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역사의 교차로에서] 품위를 내던진 정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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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4-05-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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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가장 혐오스러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는 대개 위선자였다. 우리의 오랜 전통에 잔존하는 유교 영향 때문이었겠지만 우리 사회는 민주공화국이 된 후에도 (특히 지배계층에) 높은 지성과 인격적 고결성을 요구했기 때문에 ‘출세’를 할수록 도덕적 수준도 높아 보여야 했다. 그러나 학문적 또는 직업적 성취보다도 도덕적 인격 완성은 훨씬 더 어려운 것이어서 자연히 그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하고 흉내만 내는 ‘위선자’가 양산되었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드는 기독교 역시 2000년에 걸쳐 무수한 위선자를 배출했다.

아무튼,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뇌물수수, 청탁 등 갖가지 비리를 저질러서 나라에 해를 끼치고 서민을 억울하게 하면서 ‘애국’ ‘애족’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 시절에 위선자가 많았던 것은 그래도 그때는 ‘도덕 ’관념이 존재했고 인격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출세’한 사람이라면 일반인이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 같이 보이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가와 고위공직자들은 ‘비리’ 정도가 아니라 완전 범죄행위가 드러나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게 뻔한 지극히 형식적인 변명이나 해명으로 피해간다.

그런데 그 변명 역시 선출직이나 임명직이나 학력은 전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어도 (그중에 반은 대필논문으로 받은 학위 덕이지만) 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수준이 매우 낮아서 치졸하기 짝이 없다. 시어(詩語)로도 손색이 없는 우리말이 정치지망생들의 손에서 어휘도 문법도 타락해서 이제는 내용이 좋고 논리가 맞는 말이 아예 사멸되다시피 했다. 지난 몇 기의 국회 속기록을 다시 본다면 그 토의된 내용, 제기된 주장, 의원들 간에 오고 간 비방과 욕설, 제정된 법률이나 결정된 국가 대사 모두 낯 뜨거워 차마 읽을 수 없는 국민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렇게 우리 정치권의 언어가 타락한 변곡점은 딱히 짚기 어렵겠지만 나는 노무현 집권과 연관 짓게 된다. 그전 부터도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들의 말이 품위에서 점점 멀어졌고 어휘도 거칠고 부정확했으나 노무현이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남북 관계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입에서 ‘깽판’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아무리 강조를 위한 수사(修辭)라 해도 어떻게 막중한 대통령의 업무를 깽판 쳐도 되는 일로 비하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나라는 노무현 집권기를 계기로 임명직이나 선출직을 막론하고 언어의 품격을 폐기하지 않았나 싶다. 그 후 이재명의 형수에게 한 쌍욕이 우리 정치판을 언어의 해방구로를 만들었을까? 아무튼 우리말이 이토록 추락한 데는 정치인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정가의 언어에서 품격이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 정치가 민주적이고 서민 친화적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언어가 무식해지고 천박해지고 논리가 빈곤해지니까 나랏일 또한 방향을 잃고 허둥거리며 표류하게 되었다. 거칠고 경박하고 두서가 없는 언어로 토의되고 의결된 사안들도 억지스럽고 비논리적이고 치졸하게 되었다. 사실 수많은 의원들이 이 대열에 합세해서 상대 당 의원들에게 최대한 무례하고 모욕적이려고 노력했는데 그중에서도 상당한 두각(!)을 나타낸 의원이 적지 않다.

막말, 험담, 악담, 요언, 망언에 있어서 추미애를 따라잡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는 어느 언론인의 말에 대부분 국민이 동의할 줄 믿는다. 추미애는 최근에 국회의장 자리를 넘보았는데, 국회의장이라면 우리나라 국가 서열 2위의 지위다. 그런데 당대표가 자기를 국회의장으로 낙점했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이 무개념 아줌마가 세계 무대에 대한민국의 얼굴로 등장한다고? 그리고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없다는 것은 이미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많은 국민이 추미애가 국회의장 후보로 추천되지 않아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안 민주당은 명심(明心)을 거역하고 우원식에게 표를 던진 당선자를 ‘색출’하려고 굿판을 벌이는 모양이다. 당헌당규를 따라 1인 1표 행사한 투표 결과에 대해 반대표를 던진 당선자들을 ‘색출’해서 제명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니 이들이 민주국가의 국회의원들인가? 대한민국 22대 국회는 국회의장 선출 내홍과 함께 개원하고 대통령 탄핵, 줄줄이 특검 등으로 갈등과 분열과 대립의 나날을 보내다가 나라와 함께 무너질 것 같다.

