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권진아 '운이 좋았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까?

  • 인지적 재평가로 읽는 권진아 '운이 좋았지' 속 이별의 성숙

가수 권진아 사진어나더레이블
가수 권진아 [사진=어나더레이블]

권진아 작사·작곡의 '운이 좋았지'(2019)는 이별을 슬프게만 부르지 않는다. 그저 아팠던 시간을 조용히 쓴다. 감상은 저마다 다르다. 사랑했던 사람도, 이별의 모양도, 노래가 닿는 마음의 자리도. 그럼에도 이 곡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 안에 개인의 사연을 넘어서는 코드가 있어서일지 모르겠다.

'운이 좋았지'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고백일까, 아니면 아팠던 사랑을 불행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방식일까. 사랑을 자연재해처럼 말하는 표현들은 재난화일까, 아니면 재난처럼 느껴졌던 사랑을 다시 봄바람으로 바꾸는 재해석일까.
 
▲ 이별을 작게 말하는 사람, 정말 덜 아팠을까

노래의 초반부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들의 이별은 어렵다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는 식이다.

이상하게 들린다. 길게 싸우지도 않았고, 붙잡지도 않았고, 지저분하게 무너지지도 않았다는 뜻처럼 보인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사람은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를 작게 말할 때가 있다. "별거 아니었어", "오히려 잘됐지" 같은 말은 때로 마음의 방어막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너무 압도될 것 같으니, 먼저 사건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화자는 이별을 대단한 비극으로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자주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반대로 큰 통증을 느낀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자기에게 계속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괜찮지 않았던 사람이 괜찮아지기 위해 그런 말을 반복한다.
 
▲ 식어간 기억이 없다는 말의 이중성

다음 가사에서 화자는 서서히 식어간 기억도 없었다고 말한다. 한없이 사랑했던 날도 없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을 축소하는 문장이다. 사랑이 대단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방식이다. 이 축소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 상실의 크기를 줄인다. 사랑이 컸다면 이별도 크다. 사랑이 전부였다면 이별은 세계의 붕괴가 된다. 그래서 마음은 때로 사랑 자체를 작게 만든다. "사실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어"라고 말해야 숨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존심을 지킨다. 내가 너무 사랑했다는 사실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부끄럽기도 하다. 특히 사랑이 끝났을 때는 더 그렇다. 너무 많이 준 사람은 이별 뒤에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왜 그랬지, 왜 그렇게까지 믿었지, 왜 나보다 그 사람을 더 크게 뒀지. 이 질문 앞에서 사랑이 작았다고 말하면, 무너진 나도 덜 초라해진다.

하지만 노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화자는 결국 그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인정한다. 초반에는 사랑을 작게 말하고, 후반에는 사랑의 크기를 고백한다.

'운이 좋았지'는 처음부터 성숙한 사람이 담담하게 회고하는 노래가 아니다. 상처를 줄여 말하다가, 마침내 그 상처의 크기를 인정하는 노래다.
 
▲ 지나간 인연에게 배웠다는 말

화자는 스쳐 지나간 인연들이 자신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고 말한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정리한다.

이는 아픈 과거를 상처나 실패로 두지 않고, 배움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인지적 재평가는 스트레스나 갈등 상황 자체를 바꾸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을 바꿔 감정을 조절하는 심리적 기법이다.

"나는 버려졌다"가 아니라 "나는 배웠다"로, "나는 망가졌다"가 아니라 "나는 나아졌다"로, "그 사랑은 실패였다"가 아니라 "그 사랑은 나를 만들었다"로. 이 전환은 '운이 좋았지'의 강력한 정서적 힘이다.
 
▲ 혼자 울음을 삼킨 사람의 고백

중반부에 이르면 화자는 드디어 말한다. 많이 아팠고, 혼자 울음을 삼킨 날도 많았다고.

이 가사는 앞의 모든 담담함을 다시 읽게 만든다. 운이 좋았다는 말, 별일 아니었다는 말,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모두 이 고백 위에 놓여 있다. 그는 아주 많이 아팠지만, 그 아픔을 타인에게 함부로 쏟지 않았다. 혼자 삼켰다.

화자는 아픔을 자기 파괴로 끌고 가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리에만 머물지도 않는다. 울음을 삼킨 뒤 결국 웃어 보이겠다고 말한다. 긴 어둠의 시간이 지나고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외상 후 성장(PTG: Post-Traumatic Growth)은 극심한 심리적 충격(트라우마)이나 시련을 겪은 후,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전 수준을 넘어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긍정적 심리 변화를 뜻한다.

