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출생과 저성장, 지역소멸과 격차 사회, 이 모든 것은 수도권 일극 체제라는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이 지속 가능성을 갖추려면 서울 중심인 일극 구조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하면서 이같이 말하며 지방의 자율성과 혁신 없이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구조적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서는 혁신균형발전과 과감한 분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시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저출생과 저성장 위기에 직면했다. 이 두 문제가 어떻게 연결돼 있다고 보나.
“저출생과 저성장은 결코 따로 놓고 볼 수 없다. 둘 다 수도권 중심 일극 체제라는 구조 속에서 발생한 문제다. 인구와 자본, 일자리, 교육, 정책 등이 모두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지방은 점차 소외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지역이 활력을 잃고 국가 전체적인 균형도 무너지게 된다.”
-수도권 집중 문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나.
“가장 심각한 건 청년들의 서울 집중이다. 2010년 이후 서울 인구 증가 대부분은 지방 청년들이 옮겨간 결과다. 그러나 그 청년들이 서울에서 삶의 질을 높였느냐고 물으면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 높은 주거비, 치열한 경쟁,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서울은 청년을 소모하는 도시가 돼가고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 강남 편중 현상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대한민국의 정책 결정자와 사회지도층 대부분이 서울, 특히 강남에 몰려 있다. 그들은 자신이 익숙한 생활환경과 시각으로 국가 전체를 바라본다. 하지만 지방의 현실을 체감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이로 인해 현장의 목소리는 왜곡되고 실효성 없는 대책만 반복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 '격차 사회'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렇다. 소득, 자산, 교육, 기회의 격차는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됐다. 지방에 사는 청년은 수도권 청년에 비해 동일한 출발선에 설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수도권에서는 정보 접근이 빠르고 일자리가 풍부하며 네트워크도 발달해 있지만 지방은 그렇지 못하다. 이 구조 속에서는 격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결국 이는 저출생과 저성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수도권 중심 구조를 ‘아귀모델’로 표현한 이유가 뭔가.
“지금 대한민국은 머리만 비대하게 크고 몸통은 왜소한 ‘아귀’ 같은 구조다. 인구의 절반, 경제력의 70%, 대기업 본사의 9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렇게 한곳에 모든 게 집중된 구조에서는 다양성과 혁신이 나올 수 없다. 반면 미국은 ‘고래’처럼 전국 곳곳에 힘이 분산돼 있다. 오스틴, 시카고, 보스턴 같은 도시들이 각기 특화된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도 부산, 대구, 광주 같은 도시들이 각자 역할을 하며 성장할 수 있어야 국가 전체가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지방 자율 성장이 어려운 이유는 뭔가.
“중앙정부가 권한을 너무 많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정부는 예산, 권한, 규제 해소 등 어느 것 하나도 자율적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국토 이용, 환경 규제, 개발 계획 등 모든 게 중앙 승인 없이는 추진하기 어렵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방이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방 자율성 확보를 위한 분권 방식은.
“초광역 단위에 미국 주(州) 수준의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예컨대 부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남 같은 권역이 각각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어야 진정한 혁신이 가능하다. 단순 행정단위가 아니라 산업과 교육, 인프라까지 통합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지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수도권 이외 지역이 우리나라 혁신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다. 인프라 수용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지방 도시의 혁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부산은 해양과 물류 중심 도시로, 대전은 과학, 광주는 문화콘텐츠 분야로 각각 특화해야 한다. 각 지역이 자신만의 강점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국가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요구한 이유는 뭔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은 단순한 공공기관 이전이 아니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해체할 수 있는 구조적 전환의 시금석이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동남권 제조업과 해양 산업의 연계가 가능해지고 그에 따른 경제적 시너지는 상당할 것이다. 지방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금융 중심 축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전략적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국회에 요청한 ‘글로벌허브도시 조성 특별법’은 뭔가.
“부산은 해양물류를 중심으로 글로벌 거점 도시로 성장할 준비가 돼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법적·재정적 장치가 부족하다.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은 물류, 해양, 첨단산업, 금융 등을 결합해 부산을 아시아의 핵심 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자 국가 전체의 미래와 직결된 사안이다.”
-대한민국 균형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핵심 해법은.
“이제 대한민국은 ‘하나의 서울’이 아니라 ‘여러 개의 대한민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수도권 중심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지방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중앙이 권한을 내려놓고 지방이 주도할 수 있도록 판을 새롭게 짜야 할 때다. 혁신 없는 균형 발전은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균형 발전은 과감한 분권에서 시작된다. 이것이야말로 초저출생과 저성장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박 시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광역 수준의 지방자치단체가 혁신 단위로 기능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분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산 배분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인 권한 이양을 통해 지역의 혁신 거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거점도시가 혁신 역량을 갖추기 위해선 혁신 인프라·인재 양성, 특성화된 혁신 클러스터가 필수"라며 "지방정부 혼자 힘으로 부족하다면 중앙정부가 발 벗고 나서 함께 혁신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 모두가 변화에 대한 힘을 모을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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