적 판단의 문제다. 법원도 상식에 따라 판단할 것이다. '친형 강제 입원' 논란 무죄 판결 재연될까 이 대표는 허위사실공표혐의를 무죄로 인정한 2020년 대법원 판결이 이번에도 재연되기를 바랄지 모른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방송 토론회에서 ’형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한 적이 없다’는 발언을 해 허위사실 공표죄로 기소됐다. 2심은 유죄로 인정하고 이 대표에게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 판결이 확정됐더라면 이 대표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2020년 7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무죄 취지로 2심을 깨고 파기환송했다. 대법관 12명 중 7명은 무죄 의견(다수 의견), 5명은 유죄 의견(소수 의견)이었으나 다수결에 따라 무죄로 결정됐다. 당시 권순일 대법관이 무죄 판결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대법관은 대법관 퇴임 4개월 뒤에 화천대유 고문으로 들어가 월 1500만원 고문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다수 의견은 후보자 토론은 유권자들의 후보자 선택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만큼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가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선거 토론에 법이 너무 쉽게 개입하면 ‘숨 쉴 공간’이 사라져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사 처벌은 "적극적,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한 때에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대표 발언은 계속되는 공격과 방어의 토론 과정에서 "즉흥적, 돌발적으로" 나온 것이라 후보자 토론의 취지와 기능을 고려할 때 형사 처벌 대상으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수의견은 후보자 토론에서 허위 사실 유포는 선거의 공정성을 침해해 선거제도의 본래 기능을 훼손한다고 했다. 다수 의견과 같이 적극적·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표명한 게 아니라고 해서 면죄부를 준다면 후보자 토론회가 본래 기능을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 발언 맥락을 전체적으로 볼 때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의 대립에서 보듯 ‘강제 입원 발언’ 무죄 판결은 후보자 간에 치열한 공격과 벙어가 벌어지는 토론회라는 특성을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또한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가 적극적·일방적이었느냐, 즉흥적·돌발적이었느냐를 중시했다. 그런데 이 대표가 김문기씨를 모른다고 한 것은 후보자 토론이 아니라 방송 인터뷰에서다. 후보자 토론회는 후보자들이 서로 공격과 방어를 수차례씩 주고받는 자리다. 방송 인터뷰는 사회자의 준비된 질문에 후보자가 준비된 답변을 하는 자리다. 둘이 성격이 전혀 다르다. 또한 이 대표는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모른다’ ‘기억에 없다’고 했다. 이걸 ‘즉흥적·돌발적’ 발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친형 강제 입원’ 발언과 같은 자로 잴 수 있을까? 이 점이 향후 재판을 보는 포인트의 하나가 될 수 있다. 100만원 벌금형만 받아도 2027년 대선 출마 불가 공직선거법에 선거 사범 재판은 1심 재판은 기소된 날부터 6개월, 2심은 1심 판결일로부터 3개월, 3심은 2심 판결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돼 있다. 기소된 날로부터 12개월 이내에는 3심 재판까지 마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이 대표 재판 1심 결과는 4월 중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 판결은 올해 9월 9일 이전에 나오게 된다. 법원이 선거 사범 재판을 1년 이내에 끝내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이 대표 재판도 올해 9월 9일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길게 잡아도 윤석열 정부 임기 중에는 끝날 것이다. 이 대표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 형량에 따라 피선거권 박탈 기간이 달라진다. 벌금 100만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5년, 징역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10년간 박탈된다. 벌금 100만원만 선고받아도 2028년까지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피선거권이 없게 되면 국회의원직에서 퇴직한다’는 국회법 제136조 규정에 따라 국회의원직도 즉시 박탈된다. 이 대표가 이번에도 ‘거짓말 혐의’에서 벗어날지, 이번에는 거짓말 혐의가 인정돼 정치 생명에 위기를 맞게 될지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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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법리 무시한 이상민 탄핵, 상식 무시한 곽상도 무죄 판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소추 의결과 곽상도 전 국회의원 무죄 판결이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두 사안은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장관 탄핵 소추는 법리를 무시했고, 곽 전 의원 무죄 판결은 상식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상민 장관 탄핵 소추는 과연 탄핵 사유가 되느냐 하는 게 논란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중심이 된 야권은 이 장관 탄핵 소추 사유로 이 장관이 헌법, 재난안전법, 국가공무원법 등을 위반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 장관이 핼로윈 참사 직후 재난대책본부·수습본부 신속 설치 등 재난안전법상 행안부 장관에게 요구되는 책임을 방기해 적절한 구조·구급 활동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가 커졌다고 했다. 참사 발생 이후 자택에서 관련 조치를 하지 않았고, 관용차를 85분 동안 기다리느라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졌다고도 했다. 그 결과 이 장관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참사 이후 부적절한 언사를 반복하면서 고위공직자에게 기대되는 최소한의 품위마저 저버려 국가공무원법의 품위 유지 의무를 어겼다고 했다. 야권이 이 장관 탄핵 사유로 몇 가지를 제시했지만 핵심은 이 장관이 행안부 장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게 탄핵 사유가 될지가 문제다. 헌재, "직무 성실성 여부는 탄핵 사유 안 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서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는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되기는 어렵다”며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박근혜)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에 대한 피청구인의 대응조치에 미흡하고 부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하여 곧바로 피청구인이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였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기각 결정문에서도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 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서 소추 사유가 될 수 없어, 탄핵심판절차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 취지대로 한다면 이 장관이 핼로윈 참사 이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수는 있겠지만 탄핵 사유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헌재는 탄핵 제도의 본질을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의 지배 원리를 구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박근혜 탄핵 결정문), “공직자의 권력남용으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노무현 탄핵 기각 결정문)라고 했다. 직책의 성실한 수행 여부는 이런 탄핵 제도의 본질과 무관하기 때문에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헌재 결정 내용은 탄핵 소추에 관한 법리를 잘 설명해 준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헌재가 밝힌 두 전직 대통령 관련 결정문을 꼼꼼히 살폈더라면 이 장관의 핼로윈 참사 대처 문제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법리를 무시하고 정치적 이유로 탄핵 소추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원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 뇌물죄 무죄 판결은 무죄 이유를 일반적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려워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아들이 지급받은 돈과 이익을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은 걸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라고 했다. 이어 “아들이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뇌물을 수수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사정들이 존재하지만 아들이 성인으로, 결혼을 해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했다”며 “따라서 곽 전 의원이 직접 돈을 받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곽 전 의원과 아들이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적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들 돈은 아들 돈이고 아버지 돈은 아버지 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받은 돈을 아버지가 받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곽상도 아들 아니었다면 퇴직금 50억원 줬겠나 아버지와 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 생활을 한다면 ‘아들 돈’과 ‘아버지 돈’은 별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고려 사유가 있다. 우선 하나는 돈의 규모다. 아들이 퇴직금으로 일반 회사원과 비슷한 액수를 받았다면 그 돈은 아들 돈으로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크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게다가 아버지가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서 기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면 사정은 더욱 달라진다. 액수가 터무니없이 크고 아버지가 고위직에 있었다면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대리인으로서 아들에게 돈을 줬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곽 전 의원 아들은 6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50억원을 받았다. 대기업 고위 임원 사례를 빌리지 않더라도 턱없이 큰돈이다. 곽 전 의원은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검사, 대통령실 민정수석 비서관, 국회의원을 지냈다. 기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그렇다면 화천대유가 아들에게 50억원을 준 것은 아버지인 곽 전 의원을 보고 준 것이고, 그래서 사실상 곽 전 의원이 받았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어떻게 곽 전 의원이 '직접' 받지 않았다고 해서 뇌물 수수 행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뇌물죄 요건 중 ‘금품 수수’ 법 조문을 너무 액면 그대로 해석한 것 아닌가. 법 조문에 얽매여 상식을 놓쳤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사법부의 책임성’이라는 말이 있다. 법관이 자기 판결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 책임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책임과는 다르다. 일반적 책임은 잘못한 경우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이를 희생적 책임이라고 한다. 반면에 법관의 책임은 ‘설명할 책임’이다. 왜 그렇게 판결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서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받아야 할 책임을 말한다. 국민이 판결 이유를 납득하지 못하면 그 법관은 설명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게 된다. 곽상도 전 의원 무죄 판결에서 재판부는 고위 공직자 출신 아버지의 아들에게 50억원이라는 거액을 준 게 어떻게 아버지를 보고 준 게 아닌지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 생활을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상민 장관 탄핵은 정치에 얽매여 법리를 무시했다. 곽상도 무죄 판결은 법 조문에 얽매여 상식을 무시했다. 법 운용에서 법리나 상식을 지키지 못하면 겉보기에는 합법일지라도 실제로는 불법이고 비법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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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이재명 대표, 범죄 혐의 못지않게 큰 문제는 '법치 훼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러 가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제1야당 대표가 잡다한 범죄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된 것은 우리 정당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받는 범죄 혐의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 대표와 민주당 관계자들이 보이는 ‘법치 훼손’ 언행이다. 법치의 핵심 가치는 '법 앞에 평등'이다. 그런데 이들은 제1야당 대표는 마치 법 앞에 평등에서 예외라도 되는 듯, 아니 예외가 돼야 한다는 듯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 이 대표가 검찰 소환 통보에 대응하는 모습부터가 그렇다. 