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 오세훈·한동훈이 외치는 보수 재건, 어떻게 해야 하나


 
왼쪽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지난 31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지난 31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보수의 가치 재정립이 출발점


지방선거가 끝나자 오세훈 서울시장, 한동훈 국회의원 등이 보수 재건을 외치고 나섰다. 선거에서 두 사람은 ‘윤 어게인’과 선을 그었다.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넘어 중도층 지지 확보를 선거 전략으로 삼았다. 두 사람의 당선은 국민의힘이 윤 어게인 노선과 결별하고 보수 재건을 위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민심의 반영이다. 보수 재건 여부는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2030년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 진영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요인이다. 

 

그렇다면 보수 재건은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가치를 분명히 해야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진다. 보수는 보존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평화와 안정 속에 미래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데 필요한 가치가 보존하고 지켜야 할 가치이다. 평화와 안정을 지키되 기존 질서 수호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되 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하는 게 보수 재건의 핵심이다.

 

이런 가치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법과 상식의 회복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법과 상식을 어긴 대표적 사례이다. 윤 전 대통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입법권을 남용하고 탄핵 소추를 남발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정을 방해해 불가피하게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국정 방해가 심했다는 데 동의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야당의 국정 방해가 심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비상계엄으로 막으려 한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야당과 대화해 설득하고 타협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민주 정치의 상식이다. 


'절윤'으로 법과 상식의 회복
 

국회 다수 의석으로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과 대화하고 협상하기가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와 협상이라는 민주적 절차 대신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 수단으로 대처한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야당의 국정 방해 행위가 비상계엄 선포의 헌법적 요건이 될 수 없다. ‘윤 어게인’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윤 전 대통령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법과 상식을 어긴 사실 그 자체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들은 윤 어게인을 곧 법과 상식의 무시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절윤’은 단순히 윤석열 개인과의 단절이 아니다. 법과 상식의 회복을 뜻한다. 보수를 재건하려면 분명한 절윤을 통한  법과 상식의 회복 의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진보 세력은 ‘법보다 정의’를 외친다. 정의의 이름으로 법과 상식을 파괴한다. 법이 명백히 정의에 어긋날 때는 법을 고치는 게 맞는다. 그러나 ‘법보다 정의’에 빠지게 되면 당리당략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법과 상식을 파괴할 위험이 커진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소 취소권을 가진 특검 법안’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정의이다. ’조작 기소’를 바로잡아 정의를 세우겠다고 한다. 

 

그러나 특검이 조작 기소 여부를 판단할 법적 권한이 없다. 특검은 조작 기소가 의심되면 관련 검사들을 기소해서 법원 판단을 받게 할 수 있을 뿐이다. 법원이 조작 기소를 최종 인정하면 그때 가서 공소 취소를 해도 할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재명 대통령 재판 과정에서 조작 기소를 입증해 무죄 판결을 받게 하는 것이다. 법원이 조작 기소를 인정하면 이 대통령은 당연히 무죄를 선고받게 된다. 이런 절차가  법이고 상식이다. 그러지 않고 특검이 조작 기소를 이유로 공소를 취소한다면 법과 상식을 정면으로 어기는 일이다. 

 

국민의힘이 공소 취소를 비판하고 반대하려면 먼저 스스로  법과 상식을 지키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 공소 취소 반대에 대한 정당성을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자기는 법과 상식을 무시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지키라고 한다면 누가 수긍하겠는가? 명확한 ‘절윤’ 선언은 법과 상식의 가치 회복 의지를 보여주는 첫걸음이다.


정부 지원은 약자 중심으로
 

정부가 국민 생활을 지원하되 그 지원은 약자에게 집중돼야 한다는 것도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이다. 보수는 사람의 삶에서 ‘사회 책임론’이 아닌 ‘개인 책임론’을 지향한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발휘하고 업적을 내면 성공하고 그러지 못하면 실패하는 능력주의와 업적주의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여긴다. 이런 사회라야 모두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려 노력하고 그 결과 개인과 사회 모두 발전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 정부의 민생 지원금 같은 정책은 보수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 현 정부는 민생 지원 명목으로 지난해 13조원, 올해 26조원을  지급했다. 작년에는 전 국민에게, 올해는 소득 하위 70% 국민에게였다. 정부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지원이 정말로 민생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소득수준이 매우 낮은 소수 계층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연봉 1억원이 넘는 사람들에게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은 불필요하다. 소수 계층에게 액수를 대폭 늘려 집중 지원하고 남는 돈은 경제와 사회의 장기 발전을 위해 투자한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돕고, 성장 잠재력도 키우는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보수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경쟁을 중시한다. 그러나 능력 만능주의, 경쟁 만능주의를  지향하지는 않는다.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을 돕고, 경쟁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어주는 ‘따뜻한 보수’가 진정한 보수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는 경쟁과 능력만 최고로 삼는 차가운 보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나’만 있지 ‘우리’는 없거나 약했다는 비판이었다. 개인의 자율과 창의를 최대한 보장해 누구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되 사회적·경제적 약자는 특별히 배려하는 게 보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국민의힘이 보수를 재건하려면 ‘정부 지원은 약자 중심으로’라는 철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변화하되 안정 속에 점진적으로
 