2020년 추미애는 법무장관에 임명되자 조국에 대한 수사를 막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고립시키기 위해서 학살 수준의 검찰 인사를 단행했고 자기와 직급이 같은 윤석열 총장이 자기 명령을 ‘거역’했다는 가소로운, 자신을 왕비마마로 착각하는 듯한 말을 하고, 자기 아들의 군복무와 병가에 대해서 거짓말을 해대며 아들의 군대 상사들을 곤란하게 했다. 추미애는 또 토지는 국가 소유로 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허물고 국민의 재산권을 짓밟는 말을 하더니 윤석열 총장의 총선 출마가 ‘민주주의를 악마에게 던져주는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정말 너무 논리도 일관성도 없고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도 없는, 악녀인지 백치인지 무당인지 모를 아줌마 때문에 이따금씩 나라가 롤러코스터를 탄다.

추미애가 막말계의 톱스타라지만 만만찮은 경쟁자군을 거느리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청문회나 국정감사에서 장관(후보)이나 총리에게 호통을 치고 기를 죽일 때 제일 살맛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가 가끔 무리를 해서 공직자는 국회의원의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반격을 받고 체면을 구기는 일도 있다. 그러나 역대 국회에서 많은 폭언, 참언의 실력자들이 국회에 끌려나온 국무위원과 기타 증인들을 고문했다. 표창원, 심상정, 최강욱, 손혜원, 윤미향, 송영길, 고은광순, 서영교, 김의겸 등이 그들의 운동권 시절부터 갈고닦은 독설 실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이제 곧 조국이 그 대열에서 선두를 쟁취하려 할 것이다. 국민의힘에는 이들과 대적할 만한 ‘입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듯하다. 기껏해야 홍준표? 그러나 그는 원외(院外)인 지 오래다.

‘청문회’에 나온 공직자 후보들은 대부분 부동산 투기, 친·인척 채용 특혜, 자녀입시 관련 비리 등 약점이 있어서 처음부터 굽신거렸는데 이제는 그런 경력이 필수가 되다시피 해서 변명도 아주 요식적이 되었다. 최근에는 법을 수호하고 공직자의 비리를 추상같이 밝혀야 할 공수처장 후보가 '딸아이에게 아파트는 하나 물려줘야 할 것 같아서 편법증여를 했다'고 좀 쑥스럽게 고백하는 정도다. 근무시간에 주식 거래를 한 대법관, 국회 본회의장에서 회기 중에 코인 거래를 한 초선 의원, 기타 무수한 편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처신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도 없고 그저 아무 변명이라도 안 할 수 없는 것이 번거롭고 구차하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는 한 인물이 저지른 편법과 비리가 그의 능력에 대한 척도가 된 듯도 하다. 어쩌면 청문을 당하는 사람보다 더 화려한(?) 비리의 장본인이 시침 떼고 청문을 하는지도 모른다.

전과자, 피고소인 비율이 역대 어느 국회보다 높은 22대 국회는 얼마나 살벌하고 혼란스러울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22대 국회는 개원을 강행하고 대통령 탄핵을 관철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된다면 여야 공멸, 국가 소멸의 서곡이 아닐지?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 거짓말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몇 년간 계속 거론된 김정숙 여사의 타지마할 관광 국고 유용 사안에 대해서 뒤늦게 김정숙의 인도 방문이 인도 측의 간곡한 요청에 의한 것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영부인 ‘단독외교’라고 찬양했다. 그러나 사건 직후 국감 당시 자료는 그것이 허위임을 명백히 드러내었고 외교부도 인도 정부는 허황옥을 기리는 행사에 원래 도종환 문제부 장관을 초청했다고 초청장까지 공개하면서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도 너무나 잘 알려진 그 사건의 진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처가’라는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밀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 부린 만용이 아닌지?

그래도 최근에 정치권에서 나온 말 중에서 쓸 만한 말이 딱 한마디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나왔다. 우원식 의원 발언이나 행적 중에서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아무튼 22대 국회 전기 국회의장 후보로 출마하면서 다른 후보들은 확실히 민주당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한 우 의원의 소신이다: “(국회의장의) 중립은 몰가치가 아니다.” 이번 22대 국회 전반기 의장만이라도 중립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영문학과 학사 ▷미국 웨스트조지아대학 영문학 석사 ▷뉴욕 주립대학 영문학 박사 ▷1974년 이래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현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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