검찰은 지난 16일 대장동 사건 등과 관련해 이 대표에게 오는 27일과 30일 출석할 것을 통보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주중에는 일을 해야 하니 27일이 아니라 (토요일인) 28일에 출석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당대표 비서실 명의로 "28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것으로 확정됐다"고 공지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28일 조사라는 것은 수사팀과 협의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할 범위와 내용 등이 상당한 점을 고려해 두 차례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변호사를 통해 구체적인 출석 일정을 통보했으나 이 대표가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해 28일 10시 30분이라고 출석 의사를 표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출석 일정 임의로 결정 무슨 일이든 양측이 협의 중일 때 ‘확정’되려면 양측이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자기 일방적으로 확정할 수는 없다. 이건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 측은 검찰과 협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석 일정이 확정됐다’고 공지했다. 출석 횟수도 이 대표 임의로 한 번으로 했다. 출석하는 날을 평일이 아닌 휴일로 정한 것은 더욱 특이하다. 공무원인 검찰 직원들도 토요일엔 쉰다. 이 대표가 28일 출석하면 수사 담당 검찰 직원들은 쉬지 못하고 근무해야 한다. 이 대표에게 평일이 일하는 날이듯 검찰 직원들에게도 평일이 일하는 날이다. 이 대표는 자기는 평일에 일을 한다면서 검찰 직원들에게는 평일이 아닌 휴일에도 나와 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령인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검사가 피의자를 소환할 때 일정 등을 피의자 측과 협의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검사가 피의자 사정을 고려해서 소환 일정을 잡으라는 취지지 피의자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해도 된다는 게 아니다. 일반 국민이라면 이 대표처럼 출석 횟수와 일정을 자기 편한 대로 잡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통할 수 없는 일도 자기에게는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법 앞에 평등'을 부정하는 일이다. 자기는 법 위에 존재하는 듯 남들과 다른 특별 대우을 요구하거나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이 법 앞에 평등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건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작년 12월 21일에 그 달 28일 검찰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성남FC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였다. 이때 이 대표 측근은 “부장검사가 아니라 성남지청장이 당대표 비서실장에게 연락해 예우를 갖춰 말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동아일보가 그달 27일 보도한 내용이다. 당시 이 대표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28일 나갈 수 없다며 검찰과 소환 일정을 협의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표 측근이 ‘부장검사가 아닌 지청장이 연락하는 예우’를 갖추라고 했다는 것이다. 상대가 제1야당 대표이니 검찰 중간 간부가 연락하는 것은 무례이고 기관장인 지청장이 직접 연락해야 예우에 맞는다는 얘기다. . 지청장 아닌 부장검사가 연락하는 게 무례? 일반 국민이라면 기관장은커녕 수사 검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가 통보하는 일도 없다.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통보하지도 않는다. 검찰 일반 직원이 전화로 통보하거나 수사 담당 검사 명의로 된 출석요구서를 보낸다.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출석요구서를 보내게 돼 있다. 이 대표에게 수사 담당 검사가 아니고 이 검사를 지휘하는 부장검사가 연락한 것만 해도 일반 국민들에 비해 예우를 갖춘 것이다. 이 대표 측은 이것도 모자라 기관장인 지청장이 직접 연락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작년 9월 6일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았을 때는 서면 진술서만 보내고 출석은 하지 않았다.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의 불출석을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전날 의원총회에서)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한 출석 요구이니 응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말들이 많았다. 출석 요구는 터무니없는 사안”이라고 했다. 기자들이 안호영 수석대변인에게 ‘일반인들도 고발을 당하면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데 당대표라는 이유로 서면 조사만 받으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안 수석대변인은 “서면 조사 요구에 응하면 굳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에 검사는 피의자를 소환하기 전에 서면 조사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도록 돼 있다. 서면 조사를 할지, 소환 조사를 할지는 검사가 판단할 일임이 명시돼 있다. 피의자가 판단하는 게 아님이 명확하다. 검찰은 이 대표에게 소환을 통보했지 서면 진술서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임의로 서면 진술서만 보내고 출석하지 않았다. 안 수석대변인은 '서면 조사 요구에 응하면 굳이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해 피의자인 이 대표에게 서면 진술이나 출석 중 선택할 권리가 있는 듯이 주장했다. 이 모두가 이 대표는 법 위에 존재함을 자처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언행이다. 일반 국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이 대표가 제1야당 대표임을 감안해 소환 일정 등에 대해 얼마간 예우를 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정한 수준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일반 국민들보다 월등히 특별한 대우를 한다면 곤란하다. 그건 법 앞에 평등이 아니라 불평등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 측이 기관장이 연락해야 한다든지, 소환 조사 대신 서면 조사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월등한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법 위 존재인 듯 잇달아 특별 대우 요구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가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을 하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 협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대선이 끝난 뒤 경쟁 후보였던 사람에 대해 꼬투리를 잡아 느닷없이 수사를 시작했다면 정치 보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수사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이 대표가 받는 혐의는 모두 재작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그 뒤 대선 기간 중에 터졌다. 대선 이후 갑자기 수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대선 이전부터 수사하고 있었다. 이게 왜 정치 보복인가? 대선 경쟁 후보였으니 그냥 덮어둬야 하나? ‘야당 탄압’이라는 주장도 맞지 않다. 야당 탄압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야당 인사들이 정권을 비판하면 이를 막으려고 수사할 때 쓰던 말이다. 당시 정권은 야당 인사들 뒤를 캐서 불법 정치자금이나 뇌물 혐의, 심지어 간통 혐의를 씌워 수사했다. 지금 검찰은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활동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 대표 개인 비리를 수사하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야당 탄압인가? 메릭 갈런드(Merrick Garland)는 바이든 행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다. 지난 12일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이던 시절에 기밀 문서를 유출한 사건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트럼프 행정부 출신 검찰 고위직을 임명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우리로 치면 윤석열 정부 법무부가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고위직을 지낸 인사를 윤석열 정부 비리를 수사할 특별 검사에 임명한 격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일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자 보도에서 "메릭 갈런드 장관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 수사에 트럼프 정부 출신을 특검으로 임명한 의도는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법 앞 평등' 무너지면 법치 무너져 갈런드 장관은 2021년 3월 법무부 장관 취임 연설에서 '법 앞에 평등'을 강조했다. "우리가 성공하고 미국민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한다’는 법무부의 오랜 규범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정당과 권력, 사회적 지위, 경제적 차이 또는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다른 규칙은 없다”고 했다. 갈런드 장관의 말은 일차적으로 검찰과 경찰 등 법 집행을 담당한 공직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러나 ‘정당과 권력,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규칙은 없다’고 한 말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새겨들을 만하다. 누구나 법 앞에서는 평등하고, 그래서 누구한테나 똑같은 규칙이 적용돼야 함을 강조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11조 ①항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분을 지어 다르게 대우하는 게 차별이다. 지위와 권세에 관계없이 법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게 '법 앞에 평등'이다. 특별 대우를 요구한다면 '법 앞에 평등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다. 법 앞에 평등 원칙이 흔들리면 법치가 흔들리게 된다. 권력이나 돈을 가진 자는 그것으로 법을 피해 가거나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할 것이다. 돈도 권력도 없는 일반 국민은 정당한 결과로서 불리한 처분을 받아도 ‘가진 게 없어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는다’며 법을 비웃을 것이다. 이래서는 법치가 바로 설 수 없다. '법 앞에 평등'을 훼손하는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의 언행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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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국정 개혁 시동 건 윤 대통령, 설득력과 정치력 시험대에 섰다
‘혁명보다 어려운 게 개혁’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개혁의 길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개혁에는 숱한 저항과 반발이 따른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저항과 반발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정치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15일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노동·연금·교육을 3대 개혁 과제로 선정하고 “개혁은 인기가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했다. 국정 개혁을 선언한 윤 대통령은 이제부터 리더십과 정치력 검증의 시험대에 서게 됐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 중 최우선 과제로 노동 개혁을 꼽았다. ”노동 문제가 정쟁과 정치적 문제로 흘러버리면 정치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게 된다. 노동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국제시장에서 삼류, 사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간에도 같은 노동에 대해 같은 보상을 받는 체계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노동 개혁의 방향으로 노사 법치주의 확립,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합리적 임금 체계 확립 등을 제시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 인기 없지만 꼭 완수" 윤 대통령은 연금 개혁에 대해서도 ”연금 이야기를 꺼내면 표가 떨어진다고 해서 지난 정부 땐 이야기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번 정부에서는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피하지 않고 가겠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으로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아’ 연금 재정을 안정화시키는 내용을 제시했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월급에서 내는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36년까지 15%로 올리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현행 62세(2033년까지 65세로 상향)에서 2048년 68세로 높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교육 개혁의 핵심은 학생 맞춤형 교육, 지방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정 과제 점검 회의에서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해 “학생들이 일률적인 종이 교과서 대신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자기 수준에 맞는 내용을 찾아서 공부할 수 있게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지방 맞춤형 교육을 위해 지방 대학이 지역 발전과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교육부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과감하게 넘기고, 대학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3대 개혁에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건강보험 개혁도 중점 개혁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지난 5년간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보 무임 승차를 방치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을 파탄시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건보 개혁이 시급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건보 개편 방향으로 건보 급여와 자격 기준 강화, 건보 낭비와 누수 방지, 의료 사각지대 지원 강화를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보험 적용 축소’가 아니라 ‘보험 적용 기준의 합리화’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연금·교육·건보 개혁 추진은 문재인 정부 정책에서 생긴 부작용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에 ‘2020년 건보 보장률 70%’라는 목표를 내걸고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3800여 개 항목에 단계적으로 건보를 적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투입된 예산은 30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른바 ‘문재인 케어’다. 