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글로벌 질서 개편의 급물살에서 한국이 생존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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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교수
입력 2023-06-0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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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커플링'→'디리스킹' 변화 틈새에서 기회를 찾는 혜안 필요

[김상철 교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가 미·중 충돌을 더 부추겼다. 신(新)냉전의 도래와 이에 따른 글로벌 질서 재편 과정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현재의 구도를 G2의 패권 경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혹자는 절대강자가 없는 G0의 시대라고 깎아내린다. 러시아로서는 억울하겠지만 푸틴의 모험이 자충수가 되어 미국 반대 진영에서 중국의 입지를 더 공고히 해주는 꼴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편 가르기에 몰두하지만 이에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로 반사이익을 누리는 일련의 무리도 목격된다. 중요한 것은 질서가 급변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국가의 움직임이 시시각각으로 포착되고 있는 점이다. 누구에게는 위기이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기회가 되면서 희비가 엇갈린다.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국가가 인도와 일본이다. 인도의 부상에는 중국의 후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기회의 땅,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던 중국의 시대가 저물고 인도의 시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 확연하다. 중국을 대체하는 글로벌 공급망 허브의 꿈을 꾼다. 경제와 안보가 하나의 레일 위에서 움직이는 질서를 슬기롭게 이용할 줄 아는 융통성이 돋보인다. 서방의 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산 에너지 원료를 싸게 사들인다. 안보에는 미국 편을 들면서 중국 견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2021년 9.1%, 2022년 6.8%, 올해에도 6%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여 이미 속도에서 중국을 추월하는 중이다.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 G7 회의에도 인도는 초청국 자격으로 모디 총리가 참가했다.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 효과 지연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로 투자를 늘린다. 최근 한국, 대만, 일본, 인도 등의 증시가 불붙고 있는 이유도 중국 경기 회복 속도가 더디기 때문이다. 특히 큰손들은 인도와 일본을 찾는다. 일본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포지션을 재구축하겠다는 저의가 노골적이다. 잃어버린 반도체 산업의 뿌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반도체 공급망에서 장비 부문의 강점을 활용하여 첨단 반도체 부문 공급망에서 한 축을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이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대만과 한국에 과다하게 의존하기보다 일본으로의 분산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 미국도 일본 편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脫중국만이 아닌 脫대만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소 냉전의 최대 수혜자인 일본이 미·중 갈등을 기회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한편 상당수 국가가 미국과 중국을 사이에 두고 줄을 서는 시늉을 하면서도 어디에 자국의 이익이 있는지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시 좌파 정권이 속속 들어선 남미 국가들은 미국보다 코드가 맞는 중국에 밀착한다. 반면 대부분 아시아 국가(중국과 가까운 미얀마·캄보디아·라오스 등은 제외)들은 미국 편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14개국이 미국 주도의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에 참여, 중국 배제 공급망 협정에 타결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공급망 훼손 위협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의미지만 속내를 보면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동참 국가를 대폭 늘렸다. 유럽 국가들은 안보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에 동조하고 있지만 경제적 이익을 놓고 미묘하게 엇갈린다. 독일과 프랑스가 독자적인 행동을 하려는 저의를 나타내 협력에 찬물을 끼얹는다. 중국은 이러한 분열을 호시탐탐 노린다.
 

핵심 기술에서 중국 등 추격자와의 간격 벌리면서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올라서야
 
이러한 미묘한 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 G7 회의에서 선을 보인 키워드가 ‘디커플링(De-coupling, 脫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De-risking, 위험 제거)’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변화라는 주장이 있지만, 무엇이 바뀌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중국과의 완전한 결별이 아닌 중국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노선의 선회로 보이기도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중국 측은 단순 수사적 변화에 불과하다고 과소평가하는 기류다. 사실 중국과의 큰판 싸움을 벌이기 위해 동맹을 규합해야 하는 미국의 처지에서 보면 동맹국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동행만을 고집할 수 없다. 중국 압박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관계 단절에 따른 피해가 크다는 동맹의 지적을 일부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바이든 정권에게 다음 대선(大選)이 코앞으로 다가온다. 재집권을 위해서는 중국 압박에 동참하는 동맹의 이탈을 방지하면서, 미국의 재기(再起)를 성공적으로 몰고 가야 한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 냉각으로 인한 미국 민간 빅테크의 불만을 최대한 잠재울 필요성도 있어 보인다. 바이든의 재집권을 가정할 때 집권 기간 중 중국의 GNI(국민총소득)가 미국을 추월하는 것을 절대 용인할 수 없으므로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근자에 표면적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중국 쪽에서 먼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정세가 불리하면 자세를 낮추면서 대화를 요청하는 전형적인 중국의 수법이다. 일단 해빙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모두 꼬였다. 이미 벌어진 간격이 너무 커 일시에 봉합하기가 쉽지 않다.
 
글로벌 정세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우리 정부나 기업의 움직임도 바쁘다. 이럴 때일수록 우왕좌왕하거나 전열이 흔들리면 낭패에 빠질 공산이 크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도 위기만이 아니고 기회가 열려 있다. 아직 이를 잘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적어도 2030년까지는 미·중을 필두로 주변 국가들의 합종연횡이 계속될 것이며, 디커플링보다 디리스킹이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이너서클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들이 대폭 늘어날 조짐이다. 인도와 동남아는 불이 붙었고, 심지어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들어올 채비를 한다. 미국의 대중(對中) 수입 비율이 20%P 낮아지고, EU 기업의 23%가 對中 투자 철회를 검토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핵심 기술에서 중국 등 추격자와의 간격을 넓히면서 공급망의 중심에 자리를 잡는 길이다. 탈세계화가 아닌 생존을 위한 세계화의 재편이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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