모든 고통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아니다.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더 방어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다만 노래 속 화자는 적어도 그 고통을 성장의 방향으로 해석하려 한다. "난 이제 단단해졌다"는 말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의지이기도 하다. 완전히 괜찮지는 않지만, 그렇게 믿고 싶어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회복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니까.
 
▲ 자잘한 후회도 남기지 않았다는 말

후반부에서 화자는 작은 후회나 여운조차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깨끗한 정리처럼 들리지만, 심리적으로 보면 이 역시 복합적이다.

정말 모든 후회가 사라졌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후회를 더 이상 후회로 부르지 않겠다는 선언일 가능성이 있다.

사람은 과거를 지울 수 없다. 특히 깊이 사랑했던 경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기억과 맺는 관계가 달라질 뿐이다. 처음에는 그 기억이 나를 찌른다.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내 안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여운이 없다는 말은 기억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기억이 더이상 나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는 뜻이다.
 
▲ 나보다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고백

이 노래에서 가장 애착적으로 강한 가사는 자신보다 더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고백이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건 인간의 큰 능력이지만, 사랑 안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건 다른 문제다. 불안 애착 성향이 강할 경우 사랑 안에서 상대의 반응에 크게 흔들린다. 사랑을 잃는 게 곧 나 자신을 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자도 한때는 그랬을 가능성이 있다. 상대는 삶의 중심축이었고, 이별은 오래도 아팠을 테다. 중요한 건 화자가 그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를 붙잡지도, 자신을 비난하지도, 그 사랑을 병으로 규정하지도 않는다.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불안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안정적으로 이별을 통합해가는 노래가 된다.

화자를 전형적인 불안형 애착 유형으로 보긴 어렵다. 불안형 이별 노래라면 보통 더 매달리고, 원망하고, 확인받고 싶어하고, 관계의 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강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안정적이었던 사람도 아니다. 상처, 불안, 결핍, 불안정한 관계 경험을 지나왔지만, 그것을 성찰하고 해석하고 자기 삶 안에 통합하면서 안정형에 가까워진 사람이다.

한때 화자는 불안하게 사랑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를 악마로 만들지 않는다. 상처를 의미 없는 낭비로 만들지 않는다. 그게 이 화자의 성숙함이다.
 
▲ 가장 큰 폭풍이라는 표현의 심리

후반부에서 화자는 상대를 '자신에게 불어온 가장 큰 폭풍'으로 비유한다. 이 노래 전체에서 가장 강한 이미지다.

화자는 그 폭풍을 저주하지 않는다. 그 폭풍과 비바람을 지나왔기 때문에 다가올 눈보라도 다르게 느낄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감정의 기준점이 바뀐 것이다.

반복되는 말은 자기암시다. 노래의 끝으로 갈수록 처음의 문장이 다시 반복된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 계속 돌아온다.

반복은 노래의 구조이기도 하지만 심리적 장치이기도 하다. 처음의 운은 방어처럼, 중간의 운은 해석처럼, 마지막의 운은 수용처럼 들린다.

같은 말이지만 위치가 달라지면서 의미가 바뀐다. 처음에는 아픔을 줄이기 위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중간에는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마지막에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위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이 반복이 듣는 사람을 건드린다. 우리도 각자의 상처 앞에서 비슷한 문장을 반복해봤기 때문이다.
 
▲ 노래 전체를 뒤집는 마지막 고백

마지막에 화자는 "넌 내게 전부였지"라고 인정한다. 이 한마디 때문에 노래 전체가 다시 해석된다. 

앞에서 사랑을 작게 말했던 것, 이별을 쉬운 일처럼 말했던 것, 후회가 없다고 말했던 것들이 모두 완전한 사실이라기보다 회복의 과정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별것 아닌 사람이 아니었다. 사랑은 작지 않았고, 이별도 가볍지 않았다. 화자는 끝내 인정한다. 너는 내게 전부였다고.

이 고백은 미련과 다르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도, 상대를 붙잡는 말도 아니다. 가장 성숙한 형태의 인정이다. 

사랑이 끝났다고 그 사랑의 크기까지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니고, 헤어졌다고 상대를 하찮게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팠다고 그 시간을 전부 불행으로만 기록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화자는 그 사랑을 축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사랑에 잡아먹히지도 않는다. 그냥 인정한다. 
 
▲ 이 노래가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

이 노래의 심리적 코드는 이별의 슬픔을 넘어,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다. 너무 믿었던 나, 너무 매달렸던 나, 너무 오래 울었던 나, 상대 하나 때문에 하루가 무너졌던 나, 조금은 민망하고 가끔은 안쓰럽고 바보 같아 보이는 나. 

이 노래는 그 시절의 나를 혼내지 않는다. 대신 그만큼 사랑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과거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