이로 인해 건보 재정 수지가 2018년 사상 처음으로 2000억원 적자를 기록하는 등 크게 악화됐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각각 2조8000억원, 4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 부작용 바로잡기 일환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문제는 방치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2년 적자로 돌아서고 2057년 바닥날 것이라며 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고령화와 저출산 심화로 인구 구성이 현행 연금 제도를 유지하기 힘든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어 연금 개혁 목소리가 커지던 때였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보험료율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개혁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연금 재정 고갈 우려가 커지는데도 방치한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기존 60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늦추고,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60%에서 2028년까지 40%로 낮추기로 했던 것과 대비된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 문제에서는 문재인 정부 주요 지지 세력인 민노총에 끌려다니다시피 했다. 민노총이 어떤 불법을 저질러도 적극 제지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민노총은 우리 사회에 권력 집단으로 군림하며 각종 불법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좌파 정부에서 우파 정부로 바뀌면 좌파 정부 정책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우파 정부에서 좌파 정부로 바뀌면 우파 정부 정책의 부작용을 바로잡을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게 민주주의에서 정권 교체가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다. 이런 일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면 좌우파 정책이 균형을 이뤄 나라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윤 대통령의 개혁 추진은 정권 교체의 효과를 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개혁에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하나는 개혁 분야별로 정밀한 개혁 청사진을 만드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개혁의 당위성과 방향만 제시한 상태다. 이제부터 구체적인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나 현실성 있으면서 문제점을 고칠 수 있는 개혁안을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저항 극복할 리더십과 정치력이 관건 더 큰 문제는 개혁에 따르는 저항과 반발을 극복하는 일이다. 노조의 불법 파업에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노사 법치주의, 보상을 연공서열 중심에서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바꾸는 임금 체계 개선, 노동 수요가 몰리는 특정 시기에 노사 합의로 주당 근무 시간을 늘릴 수 있게 하는 노동 시간 유연화 등에 대해 노조가 반발하고 저항할 것은 뻔하다. 문재인 케어를 사실상 폐기하는 건보 개혁에는 당장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하고 나올 것이다. 건보 적용 기준을 지금보다 좁히고 까다롭게 하면 일반 국민들도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역시 당장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면 국민들의 저항을 부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저항과 반발을 어떻게 잘 극복하느냐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치력에 달렸다. 리더십의 핵심은 설득력이다. 노동·연금·교육·건보 개혁을 왜 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개혁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안을 마련할 때도 왜 그런 개혁안이 필요하고 중요한지 개혁안의 합리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의 당위성과 개혁안의 합리성에 대한 설득은 특히 현 정부 개혁 방향과 내용에 부정적인 사람이나 단체에 집중해야 한다. 야당과 노조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언론, 지식인이 그들이다. 적극적 반대자는 소극적 반대자나 중립파로 만들고, 중립파는 지지파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정치력’이 무엇인지를 피부에 와닿게 설명한 사람으로 작고한 김상현(1935~2018) 전 국회의원을 들 수 있다. 김 전 의원은 6선 의원으로 여야 정당을 넘어 많은 정치인들과 폭넓은 교류 관계를 맺었다. 정계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지위나 학력 등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정치의 요체를 한마디로 하면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거나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는데 그래서는 결코 내 편을 늘릴 수 없다.” 내가 싫어하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포용해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바로 정치력임을 말하고 있다. 정치력 핵심은 반대자 포용 민주당은 현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반대한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틈만 나면 김건희 여사 ‘스토킹’에 나선다. 민노총을 비롯한 좌파 단체들은 연일 ‘윤석열 퇴진'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여기에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가세하고 있다. 대학과 언론계에도 윤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이 많다. 모두 윤 대통령이 싫어하거나 윤 대통령을 싫어할 만한 사람들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이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 자체가 껄끄럽고 내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정치를 하려면 적극적으로 만나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력를 발휘해야 한다. 최고 정치 지도자인 대통령에게는 정치력이 더욱더 요구된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윤 대통령에게 꼭 필요한 게 정치력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개혁이 어려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혁으로 손해를 볼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개혁에 저항하는데 반해 개혁으로 이익을 얻을 사람들은 기껏해야 미온적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당장의 손해는 눈에 보이지만 먼 미래의 이익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 일이 생긴다고 했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미온적 지지자를 적극적 지지자로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말이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지지 세력을 넓혀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충고와 지지 세력을 넓히려면 반대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김상현 전 의원의 충고를 윤 대통령이 깊이 생각해 봤으면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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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국정 질문 빙자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 제기…법적으로 따져 보니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지난 10월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가 사실 무근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국회의원이 의혹을 제기할 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대법원은 여러 번의 판결을 통해 의혹 제기가 정당화되기 위한 조건 등을 제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기준으로 김 의원 의혹 제기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은 건전한 의혹 제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도 의미가 있다. 김의겸 의원은 지난 10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술자리에 있었다는 여성 첼리스트와 그의 전 남자친구의 대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며 술자리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그 이후에도 해당 술자리가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일각에서 계속 공세를 펴면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졌다. 그러던 중 이 여성 첼리스트가 지난 11월 23일 경찰 조사에서 “그 내용은 다 거짓말이다. 전 남자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하면서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 공직자 대상 의혹 제기 가능하나 표현 방식·내용이 문제 대법원은 공직자에 대해선 일반 개인에 대해서보다 폭넓은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된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경우에는 이와 달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이러한 감시와 비판은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비로소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대법원 2006. 10. 13. 선고 2005도3112 판결, 대법원 2011. 9. 2. 선고 2010도17237 판결 등). 일반 개인의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 보호가 우선돼야 하지만, 공직자에게는 명예 보호보다 표현의 자유가 우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은 대표적인 공직자이다. 따라서 김 의원이 그들에 관해 의혹을 제기한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아무리 공직자에 대해서라도 의혹 제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우선 표현 방식의 문제다. 대법원은 “객관적으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사실에 관한 발언이 보도, 소문이나 제3자의 말을 인용하는 방법으로 단정적인 표현이 아닌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의혹을 제기할 때 제보 내용을 확인하는 질문 형식을 취했다. 김 의원은 “제가 제보를 받았습니다. 7월 19일 밤인데요. 그날 술자리를 가신 기억이 있으십니까”라고 한 장관에게 물었다. 이어 “청담동에 있는 고급스러운 바였고요. 그 자리에는 그랜드피아노가 있었고 첼로가 연주됐습니다. 기억나십니까”라고 재차 물었다. 김 의원은 “제보 내용에 따르면 그 자리에 김앤장 변호사 30명가량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도 이 자리에, 청담동의 바에 합류를 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라고 물었다. 김 의원은 "국정과 관련한 중대한 제보를 받고, 국정감사에서 이를 확인하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 해도 저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있었다’는 단정적 표현을 쓰지 않고 ‘술자리를 기억하느냐’고 질문을 한 것이라 문제 될 게 없다는 투다. 과연 그럴까? '단정적 표현' 쓰지 않았다고 면책될 수 없어 김 의원 발언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분석해 보자. 그는 술자리의 구체적인 모습까지 들어가며 마치 술자리가 사실인 것처럼 전제하고 그런데도 기억나지 않느냐는 식으로 질문했다. 이쯤 되면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술자리가 ‘사실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이는 곧 술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술자리가 있었다고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고 해도 듣는 사람들에게는 술자리가 있었음이 사실인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아무리 질문 형식이라도 전체적인 취지로 보아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암시하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하고 그러면 면책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의혹 제기의 내용상 한계도 제시했다. 