보수주의는 ‘안정 속에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 바꿔 나가되  이념에 얽매여 급진적으로 하지 않고 경험과 전통과 관행을 존중하면서 한 단계씩 하는 게 보수의 철학이다. 우리 사회의 보수는 변화에 둔감했다는 평을 받을 만하다. 한 사례가 검찰 문제이다. 검찰이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하며 정치 수사와 봐주기 수사를 일삼은 행태는 고질적 병폐였다. 그럼에도 보수 정권은 검찰의 문제점을 직시하지 않았다. 당연히 검찰 개혁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 결과가 오늘날 ‘검찰청 폐지’로까지 이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권의 검찰청 폐지가 최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검찰 수사권이 문제라면 경찰에 수사권을 전담시키면 된다. 굳이 일반 범죄, 중대 범죄, 고위공직자 범죄로 나눠 경찰, 중대법죄 수사청, 공수처에 맡길 필요가 없다. 괜히 수사기관 난립만 가져왔다. 경찰에 수사 종경권을 준 데 이어 중수청에는 검찰의 보완수사권까지 폐지하겠다고 한다. 검찰권 비대화는 막겠지만 경찰과 중수청 권한의 비대화라는 다른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검찰청은 설립된 지 70년 넘은 기관이다. 그간 분야별 전문 수사 능력과 경험을 쌓아 최고 수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경찰 수사 지휘를 통해 경찰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현 정권은 이런 검찰을 단숨에 폐지해 버렸다. 검찰의 전문적 수사 노하우를 활용할 수 없게 됐다. 경찰과 중수청이라는 1차 수사기관을  견제할 수 없게 됐다. 비리와 부패에 대한  국가적 대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찰의 수사 부실과 비리가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이 모두가 급진적 개혁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결과이다.

 

노조의 교섭 범위를 크게 확대한 노란봉투법도 이미 곳곳에서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사내 하청이나 협력 업체까지 원청 업체를 상대로 교섭할 길이 열리면서 원청 업체는 교섭 창구가 사실상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다. 노사 업무 부담이 폭증해 기업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가 크다. 이 역시 노조 권리 강화라는 이념에 얽매여 급진적인 개혁을 한 탓이다.  

 

이런 급진적 개혁은 전통과 경험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고쳐 나간다는 보수의 이상과 맞지 않는다. 아무리 선한 의도로 한 일이라도 그 결과는 사회적 악이 될 수 있다. 보수는 사회를 개선하려고 시도할 때는 점진적으로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아감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완벽함을 추구하느라 평화롭고 안정적인 사회를 잃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그것을 소중히 가꾸는 일이 훨씬 더 현명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게 보수의 기본적인 철학이다. 보수를 재건하려면 급진적 개혁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를 막으려면 어떻게 점진적 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는 정치 아닌 과학' 분명히
 

보수는 시장경제주의를 지향한다. 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원리는 시장 경쟁이라는 믿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제는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고 정치이고 권력’이라고 말한다. 시장 경쟁에만 맡기면 불평등과 양극화 같은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정치와 권력이 개입해서 시장경쟁원리를 막아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 대표적이 사례가 저신용자 대출 문제이다. 이 대통령은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는 대출을 안 해주거나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은 ‘잔인한 금융’이라고 주장한다. 

 

신용이 낮아 대출받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고 그게 실제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건 정부가 복지 정책으로 할 일이지 경제 정책으로 할 일은 아니다. 대출 같은 금융 문제는 시장경제원리에 맡기고, 저신용자 대책은 복지 정책으로 푸는 게 시장경제원리도 지키고 약자도 보호하는 일이다. 그러지 않고 ‘경제는 정치’라는 주장 아래 정부가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경제에 개입하게 되면 시장을  왜곡시켜 더 큰 부작용을 부르게 된다.

 

서구에서도 전통적으로 진보 세력은 국가의 경제 개입을 기본 정책으로 삼아왔다.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거나 배급제를 실시한 것은 그 극단적 사례다. 그게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는 이미 다 드러났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공장을 호남권에 짓자는 여권 일각의 주장도 경제를 정치로 보는 사례의 하나다. 보수를 재건하려면 ‘경제는 경제’라는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보수 재건은 말로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재건해야 할 가치를 분명히 하고 이를 정책으로 옮겨 국민 신뢰를 받을 때 보수는 재건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정치학과·대학원 정치학 석사 ▶조선일보 논설위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 ▶전 원주 한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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