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덫에 걸린 태국, 정치 불확실성이 더 옥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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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3-07-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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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산층도 빚 갚느라 헉헉…오토론·리볼빙 상환 꿈도 못 꿔

  • 피타, 도시 중산층 마음 잡은 배경 '가계부채'

  • 움츠린 기업 심리…정부 구성 속도에 경제 성장 달려

지난 7월 23일 태국 수도 방콕 시내에서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MFP 대표 지지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사진AFP 연합뉴스
지난 7월 23일 태국 수도 방콕 시내에서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MFP) 대표 지지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태국에서 자동차 100만대가 압류될 위기다. 빠듯한 생활비, 지지부진한 관광업 회복,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 회복을 억누르면서 태국인들이 가계부채의 덫에 단단히 걸렸다.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남은 돈을 생활비로 쓰고 나면, 자동차담보대출(오토론)까지 갚을 여력이 안 되는 것이다. 태국 국가신용국에 따르면 현재 오토론 연체율은 14.2%로, 가계부채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최대 100만대에 달하는 차량이 압류될 수 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다. 관광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태국 경제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2010년 GDP 대비 59.3%였던 가계부채 비율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21년 90%대를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고물가로 생활비는 치솟는데 소득은 제자리에 머물자, 벼랑 끝에 몰린 가계는 단기 고금리 대출에 손을 내밀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3분기 86.8%까지 떨어졌지만, 올해 1분기에 다시 90.6%로 뛰어오르는 등 급속도로 불어난 가계부채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문제는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정부의 손발이 묶이면서, 부채의 덫에 걸린 가계를 살릴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각종 경기 부양책과 가계부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정부 구성이 차일피일 밀린 영향이다.
 
중산층도 빚 갚느라 헉헉…오토론·리볼빙 상환은 꿈도 못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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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블룸버그통신, 타이이그재미너, 닛케이아시아 등에 따르면 태국이 부채 사이클에 갇혀 있다. 6600만명의 국민 가운데 3명 중 1명이 빚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세계 경제를 휩쓴 인플레이션 물결에 태국 역시 기준금리를 올리자, 채무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채무자들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갚느라 헉헉대면서 오토론과 무담보대출의 상환은 후순위로 밀렸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2020년 5월 0.5%까지 하락한 태국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부터 오르기 시작해 현재 8년 만에 최고 수준인 2%다.
 
16조바트(약 591조원)에 달하는 태국 가계부채 가운데 오토론은 2조6000억바트(약 16%)이다. 오토론의 연체율은 무려 14%로, 채무불이행(디폴트) 경고등이 깜빡이고 있다. 신용카드 리볼빙, 개인 신용대출 등 7조8000억바트에 달하는 무담보 대출 역시 위태위태하다.
 
무담보 대출 가운데 대부분이 리볼빙으로, 이를 이용한 다수는 중산층이지만 원금을 갚을 수 없어 부채의 덫에 갇힌 사람들이다. 리볼빙은 신용카드 결제 대금 중 일부만 결제한 후, 결제금액과 이자를 다음 달로 이월해 갚아나가는 서비스다. 전체 결제 대금을 갚을 여력이 없어, 이자 부담에도 어쩔 수 없이 상환을 계속 뒤로 미루는 것이다.
 
특히 리볼빙 대출의 경우 이자가 연 25%에 달한다. 생활비 상승세가 계속되면서 이자율 부담까지 늘어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연체율이 급증할 수 있다. 최근 로나돌 눔논다 태국중앙은행 부총재는 이러한 대출의 이자율 상한선을 연 15%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부채의 늪에 빠진 채무자를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피타, 도시 중산층 마음 잡은 배경 역시 가계부채
태국 현지 매체들은 방콕 등 주요 도시의 엘리트들이 전진당으로 마음을 돌린 주요 배경은 가계부채 문제라고 짚었다. 태국 성인의 최대 20%만이 제도권 은행을 이용할 수 있다. 기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 중소기업의 30%만이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이로 인해 태국인 대부분은 매달 원금의 10%가 넘는 이자를 요구하는 대부업체 등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도시 중산층이 전진당으로 마음을 돌린 주요 요인이 가계부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진당은 임금인상, 복지확대 등 유럽 경제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서구화된 국가 시스템을 약속했다. 가계부채로 고군분투하는 태국의 중산층 유권자들에 전진당의 공약이 어필한 것이다. 또한 전진당과 손잡은 하원 제2당 프아타이당의 공약도 중산층 유권자를 공략했다. 프아타이당은 1만바트(약 37만원) 상당의 디지털 바우처를 가계에 무상 지급하는 안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중산층의 환심을 샀다.
 
바짝 움츠린 기업 심리…정부 구성 속도에 경제 성장 달려 
정부 구성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점은 악영향이다. 총선이 치러진 지 두 달이 넘도록 태국은 새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정당과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들이 민주화를 상징하는 피타 림짜른랏 전진당(MFP) 대표의 총리 도전을 좌절시키면서 태국의 차기 정부 구성은 안갯속이다.
 
지난 2014년 쿠데타로 9년간 태국을 통치해 온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이끄는 과도정부는 정책을 통과시키거나 정부 지출을 승인할 수 있는 권한이 제한돼 있다. 정부 구성이 3분기 이후로 연기되거나 연말 또는 내년까지 계속 미뤄지면 공공 부문 투자는 물론이고 민간 부문 프로젝트 다수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정치적 불안 요인이 가시지 않으면 태국에 대한 신규 투자가 줄어,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에 투자를 빼앗길 수 있다.
 
기업 심리는 움츠러들었다. 태국산업협회(FTI)가 1300개가 넘는 자국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3개월간의 경기를 전망하는 산업경기지수는 6월 102.1로, 전월 104.3 대비 2.2포인트 하락했다. 3개월 연속 하락으로, 정치적 불확실성, 가뭄, 세계 경기 둔화 등이 기업 심리를 압박했다.

끄랭끄라이 띠안누꾼 FTI 회장은 “새 정부 구성이 장기간 지연되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제를 다룰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다면 가뭄 등을 포함한 부정적인 요인이 미치는 영향은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가 8월 안에 구성된다면 경제가 올해 3~3.5%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타나왓 폴비차이 UTCC 경제비지니스예측센터 센터장은 올해 10월까지 정부가 구성되지 않는다면 태국 경제가 2.5~3% 성장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정부가 빨리 구성되면 태국 경제가 3.6~4%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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