대법원은 “국가 기관에 대한 감시·비판을 벗어나 공직자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경우”에는 의혹 제기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표현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에 대해 대법원은 “표현의 내용이나 방식, 의혹 사항의 내용이나 공익성의 정도,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정도,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의 정도, 그 밖의 주위 여러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대법원 2013. 6. 28. 선고 2011다40397 판결 등 참조)고 했다. 대통령과 법무부장관의 심야 술자리 여부가 공익에 관한 사안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혹이 허위 사실이라면 대통령과 장관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정도는 매우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만큼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도 커야 한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김 의원은 의혹을 제기하기 전 과연 사실 확인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서 가장 궁금하고 의문스러운 내용은 문제의 첼리스트가 실존 인물인지, 그렇다면 이름이 무엇인지, 해당 술집 이름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이다. 김 의원은 최소한 이런 내용들은 확인하고 의혹을 제기했어야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이에 대해 아무런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다. 첼리스트 전 남친의 제보가 의혹 제기의 유일한 근거였다.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다. 의혹 제기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사실 확인 노력을 성실히 했으면 면책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이다. 김 의원은 면책될 정도로 사실 확인 노력을 성실히 했다고 보기 어렵다. 면책특권 뒤에 숨은 의혹 제기 남발, 정치 혐오 부추겨 그렇다면 김 의원의 의혹 제기는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경우’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결국 김 의원은 질문 형식을 빌려 의혹을 제기했다고 하지만 술자리가 사실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질문을 했다. 그 때문에 마치 술자리가 실제 있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줬다. 그나마 의혹 내용이 사실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게 대법원 판단 기준에 비춰본 김 의원 문제 제기의 문제점이다. 김 의원은 국회 공식회의에서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 면책특권을 누린다. 거짓으로 드러나도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일반인이었더라면 명예훼손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이 제기된다. 건전한 의혹 제기는 공직자의 국정 운영과 업무 수행의 문제점 여부를 따지고 견제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아니면 말고’식의 무분별하고 정치 공세적인 의혹 제기는 부작용만 가져온다. 특히 국회의원이 면책특권 뒤에 숨어서 의혹 제기를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더 크다. 정치를 혐오스럽게 만들고 증오와 갈등을 부추긴다. 의혹을 제기한다면서 최소한의 검증도 거치지 않는 정치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 사건이 의혹 제기의 기본이 뭔지를 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으련만. =================================================== 정치인들의 유감스러운 '유감' 표현 남발 '유감'은 상대방 잘못 지적할 때 쓰는 말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했다. 김 의원은 11월 24일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 문자에서 ‘청담동 술자리’를 봤다고 말한 당사자가 경찰에서 ‘거짓말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며 “이 진술이 사실이라면 이 의혹을 공개적으로 처음 제기한 사람으로서 윤석열 대통령 등 관련된 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유감(遺憾)의 한자어를 뜻풀이하면 ‘남길 유(遺)’에 ‘섭섭할 감(憾)’이다. 국어사전에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설명돼 있다. 한자사전에는 더 명확하게 ‘언짢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돼 있다. 이처럼 ‘유감’은 상대방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거나 언짢게 여기는 마음이란 뜻이다. 내가 상대방의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이 상했을 때 상대방을 향해 쓰는 말이지, 나의 잘못을 인정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김 의원의 의혹 제기로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난데없이 자정을 넘은 한밤중까지 변호사들과 술이나 마시는 사람처럼 그려졌다. 마음이 상해 ‘섭섭하고 불만스럽거나 언짢은 느낌’이 남아 있을 쪽은 윤 대통령과 한 장관 쪽이지 김 의원이 아니다. 유감을 표시한다면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김 의원에게 해야지, 김 의원이 윤 대통령 등에게 할 일이 아니다. 김 의원이 할 말은 ‘죄송하다’ 또는 ‘송구하다’이다. 이게 어법에도 맞고 상식에도 맞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유감’ 표현 남용과 남발이야말로 유감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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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칼럼] 인파 관리 중요성 보여준 이태원 참사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사고다. 30일 오후 6시 현재 153명이 숨지고 103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동안 수백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는 여럿 있었다. 최근 순으로 살펴보면 304명이 숨진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4월 18일), 192명이 숨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2003년 2월 18일)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6월 29일), 292명이 숨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1993년 10월 10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고는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나 발생 과정은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인재라는 점이다. 관계자들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안전 관리에 소홀해서 발생했다. 사고 원인이 비교적 명확했고, 사고 책임자를 규명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는 처음 그러나 이태원 사고는 사고 원인이나 발생 과정이 전혀 다르다. 현재까지 추정되는 원인은 대규모 인파에 의한 압사다. 좁은 골목길에 1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린 상태에서 누군가 쓰러지자 뒤에서 몰려오던 사람들이 이에 걸려서 도미노처럼 그 위로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들은 인파에 깔려 심 정지로 숨졌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사고 유발자가 누구라고 할 수가 없다. 일종의 자연 재해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인재였던 과거의 대형 사고들과 다르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외국에서는 여러 번 있었다. 인파가 몰리는 각종 종교 행사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1990년 7월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에서 성지 순례객 1426명이 압사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메카로 향하는 보행용 터널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벌어졌다. 우리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좁은 지역에 순례객이 수만명씩 모이는 외국 먼 나라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런 압사 사고가 우리에게서도 일어난 것이다. 압사 사고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줬다. 이번에 이태원에는 핼러윈 축제를 맞아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진작부터 예상됐다. 코로나 사태로 3년 만에 재개된 축제였기 때문이다. 상점들마다 다양한 축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외국 사례에서 보듯 많은 인파가 몰리면 언제든 압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압사 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느냐 하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니 압사 사고에 대비한 안전 지침도, 예방 지침도, 교육도 있을 수가 없었다. 인파에 의한 압사 사고 위험성 새롭게 인식해야 이태원 사고는 대규모 압사 사고 발생 위험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수만 명 인파가 좁은 지역에 한꺼번에 몰리면 언제든 대규모 압사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인파 사고에 대한 안전 불감증부터 버려야 한다. 서울에는 이태원 말고도 홍대 입구나 강남역 사거리처럼 인파가 특히 많이 몰리는 지역이 있다. 지방에도 이런 곳이 있을 것이다. 평소 인파가 몰리거나 특정 행사를 앞두고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될 때는 인파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인파가 짧은 시간에 한 지역에 너무 많이 몰리지 않는지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너무 많이 몰릴 때는 인파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인파 관리 대책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정부는 이태원 사고가 발생한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철저히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태원 사고에서 숨지거나 다친 사람은 대부분 20~30대라고 한다. 핼러윈 축제는 나이 많은 세대는 무슨 축제인지도 모르는 낯선 행사다. 그러나 젊은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에게는 큰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외국 문화를 우리 문화처럼 즐기는 일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젊은이들이 그 문화를 즐기려고 한 곳에 몰리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추세에 발 맞춰 중·고교생들에게 대규모 인파에 의한 압사 사고 위험성과 안전 수칙을 가르칠 필요도 있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이런 곳에는 가능한 한 가지 말거나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 급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사고 방지 의식도 심어줘야 한다. 이태원 사고가 발생하자 외국 정상들도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서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면서 "우리는 한국인들과 함께 슬퍼하고 부상자들이 조속히 쾌유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 비극적인 시기에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마주한 모든 한국인과 현재 참사에 대응하는 이들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태원에서 일어난 비극에 한국 국민과 서울 주민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보낸다"면서 "프랑스는 여러분 곁에 있겠다"고 했다. 인재 아닌 자연 재해···정략적 악용 안 돼 외국 정상들의 위로 성명은 인도주의에 입각한 인간애의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게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기술, 자동차 산업은 물론이고 축구, 영화, K-팝(POP) 등 스포츠와 문화 부문에서도 세계적 선도 국가가 된 지 오래다. 이런 나라에서 후진국형 압사 사고가 일어나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국제적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태원 사고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이번 사고는 인재라고 하기 어렵다. 자연재해에 가깝다. 따라서 누구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에 모든 책임을 돌리며 정치 공세의 호재로 삼으려는 시도가 나올 수 있다. 별것 아닌 조그만 실수나 실책이라도 나오면 침소봉대해서 국정 문란이니 정부 무능이니 하며 공격하고, 나아가 거짓과 조작으로 선동하려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 정쟁으로 눈앞 이익이나 챙기려는 시도와 세력을 거부하고 심판할 수 있는 국민적 양식이 절실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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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이재명 '사법 리스크', 얼마나 치명적인지 따져보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사법 리스크’라는 말이다. 사법 리스크란 범죄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이 날 경우 짊어지게 될 법적, 정치적 리스크(위험)를 말한다. 유죄 확정 판결이 나면 이 대표가 도대체 어떤 처지가 되기에 사법 리스크라는 말이 나오게 됐을까?