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반도체 착시와 AI 붐에 가려진 한국 전통 제조업의 위기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지난 2분기 성장률이 0.6%에 달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현재 추세라면 올해 성장이 3%대 후반에 달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마저 나온다. 수출도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상반기 수출액이 5,000억 달러에 육박(48.4%), 연간으로는 1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수출 4대 강국 고지까지 넘본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내수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오랜만에 균형 성장의 틀을 만들고 있다. 나라 밖에선 여전히 두 개의 전쟁이 진행 중인데다 지구촌이 고유가·고환율·고물가로 인한 인플레 위협이 확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선방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 정도 되면 호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온기는 매우 제한적이다. 수출과 설비투자는 반도체 등 일부 제조업에 편중되고, 내수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 업종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는 경기 양극화도 뚜렷하다.
 
지금 한국 경제에 드리워진 구름은 반도체 착시다. 부분적인 현상에 집착하여 전체적인 맥락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간과하는 이른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고 있지나 않은지에 대한 우려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반도체나 인공지능(AI)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점진적으로 전통 제조업이 쇠퇴해 가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자동차·기계·화학·조선 등 한국 제조업의 근간이자 기업의 공급사슬 혹은 고용 창출에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는 뿌리산업의 기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기술력, 가성비, 공급 능력 등 삼박자를 갖춘 이웃 중국의 전방위적 공세에 경쟁력이 계속 뒷걸음질을 한다.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대만이나 중국에도 나타나는 공통적 징후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차시장에 중국차의 급습이 예상을 추월하여 시장의 교란이 두드러진다. 중국 전기차 굴기가 내수 시장을 뛰어넘어 세계 시장으로 밀려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 시장은 그들의 입맛에 딱 떨어진다. 중국차의 공습에 전통적 자동차 강국인 일본이나 유럽 시장도 휘청거리고 있지만, 한국 시장에서의 침투 속도가 이들보다 훨씬 빠르다는 데에 문제가 심각하다. 작년 한국에서 팔린 전기차 중 중국산이 무려 7.5만 대 수준(약 34% 점유)에 달했다. 여기에는 순수 중국 토종 브랜드(BYD 등)에다 테슬라 등 중국에서 생산된 외국 브랜드(고급 차종)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추세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한국 차 시장이 ‘메이드 인 차이나’차에 포위되면서 일시에 무너질 수도 있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지경인데도 중국 전기차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의외로 소극적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경쟁국들은 중국산에 대비하기 위해 관세 인상이나 보조금 지원 등으로 보호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전략지원 산업에서 전기차가 빠져있다. 한국의 기본 관세율 8%를 적용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102.5%, EU는 기본 관세에 17~35.3 %의 상계관세를 더해 최대 45.3% 수준까지 부과한다. 유럽 자동차의 상징과도 같은 독일 폭스바겐이 위기에 전면 노출되면서 10만 명 감원이라는 초강수를 들고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강한 기업이라도 무너지는 것인 삽시간이며, 결국 이는 공장 폐쇄와 인력 감축이라는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으면 공멸하기 마련이다.
 
10년 내 전통 제조업 1/3 퇴출 위기

자동차 산업은 한국 제조업의 자존심이자 얼굴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개 부품인 반도체와 달리 산업 전후방 효과나 고용 창출이 훨씬 크다. 반도체 호황의 결과물이 편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자율주행차 보급 확대로 자동차는 이미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하는 커넥티드카로 변화하면서 기계가 아닌 전자 제품화하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부품 수요도 줄어들면서 관련 산업은 갈수록 위축하고 있다. 한편으론 제조업에서의 피지컬 AI 확산으로 소위 휴머노이드(로봇) 보급이 증가하면서 노동 블랙홀이라는 고용 불안이 노동계를 강타하고 있다. 대체 일자리가 생겨난다고 하지만 기존 제조 라인의 공장자동화로 인한 로봇 대체는 제조업의 숙명이자 불가피한 현실이다.

대전환의 시기에 기업은 물론이고 노동계도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성장이 높아져도 고용이 감소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대세를 역행하면 기업은 생존이 위태해지고, 노동자는 없어지는 일자리를 놓고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기업은 AI 도입으로 화이트든 블루든 인력을 과감하게 줄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이라면 강성 노조도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만 고집할 여유가 사라진다. 산업계에서는 벌써 60년간 유지해 온 시급제를 폐지하고 완전 월급제로의 임금체계 전환 논의를 시작했다. 공멸이 아닌 공존의 길 찾기에 나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노동계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는 제조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여하튼 노사 관계 틀의 큰 변화는 이미 예견된 시나리오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향후 10년 내 전통 제조설비의 1/3이 없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조설비 혹은 기업 세 곳 중 한 곳이 사라지는 ‘대퇴출(The Great Ext)의 기로에 들어가고 있다. 대비가 미비하거나 미숙하면 희생양이 되기에 십상이다. 제조 강국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제조업에 닥친 중대한 위기이자 다른 측면에서는 기회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한국 제조업은 중국 상품의 무차별적인 쓰나미에 총체적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외부에선 보호무역과 자원민족주의, 경제와 안보가 접목된 공급·가치 사슬의 블록화가 한창이다. 반도체 착시와 AI 전환에 지나치게 경사가 되어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에 절름발이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나 않은지 고민해봐야 한다. 기업은 발을 동동 굴리지만, 정부는 너무 안일하고 노동계는 근시안적이다. 정부·기업·노동계가 한팀이 되지 않으면 이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한국 제조업의 위기는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