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표를 사법 리스크에서 보호하려고 겹겹의 방탄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유죄 확정 판결이 나면 그 방탄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된다. 경찰과 검찰은 이 대표의 과거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재직 때 불거진 여러가지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경찰 또는 검찰 수사가 끝난 사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두산그룹의 성남FC 축구 구단 후원금 관련 사건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13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성남시장 재임 당시인 2015년 두산그룹에 병원 부지 용도 변경을 해주는 대가로 성남FC 축구 구단에 55억원 상당의 광고 후원금을 주도록 한 혐의(제3자 뇌물 공여 혐의)가 인정된다면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제3자 뇌물 공여란 공무원이 누구의 부정한 청탁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뇌물을 자기와 특수 관계에 있는 제3자에게 주도록 했을 때 성립한다. 자기가 직접 받는 일반적인 뇌물죄와 다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보완 수사한 뒤 이 대표 기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벌금 100만원 선고받으면 5년간 피선거권 박탈 또 하나는 이 대표의 거짓말 의혹 사건이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인 작년 12월 방송 인터뷰에서 대장동 사업 실무를 담당했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하위 직원이라 성남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작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부가 용도변경을 요청했고 (하지 않을 경우) 직무 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대표의 이 두 발언이 허위라며 지난 8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이 대표를 기소했다. 공직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는 5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이 대표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공직선거법 제18조와 제19조에 따르면 허위사실 공표죄로 100만원 이상 벌금형만 선고받아도 형 선고일로부터 5년간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 징역형 또는 집행 유예 선고를 받게 되면 10년간이나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 피선거권을 잃게 되면 이 대표는 국회법 제136조 규정에 따라 즉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한다. 국회법 제136조 ②항은 ‘의원이 법률에 규정된 피선거권이 없게 되었을 때에는 퇴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 처지는 의원직 박탈에서 그치지 않는다. 2027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다. 공직선거법에 선거 사범 재판은 다른 사건에 우선해 신속히 하도록 규정돼 있다. 제1심은 기소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은 전심(前審) 판결 선고일로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아무리 늦어도 기소된 날로부터 1년 이내에는 3심 재판까지 마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이 대표 재판은 내년 9월 9일까지 끝나게 된다. 만약 그리 된다면 이 대표는 그때부터 5년(벌금 100만원 이상 선고 받는 경우) 또는 10년(징역형이나 집행유예 선고 받는 경우)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벌금 100만원만 선고 받아도 2028년까지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법원이 선거범 재판을 1년 내에 끝낸 경우는 많지 않다. 이 대표 재판도 내년 9월 9일까지 끝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길게 잡아도 윤석열 정부 임기 중에는 끝날 것이다. 그 경우라도 이 대표는 피선거권이 선고 받는 형의 종류에 따라 5년 또는 10년간 박탈돼 2027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대장동·백현동·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줄줄이 이 대표의 대선 출마 불가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그 지지 세력에겐 ‘사형 선고’나 같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몇 달 만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와 당선되고 이어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는 이 대표가 2027년 더불어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2027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이러니 사법 리스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다. 이 대표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대법원은 2020년 7월 이 대표가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방송 토론에서 ‘친형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적이 없다’고 한 발언에 ‘토론 중 즉흥적으로 한 발언으로 고의성이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런 논리가 이번에도 통할까? 이 대표는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성남시장 재직 때 몰랐다”거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거나 “얼굴도 모른다”고 했다. 작년 12월 22일 SBS, 24일 CBS, 27일 KBS 방송 인터뷰에서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그랬다. 이걸 ‘즉흥적 발언’이고 그래서 무죄라고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 대표가 백현동 부지 용도 변경을 ‘국토부 협박’ 때문이라고 한 발언도 마찬가지다. 국토부는 백현동 용도 변경에 대해 ‘성남시가 적의(適宜) 판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검찰 공소장에 나와 있다. ‘적의 판단하라’는 말은 ‘마땅하게 잘 판단하라’는 뜻이다. 이 대표 주장처럼 국토부가 성남시에 협박한 게 아니라 거꾸로 ‘알아서 잘 하라’고 재량권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말할 당시에는 그렇게 기억돼서 기억나는 대로 말한 것’이라고 반박할 가능성이 크다. 이 반박이 받아들여진다면 이 대표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대표와 김문기씨의 해외 출장 사진 및 국토부 공문 등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이 대표 반박이 신빙성이 없음을 입증하려고 할 것이다. 충분히 기억할 수 있었는데도 선거에서 불리해질까봐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고 말이다. 양측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설사 이 대표가 허위사실공표 혐의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그 중 하나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두산건설의 성남FC 축구 구단 후권금과 관련한 제3자 뇌물 공여 혐의 사건이다. 검찰이 이 사건으로 이 대표를 기소하고 이 대표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역시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윤 대통령 임기말 사면·복권 여부가 변수 피선거권 박탈 기간은 어떤 형을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제3자 뇌물공여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하게 돼 있다. 만약 이 대표가 3년을 초과하는 형을 받으면 10년, 3년 이하 형을 받으면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또는 자격정지 형을 받으면 자격 정지 기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공직선거법 제19조와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 제7조에 따른 조치다. 이 대표가 이 사건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검찰과 경찰은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관련 수천억원의 초과이익 환수를 포기한 혐의, 백현동 개발 당시 시행사에 용도 변경 상향에 따른 수익을 제공한 혐의, 쌍방울에 변호사비 20억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 사건 중 어느 하나로라도 기소돼 유죄 확정 판결을 받게 되면 역시 5년~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2027년 대선 출마는 불가능해진다. 특히 대장동, 백현동 사건에서 이 대표가 뇌물을 받은 혐의라도 나오면 치명적이다. 공직선거법 제18조와 19조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그 재임 중 직무와 관련한 뇌물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만 선고 받아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고 규정돼 있다. 대장동,백현동 사건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임 때 벌어진 사건이다. 이처럼 이 대표가 첩첩산중을 넘어야 하니 이 대표에게 ‘사법 리스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등 부정부패 사건으로 기소되면 직무를 정지한다는 기존 당헌 규정은 그대로 뒀다. 대신 정치 보복 등으로 판단될 경우 직무 정지 조치를 기존의 당 윤리심판원이 아닌 당무위원회에서 취소할 수 있도록 당헌을 개정했다. 당무위 의장은 당 대표가 맡는다. 이 대표가 당무위원회 의장으로서 스스로를 직무정지 조치에서 구제하는 ‘셀프 구제’가 가능해졌다. ‘꼼수 개정’ ‘이 대표 방탄 규정’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방탄 규정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건 민주당 내부 일일 뿐이다. 당 대표 직무가 정지되든 말든 공직선거법상 피선거권 박탈 규정은 피할 수 없다. 방탄 당헌이 법을 넘어설 수는 없다. 변수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말에 즈음해 이 대표를 사면· 복권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대표는 피선거권이 회복돼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과연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사면·복권 할까? 이 대표 사면·복권 찬성 여론과 반대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거나 반대 여론이 우세할 수 있다. 여러가지 정치적 고려도 하게 될 것이다. 사면·복권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이 대표와 민주당으로서는 윤 대통령을 압박해 검찰 수사를 최대한 막는 도리밖에 없는 처지다. 민주당 의원들이 ‘김건희 특검법’· ‘윤 대통령 탄핵’ ·‘윤 대통령 임기 보장 못할 수도’라는 극단적 조치와 발언을 연일 쏟아내는 속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표가 검경 수사를 ‘정적 제거’라고 하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사법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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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한동훈처럼 당당하게 '정면 대응' 하는 사람 있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교체했다. 정책 혼선을 막고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국민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저부터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부 부처와 대통령실 간 정책 소통과 조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정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려는지 하는 큰 줄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윤 대통령이 새로운 각오를 밝히고 대령실 일부를 개편한 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국정 운영과 관련해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대통령실, 내각, 국민의힘 모두에 부족한 게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이다. 정면 대응이란 야당이나 시민단체 등 반대 세력의 공격에 사실과 이치로 당당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말한다. 반박할 것은 반박하고 설명할 것은 설명해 저항과 반대를 극복해 나가는 자세와 능력이다. 정면 대응의 목적은 단순히 정권 반대 세력과 싸워 이기는 게 아니다. 국민을 이해시키고 납득시켜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는 게 궁극적 목적이다. 정책을 실현하려면 국민 지지를 얻어야 하고 국민 지지를 얻으려면 설명하고 설득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게 바로 정면 대응이다. 사실과 이치 따른 당당한 대응 못해 사실과 이치에 따라 주장해야 설득력이 있다. 억지와 궤변은 역효과만 낸다. 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권의 억지와 궤변에 진절머리를 냈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했다. 통계나 법령 등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일반인의 상식에 맞는 주장을 하는 게 사실과 이치에 따른 주장이다. 또한 정면 대응을 하려면 당당해야 한다. 일부 반대 여론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맞서는 소신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 예로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 대응을 들 수 있다. ‘사적 채용’은 더불어민주당이 ‘공적 채용’에 대비시켜 만든 프레임이다. 공적 채용은 공개 경쟁 시험을 통한 채용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실 직원들을 공개 경쟁 시험으로 선발한 사례는 없다.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직업 공무원들을 빼고는 모두 정치권이나 시민단체 출신 중에서 정권 실세나 정권 주변 인물들의 연줄에 따라 선발했다. 바로 사적 채용을 한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 직원 일부를 사적 채용한 이유는 대통령 비서실 업무의 특이성 때문이다. 대통령 비서실은 정책과 함께 정치를 다루는 곳이다. 정책은 합리성과 효율성에 따라 만들고 추진하면 된다. 여기에는 직업 공무원 출신들이 적격이다. 그러나 정치는 정권의 안위를 다룬다. 무슨 일이든 정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러자면 정권과 호흡을 같이하고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게다가 대통령실 직원 채용은 정권 창출에 기여한 사람들 중에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이뤄지는 관행도 무시할 수 없다. 일종의 엽관주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를 주고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일반적 공정과는 또 다른 잣대다. 대통령실 직원을 채용할 때 능력주의가 아닌 엽관주의를 따르는 관행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다. 이처럼 정치적 충성과 보상을 고려하다 보니 대통령실 직원을 뽑을 때는 일부 사적 채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적 채용·경찰국 신설, 원론적 반박만 되풀이 문재인 청와대도 바로 그런 이유로 사적 채용을 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청와대 시절 소위 사적 채용된 사람들 명단을 뽑아 그들이 여당이나 대선 캠프 또는 시민단체 중에서 어디 출신이고, 누구의 추천을 받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채용됐는지를 조사해 이를 근거로 반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대 정권에서 왜 사적 채용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과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실 참모 누구도, 국민의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채용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야당이 제기한 ‘공정’ 프레임에 갇혀 ‘공정하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 스스로 빠져버렸다. 문재인 정권에서도 사적 채용이 많았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통계 수치로 보여줬더라면, 그리고 대통령실에 사적 채용이 왜 불가피한지를 설명했더라면 사적 채용 논란을 보는 국민들 눈도 달라졌을 수 있다. 윤석열 정부 극렬 반대자들의 반응은 여전하겠지만 최소한 중도파의 반윤석열 정서는 누그러뜨렸을 수 있다. 나아가 윤석열 지지자들의 이탈도 최소화했을 수 있다.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 논란 대응도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 등 반대 세력은 “정부조직법의 행안부 업무 범위에 ‘치안’이 없기 때문에 행안부 장관이 경찰국을 지휘·통제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행안부 업무를 규정한 정부조직법 제34조 ①항에 ‘치안’이라는 명시적 단어가 없는 것은 맞는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행안부 업무 중 하나로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을 규정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치안’의 정의는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보전함’이다. 행안부 업무로 규정된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이 곧 치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정부조직법 제34조 ⑤항에는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치안은 행안부 업무에 해당함이 명백하고 따라서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을 지휘·통제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나마 한동훈 장관이 유일하게 정면 대응 사실이 이러함에도 국민의힘 의원 중 이 같은 법 조항을 들어 더불어민주당 주장을 반박한 사람은 없다. 그저 경찰 통제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조차도 “법적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왜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더불어민주당 주장이 왜 사실과 다른지'를 구체적인 법 조항을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국민에게 설명했더라면 설득력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5세 초등학교 입학 논란 대응은 무기력의 극치였다. 교육부 장관이 5세 입학을 불쑥 들고 나온 것은 과정과 절차에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5세 입학은 그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해 볼 만한 정책이다. 정책을 처음 제기한 절차와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절차의 문제점은 인정하고 사과하되, 그것과 별개로 5세 입학 문제가 왜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제인지를 설명하고 지금부터라도 공론화해서 여론을 반영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나올 수도 있었다. ‘절차 문제와 내용 문제는 다르다’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내용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폐기하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대응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사람들은 반대 여론에 처음부터 기가 죽어 대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통령실 참모나 국민의힘 의원 다 마찬가지였다. 이런 무기력으로는 어떤 정책도 추진할 수 없다. 야당이나 시민단체에서 조금만 반대하면 ‘앗 뜨거워라’ 하고 곧바로 손을 들고 말 것이다. 그나마 정면 대응하는 사람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정도다. 한 장관은 검찰 수사권이 ‘검수완박’으로 박탈되게 되자 시행령(대통령령)을 개정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청법은 검찰 수사 대상을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 등 대통령령에서 정하는 중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장관은 이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령을 고쳐 부패 범죄와 경제 범죄의 범위를 일부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한 장관을 맹공격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행령 쿠데타"라고 비판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법 기술자의 농락"이라고 했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법치주의라는 허울 뒤에 가려진 독단과 오만함의 발로로 헌정 질서를 교란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정면 대응, 저항 극복과 국민 지지 확보에 필수 그러나 한 장관은 당당하게 맞섰다. "'시행령 정치'나 '국회 무시' 같은 감정적인 정치 구호 말고, 시행령 어느 부분이 그 법률의 위임에서 벗어난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확히 '···등 대통령령에서 정한 중요 범죄'라고 국회에서 만든 법률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장관은 "다수의 힘으로 헌법 절차를 무시하고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 때 중요 범죄 수사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와 속마음이 있었다는 것은 국민들께서 잘 알고 있다"며 "정부에 법문을 무시하면서까지 그 의도와 속마음을 따라 달라는 것은 상식에도 법에도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 장관은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시행령 개정이 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국회가 정해준 법대로 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고 ‘감정적 정치 구호'를 앞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도 명백히 했다. 더불어민주당이 한 장관을 공격하는 동안 국민의힘 의원들 중 한 장관처럼 조목조목, 당당하게 반박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장관은 정치인이 아니라 공무원인 검사 출신이다. 그럼에도 정치인 출신 장관이나 정치인인 국민의힘 의원들보다도 더 사실과 이치에 따라 당당하게 대응했다. 한 장관이 민주당 측 주장을 반박한 사실과 이치에 적어도 윤석열 정부에 중도적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지지하는 마음을 더욱더 굳혔을 것이다. 중도파는 지지자로 만들고 지지자는 더욱 강렬한 지지자로 만드는 게 정치의 요체 아닌가.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을 교체하는 등 대통령실 일부 개편이 효과를 내려면 대통령실 참모들과 각 부처 장관들이 사실과 이치에 따른 정면 대응을 하도록 기획하고 독려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참모와 장관들이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정면 대응을 해 나간다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저항과 반대를 최소화하고 이해와 지지를 최대화할 수 있다. 그래야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정면 대응 의지와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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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행안부 경찰 통제' 조목조목 따져보니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관들과 정부가 정면 대립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우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국 경찰의 총경(경찰서장급) 중 일부가 지난 23일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열고 ‘경찰국’ 신설 방침에 반발하고 나선 게 기폭제가 됐다. 행정안전부가 경찰을 통제하는 것은 과연 불법이거나 부적절한가? 통제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5일 ‘경찰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중요 내용은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을 제정한다는 것이다. 경찰국 업무는 크게 네 가지지만 핵심은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에 대한 행안부 장관 인사권 문제다.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행안부가 경찰국을 신설해 경찰 인사에 개입하고 인사권을 무기로 경찰을 장악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행 경찰공무원법 제7조 ①항에 ‘총경 이상은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고 돼 있다. 이 법 제2조 ①항은 ‘임용’을 신규 채용, 승진, 전보, 파견, 직위해제, 면직, 해임, 파면 등으로 정의해 놓았다. 시행령으로 '행안부 경찰국' 신설 가능 이 법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총경 이상 경찰관을 신규 채용하거나 승진시킬 때 그 제청권을 갖고 있다. 제청권을 갖는다는 말은 경찰청장이 추천한 총경 이상 임용 후보자에 대해 부적합다고 판단되면 제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행안부 장관이 제청을 거부하면 그 후보자는 채용이나 승진에서 탈락한다. 행안부 장관이 실제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처럼 행안부 장관은 경찰공무원법에 따라 원래부터 총경 이상 인사에 관여하게 돼 있다.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한다고 해서 행안부 장관이 종전에는 없던 인사권을 새로 갖게 되는 게 아니다.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쪽에선 경찰국 신설이 위헌 또는 위법이라고 주장한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대통령령)으로 정부 부처에 ‘국’ 단위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위헌이고, 정부조직법에 경찰 업무인 ‘치안’이 행안부 사무에 포함돼 있지 않아 위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위헌론자들이 위헌 근거로 드는 헌법 조항은 ‘행정 각부의 설치 및 조직과 직무 범위는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 제96조다. 그런데 정부조직법 제2조 ③항에 ‘중앙행정기관의 보조기관은 차관, 실장, 국장, 과장으로 한다’고 돼 있고 같은 조 ④항에는 ‘보조기관의 설치와 사무 분장은 법률로 정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정부조직법은 헌법 제96조에 따라 만들어진 바로 그 법률이다. 그 법률에 대통령령(시행령)으로 행안부 경찰국 같은 ‘국’ 단위 보조기관을 설치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안부 경찰국은 헌법→정부조직법→대통령령으로 이어지는 법 체계에 따라 신설되는 것이라 헌법 위반 여지가 없다. '치안 사무'는 행안부 장관 소관 정부조직법에 행안부 사무로 ‘치안’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정부조직법 제34조 ⑤항에는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경찰국 신설이 위헌 또는 위법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경찰국 신설 외에 또 하나 논란거리는 ‘경찰청장 지휘 규칙’ 제정이다. 지휘 규칙의 중요 내용은 경찰청장이 경찰의 정책과 예산 중 중요한 사안을 행안부 장관에게 승인받거나 사전 또는 사후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는 쪽은 이 규칙을 근거로 행안부가 경찰에 부당하게 개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관이 소속 기관을 지휘·감독하는 것은 정부조직법에 정해져 있다. 정부조직법 제7조 ④항에 ‘각 행정기관의 장은 소속 청에 대하여는 중요 정책 수립에 관하여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앞서 말했듯 정부조직법 제34조 ⑤항은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 조항을 종합하면 경찰청은 행안부 장관 소속이고 행안부 장관은 소속 청인 경찰청의 중요 정책 수립에 대해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게 된다.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하려면 경찰청장이 중요 정책과 예산 사안을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하거나 승인받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찰청장 지휘 규칙은 바로 그 승인이나 사전·사후 보고에 관한 규정이다. '행안부 경찰국', 과거 '내무부 치안본부'와 달라 총경들은 전국 경찰서장 회의 뒤 “경찰국 신설과 경찰청장 지휘규칙 제정은 법치주의 위반이고 역사적 퇴행”이라고 주장했다. 법치주의 위반이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통령령을 통한 경찰국 신설, 행안부 장관의 총경 이상 인사 관여,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직접 지휘는 관련 법들에 따른 적법한 조치다. 따라서 경찰국 신설과 경찰청장 지휘규칙 제정을 법치주의 위반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찰 통제의 필요성에는 경찰도 동의하고 있다. 총경들은 “참석자들이 기본적으로 민주주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에 입각한 민주적 통제에는 동의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국 설치와 지휘규칙 제정 방식의 행정통제는 역사적 퇴행으로 부적절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했다. 총경들은 행안부 경찰국 신설이 1991년 폐지된 ‘내무부 치안본부’로 되돌아가는 걸로 보고 ‘역사적 퇴행’이라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내무부 치안본부’와 이번에 신설된 ‘행안부 경찰국’은 그 기본 성격이 다르다. 내무부 치안본부는 현재의 경찰청이 내무부의 여러 조직 중 하나로 설치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 치안 기능은 물론이고 범죄 수사권도 가졌다. 그러나 행안부 경찰국은 직접 치안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고 수사권을 갖는 것도 아니다. 관련 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그 소속 청의 장인 경찰청장을 지휘·통제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기관에 불과할 뿐이다. 과거의 치안본부에 빗대 ‘역사적 퇴행’이라고 할 일이 아니다. 법무부에도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검찰국'을 두고 있다. 검찰국은 검찰 인사, 예산, 조직, 형사 정책 등 검찰 사무를 지휘·감독한다. 검찰은 단순한 행정 기관이 아니라 준사법 기관이라고 한다. 사법부에 준하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다.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성으로 따지자면 경찰보다 검찰에 훨씬 더 요구된다. 그런 검찰도 법무부 검찰국을 통해 법무부 장관의 지휘·통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경찰은 행안부 경찰국을 통해 통제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법무부 장관도 '검찰국' 통해 검찰 사무 지휘 프랑스에서 유럽 형사제도를 연구한 김종민 변호사는 “프랑스는 내무부(한국 행안부)가 경찰의 인사·예산·정책(법률)에 관한 사항을 관할하고 독일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치안을 맡은 행정 기관이다. 결코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독립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소속 부처의 지휘·통제를 받는 것은 정부 조직 체계상 당연하다. 문제는 경찰 수사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관여 문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경찰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때 “경찰국은 수사와는 전혀 상관 없는 조직이며 지휘 규칙에도 수사와 관련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장관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 또는 경찰 고위직 관련 사건이 있는데 경찰이 수사를 안 하면 수사하라고 할 것’이라고 말한 게 유효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원칙적으로는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에 관여하지 않지만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이나 경찰 고위직이 연루된 사건 수사에는 관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으로 경찰 수사 권한이 막강해졌다. 범죄 혐의 유무를 판단해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면 경찰 자체적으로 수사를 끝낼 수 있는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됐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지휘·통제도 받지 않게 됐다. 경찰 수사권을 통제할 필요성이 그만큼 커진 것은 사실이다. 행안부 장관 '경찰 수사 관여'는 안 돼 그렇다고 하더라도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에 관여하는 게 바람직한 경찰 통제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행안부 장관이 나서게 된다면 경찰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여지가 크다. 여당 출신 정치인이 행안부 장관을 맡으면 그럴 위험은 더욱 커진다. 추미애·박범계 같은 민주당 출신 정치인이 법무부 장관이 돼서 정권 뜻에 맞춰 검찰을 움직이려 했던 일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사는 국가 형벌권 행사의 한 과정이다. 수사와 기소와 재판을 통해 범죄자를 처벌하고 무고한 자를 구제하는 게 국가 형벌권이다. 국가 형벌권 운영을 맡은 중추 기관이 검찰이다. 검찰은 수사가 기소와 공소 유지를 통해 국가 형벌권을 행사한다. 수사가 국가 형벌권 행사의 한 과정인 만큼 종전처럼 경찰 수사 통제는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검찰이 맡는 게 적절하다. 경찰 수사는 검찰 통제를 받고 검찰은 법원 통제를 받는 게 전 세계 민주국가 공통의 형사사법 체계다. 그렇다면 행안부의 경찰 통제 문제에 대한 결론은 명확하다. 행안부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청장 지휘규칙을 만들어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통제하는 것은 불법이거나 부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행안부 장관이 경찰 수사에 관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행안부가 경찰을 통제하되 통제 범위는 수사를 제외한 치안 정책과 인사 업무로 제한돼야 한다. <’행정안전부 경찰 통제' 핵심 내용과 법적 근거> 핵심 내용 법적 근거 ○‘경찰국 신설’은 대통령령으로 가능 정부조직법 제2조 ③항 중앙행정기관의 보조기관은 (중략) 차관·차장·실장·국장 및 과장으로 한다 정부조직법 제2조 ④항 중앙행정기관의 보조기관 설치와 사무 분장은 법률로 정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치안 사무는 행안부 장관 관할 ○경찰청은 행안부 장관 소속 정부조직법 제7조 ⑤항 치안에 관한 사무 관장을 위해 행안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직접 지휘 가능 정부조직법 제7조 ④항 행정기관의 장은 소속 청에 대하여는 중요 정책 수립에 관해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 ○행안부 장관, 경찰 간부 인사 관여 가능 경찰공무원법 제7조 ①항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은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행정안전부 장관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용한다 경찰공무원법 제2조 “임용”이란 신규 채용·승진·전보·파견·휴직·직위해제·정직·강등·복직·면직·해임 및 파면을 말한다 필자 주요 경력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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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 국민 마음 못 잡는 '말'이 문제
정치는 말로 한다고 한다. 정치인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의미를 낳고 파급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의 자질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말하는 능력과 기술이다. 정치인의 자질이 드러나는 것도 말하는 능력과 기술을 통해서다. 대통령에게는 말하는 능력과 기술이 특히 중요하다. 대통령은 최고 정치 지도자로서 말을 통해 국민과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보면 어떨까? 윤 대통령의 육성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통로가 출근길 인터뷰다. 원고도 없고 사전 조율도 없이 즉석에서 나오는 말이라 윤 대통령의 말하는 능력과 기술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자리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출근길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보면 “저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핵심을 빗겨나가거나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지기 일쑤다. '외가 6촌 채용' 논란에 "선거운동 동지"라서 윤 대통령은 출근길 인터뷰에서 ‘외가 6촌 채용’ 논란에 대한 기자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제가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마(빌딩) 캠프에서, 그리고 우리 당사에서 공식적으로 열심히 함께 선거운동을 해온 동지입니다." 기자는 외가 6촌 채용 등이 '권력의 사유화'라는 비판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라고 물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해온 동지’라며 그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한 것이다. 선거운동 동지이니 채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투다. 이 논란의 핵심은 외가 6촌이라는 사람이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어떤 관계이냐가 아니다. 선거운동 동지이든 아니든 친인척을 대통령실에 채용한 게 특혜는 아닌지, 친인척이 대통령실에 근무하면 대통령 힘을 믿고 호가호위하며 다른 비서관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는 않을지, 그러다 보면 비리로 연결되지는 않을지 하는 게 핵심이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것도 이런 점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비선 정치’ ‘지인 찬스 정치’라고 비난하는 것은 사실을 과장한 과잉 비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말했어야 한다. “선거 운동을 함께 했고 전부터 잘 아는 사이라 손발이 잘 맞을 것 같아 채용했다. 채용 과정에 특혜는 없었고 일반 직원과 똑같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채용했다. 다만 친인척을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우려하는 바를 모르지 않는다. 월권이나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경계하고 조심하겠다. 권력 사유화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겠다.” 이렇게 말했더라면 친인척 채용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마음을 누그러뜨렸을 수 있다. 친인척 채용을 있을 수 있는 일로 보는 사람들은 더욱 대통령의 충정을 이해하고 마음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부실 인사 논란을 지적하는 질문에 "그럼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반문했다.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해보세요. 사람들의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화내듯 말했다. '지지도 하락'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들 중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 등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많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자질과 도덕성 문제로 반대해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된 장관급 인사가 30명이 넘는다. 운동권 단체, 비전문가, 정치인 위주의 '코드 인사'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 정권에서 인사 실패가 있었다고 해서 현 정권의 인사 실패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부실 인사와 인사 실패는 그 자체가 문제다. 어느 정권 때가 더 잘됐고 못됐는지를 비교하고 따질 일이 아니다. 기자 질문도 부실 인사, 인사 실패가 검증 과정의 문제 때문은 아닌지, 국정 운영에 부작용을 가져오지는 않을지 하는 우려를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런 우려에 대해 답변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앞으로 검증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 그러나 장관 후보자들을 검증한다고 하지만 과거 부적절한 언행까지 완벽히 걸러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설사 부적절한 언행이 있었더라도 그것 때문에 전문성이 묻힌다면 그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니 과거 부적절한 언행이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 아니라면 후보자의 전문성을 더 중시해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게 국민을 위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도 생각해 주면 고맙겠다.” 윤 대통령은 국정 지지도 하락세에 관한 질문을 받고 “선거운동 하면서도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지지율은)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고, 제가 하는 일은 국민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지지율에 너무 신경 쓰는 게 적절한 자세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지지율에만 얽매이면 인기 영합 정책만 펼 우려가 있다. 당장 인기는 없더라도 국가 장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는 것이 대통령이 가야 할 길이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 답변은 말 그대로만 놓고 보면 꼭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이 답변도 질문의 취지나 핵심을 벗어나 있다. 국정 지지도 하락세에 관한 질문의 핵심은 예를 들면 ‘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보느냐, 그에 대한 대책은 뭐라고 보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의 국정 수행 방식이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느냐, 문제가 있다면 뭐라고 보느냐’ 하는 것이다. 국민 듣고 싶어하는 것보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답할 게 아니다.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지율은 민심의 반영이라고 본다. 지지율 하락을 국민들이 새 정부 국정 운영에 무엇을 불만스러워하는지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겠다. 민심이나 여론 흐름을 잊거나 소홀히 하지 않도록 잘 되새기겠다.” 이게 국정 지지도 하락에 관한 질문을 통해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일 것이다. 지지율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면 한마디 덧붙이면 된다. “다만 당장의 지지율에 너무 얽매이는 것은 장기적인 국정 운영에 바람직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이다. 그러지 않고 ‘지지율에 신경 쓰지 않는다. 별 의미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바람에 마치 민심이나 여론의 동향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리게 했다.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보이게 했다. 윤 대통령은 늘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대통령이 그래서인 듯 대통령실 사람들도 그렇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외가 6촌 채용 논란에 “외가 6촌은 이해충돌방지법 상 채용 제한 대상도 아니다. 친인척이라고 배제하면 그게 차별일 수 있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순방 때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배우자가 동행한 논란에 대해서도 “이해충돌방지법 등 법적 문제 방지를 위해 스스로 무보수 자원 봉사를 했다. 외교부 장관 결재 등 적법 절차를 거쳐 ‘기타 수행원’으로 지정돼 동행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했다. 두 경우 모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법과 원칙은 중요하다.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법과 원칙만으로는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법과 원칙은 머리를 끄덕이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마음을 움직이려면 국민 마음에 와닿는 말을 해야 한다. 국민이 궁금해하고 의아해하는 것,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것을 잘 헤아려 말해야 국민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보다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그게 진짜 소통이고 설득이다. 링컨 대통령 같은 용의주도함 아쉬워 윤 대통령 지지율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국민 마음을 잡지 못한다는 뜻이다. 마음을 못 잡는 중요한 이유가 국민 눈높이와 동떨어진 말 때문일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대통령 국정 수행에 관한 부정적 평가 이유로 ‘인사’ (25%), ‘경제와 민생을 살피지 않음’ (12%), ‘경험과 자질 부족’ (8%), ‘독단적이고 일방적’(6%) 등이 꼽혔다. 이 가운데 ‘경험과 자질 부족’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라는 평가는 상당 부분 윤 대통령의 말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이 국민 마음에 와닿도록 말만 잘 했더라도 이런 부정적 평가는 줄어들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사’ ‘경제와 민생을 살피지 않음’이라는 부정적 평가도 윤 대통령이 국민 마음을 헤아려 솔직하고 진지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더라면 상당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 말이 논란을 일으키자 출근길 인터뷰를 없애거나 횟수를 줄이자는 의견이 여당 안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출근길 인터뷰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현안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고 그럼으로써 국민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제는 이 기회를 잘 살리는 것이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즉석 연설에 탁월했다. 즉석 연설을 매우 중시하기도 했다. 즉석 연설에 대비해 늘 ‘무엇을 어떻게 말할지’를 생각하고 메모하는 일을 습관화했다. 대통령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주목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자칫하면 잘못 이해되거나 잘못 인용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겼다. 링컨 대통령이 말에 그토록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인 이유는 말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평판과 신망은 상당 부분 대통령이 하는 말에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국민 평판과 신망은 대통령 권력의 원천이다. 평판과 신망을 잃으면 권력은 물 새듯 새고 만다. 권력을 잃으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말하는 능력과 기술을 염려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윤 대통령에게 링컨과 같은 용의주도함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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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의 관점] 미국을 두쪽 낸 연방대법원 판결, 사법부 정치화의 폐해 보여줘
지금 미국은 최근 나온 몇 가지 연방대법원 판결을 놓고 이를 지지하는 보수와 반대하는 진보 두 쪽으로 갈라져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2일자 1면 톱 기사에서 미국이 보수를 상징하는 붉은 색과 진보를 상징하는 푸른 색으로 갈라져 있다고 보도했다. 이제 미국을 ‘합중국 (the United States)이 아닌 ‘분열국 ( the Disunited Sates)’으로 불러야 할 판이라고 했다. 그만큼 미국이 역상 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분열돼 있음을 가리킨다. 미국을 두 쪽으로 가른 연방대법원 판결 중 대표적인 것이 지날 달 24일 나온 낙태 합법화 폐기 판결이다. 이 판결은 낙태를 합법화한 1973년 판결을 거의 50년만에 정면으로 뒤집었다. 그동안 헌법이 바뀐 것도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판결 근거가 된 헌법은 수정 헌법 제14조 1항이다. 여기에는 미국 시민권자는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는 생명, 자유,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며 법 앞의 평등한 보호를 받는다고 돼 있다. 50년만에 정반대 판결이 나온 이유는 이 14조1항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이다. 헌법 조항, 50년만에 정반대로 해석 대법원은 1973년에는 대법관 9명 중 7대2의 다수결로 14조 1항에 ‘사생활의 권리’가 함축돼 있고 이 권리로부터 낙태권이 나온다고 했다. 사생활의 권리란 누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생활을 할 권리를 말한다. 임신을 계속할 것이냐 중단(낙태)할 것이냐도 사생활이고 따라서 누구나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낙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낙태권은 헌법 상 인정되는 권리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달 24일에는 대법관 9명 중 5대4의 다수결로 정반대 해석을 했다.대법원은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문에서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그런 권리는 헌법상 어떤 조항에 의해서도 암묵적으로도 보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14조1항에 낙태권이 포함돼 있지 않음은 물론이고 헌법 다른 조항에도 암묵적으로라도 낙태권을 인정하는 언급은 없다는 뜻이다. 1973년 낙태 허용 판결 때도 다수 의견에 반대한 대법관 2명은 헌법에 사생활 권리 조항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다수 의견을 비판했다.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은 “나는 헌법의 어디에서도 다수 의견을 지지하는 구절을 단 한 개도 발견하지 못했다”며 “낙태 허용 판결은 헌법이 연방대법원에 부여한 권한을 넘어도 한참 넘는 것”이라고 했다. 윌리암 렌퀴스트 대법관은 “다수 의견은 사생활의 권리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런 권리는 헌법을 설계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던 권리”라고 했다. 이들의 주장은 낙태 합법화를 폐기한 지난달 24일 판결 논리와 거의 똑같다. 그럼 왜 50년 만에 이렇게 상반된 헌법 해석이 나왔는가?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뉴욕타임즈는 법학 교수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그 원인을 대법원의 ‘정치화’에서 찾는다. 정치화란 대법관들이 국민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중요 사건의 재판에서 자기를 임명한 대통령의 이념에 따라 판결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를 임명한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이면 공화당 노선대로 보수 성향 판결을 하고, 민주당 소속이면 민주당 노선대로 진보 성향 판결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자기를 임명한 대통령의 ‘코드’에 맞춘 코드 판결이 ‘정치화’이다. 과거에는 이런 정치화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진보 성향 판결을 내리고,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보수 성향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두 법학 교수가 이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소개했다. 이에 따르면 중요 쟁점에 대해 진보 성향으로 표결하는 비율이 1950~198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당 대통령 임명 대법관과 공화당 대통령 임명 대법관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 민주당 임명 대법관은 연구 대상 전체 사건의 47~75%, 공화당 임명 대법관은 30~47%를 진보 성향으로 판결했다. 대법관, 자기 임명한 대통령 이념 따라 판결 그런데 1990년 들어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대통령 임명 대법관은 진보적으로 판결하고 공화당 대통령 임명 대법관은 보수적으로 판결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요 사건 중 진보 성향 판결 비율이 민주당 임명 대법관은 88~97%나 되는 반면에 공화당 임명 대법관은 14~30%에 불과했다. 민주당 대통령 임명 대법관은 무조건 진보, 공화당 대통령 임명 대법관은 무조건 보수 성향으로 판결하는 양극화가 굳어졌다는 뜻이다. 급기야 지난 달 24일 나온 낙태 합법화 폐기 판결에서는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6명 중 5명은 폐기 찬성, 민주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3명은 전원 반대 의견을 했다. 공화당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 중 존 로버츠 대법원장만 반대 쪽에 섰다. 결국 대법관 9명 중 5대 4로 낙태 합법화 폐기 판결이 내려졌다.전통적으로 공화당은 태아 생명권을 존중해 낙태에 반대하고, 민주당은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해 낙태에 찬성 하는 입장을 취해 왔다. 낙태 합법화 폐기에 찬성한 대법관 5명 중 3명이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미국 대법관은 임기가 없는 종신직이다. 본인이 건강 등의 이유로 사퇴하거나 사망해서 공석이 생겨야 후임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중 대법관 세 자리가 공석이 됐다. 트럼프가 그 자리를 모두 보성 성향 인사로 채운 것이다. 대법원의 정치화는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정치적 양극화의 반영이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딴 나라 사람들처럼 갈라져 있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은 무조건 지지하고 상대 당은 무조건 반대한다. 트럼프는 자기가 낙선한 2020년 대선을 부정 선거라고 주장한다. 이에 동조하는 사람이 공화당 지지 중 절반을 넘는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물론 민주당 지지자 대부분은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엘리트 법조인 중에서도 엘리트가 선발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누구보다도 존경받고 영예스럽게 여겨지는 자리다. 연방대법관들을 ‘9명의 현자(지혜로운 사람)’로 부르기도 한다. 그동안 연방대법원 판결은 국민들의 깊은 신뢰와 존중을 받아 왔다. 연방대법원 판결을 국민투표에 붙이면 그 판결 그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런데 이번 낙태 합법화 폐기 판결은 그렇지가 않았다. 미국 CBS방송이 이 판결 직후인 지난달 24~25일 미국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9%가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지한다”는 41%였다. 특히 여성은 67%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연방대법원 판결이 여론과 다른 것이다. 대법원이 정치화하면서 갈등과 양극화를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촉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사법부가 정치화하면 국민은 사법부를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제3의 기관이 아니라 정당과 같은 정치 조직으로 보게 된다. 그러면 사법부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지금 미국 대법원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미국이든 어디든 사법부의 정치화는 경계해야 할 임을 미국 사태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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