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중국에 이어 일본에까지 '속도'에 밀리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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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교수
입력 2023-05-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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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교수]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시기로 평가된다. 외부에서도 인정하는 ‘한강의 기적’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경제가 잘나가던 시절 우리 혀끝에 붙어 다니던 단어가 ‘빨리빨리’였다. 속도에서 우리를 능가하는 국가는 없었다. 소위 말하는 앞만 보고 무한 질주하는 ‘빠른 추격자’의 대표주자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이웃 일본이 우리를 한 수 아래라고 얕잡아보면서도 뭐든지 단시간에 거뜬히 해치우는 한국인의 저력에 기가 죽을 정도였다. 중동이나 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 가면 한국 상품, 한국인이 넘쳐났다. 이 저변에는 치열한 기업가 정신의 바탕 위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직업의식이 발동했다. 그들에겐 그것이 식솔은 물론이고 후손, 그리고 국가를 위한 애국(愛國)임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가 성장 속도가 급속히 둔화하면서 내부에 숨겨진 뇌관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압축성장에 따른 격차와 이로 말미암은 계층 분화가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성장 여력이 생겨나지 않으면서 가진 파이를 서로 차지하려는 제로섬 게임이 극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의 고갈이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고 경쟁력이 후퇴하면서 갈수록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국인의 장기인 속도가 떨어지니 앞이 캄캄해진다. 이제 양(量)이 아닌 질(質)의 시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시기인데 발목이 잡혀있는 형국이다. 성숙한 선진국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진입 문턱에서 허들을 넘지 못하는 ‘선진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가 틀리지 않는다.
 
속도에서 뒤져 국가가 정점(頂點)에서 내려오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가 일본이다. 30년 이상을 잃어버렸다는 냉혹한 평가를 달고 있다. 아날로그 대국, 한때 세계 경제를 호령하던 일본이 디지털화를 거부하면서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국가는 물론이고 개개인에게 이르기까지 대다수가 한결같이 변화를 거부하다 보니 위기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 뒤늦게 디지털화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지만 오랜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 한국에 이어 중국에까지 뒤지는 분야가 속출하고 있고, 급기야는 주변국에 팔을 벌리는 지경으로까지 내몰렸다. 한국과 대만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반도체 혹은 에너지 부문에 협력을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예전 같으면 상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속도 면에서 현재 글로벌 선두주자는 중국이고 압도적 우위이다. ‘중국 속도(China Speed)’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을 뛰어넘은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한·중·일 산업 관계도 상호 보완적에서 경쟁적으로 바뀐 지 10여 년이 지났다. 시너지효과는 사라지고 곳곳에서 부딪기만 한다. 갈수록 중국의 위세에 한국과 일본이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친(親)환경차·AI·양자 컴퓨터·에너지·인공위성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빠른 추격자가 아닌 우월적 선도자를 추월해 게임체인저의 반열에 올라섰다. 미국과 미래 기술 패권을 겨룰 정도로 발전하였지만, 한국·일본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의 주변국으로 내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차를 앞세운 중국이 자동차에서도 일본과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수출국으로 등극했다. 후진국만이 아닌 유럽 수출 비중이 20%나 되는 위협적인 존재로 변신했다.
 

최근 둔화하고 있는 중국의 속도, 글로벌 질서 재편 과정에서 가속 페달 밟는 일본
 

왜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낙관론보다 비관론이 많아지나. 수출에서 반도체나 중국 시장, 그리고 소프트파워인 한류로 버텨보고 있지만, 한계가 여실히 노출되고 있다. 특히 중국식 파죽지세에 판이 크게 흔들린다. 일본에 대한 과거사 문제 극복에 선행하여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처를 더는 미룰 수는 없는 지경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너 죽고 나 살기와 같은 극단적인 방식보다는 둘 다 유익한 선의의 경쟁이다. 상대의 노골적이고 치졸한 공세에 대해 흥분하면 일을 그르칠 공산이 크다.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것은 속도의 회복이다. 덩치가 큰 중국보다 몸통이 작은 우리가 더 날렵해질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면에서 중국보다 앞서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데에 특화하여 스피드를 올려야 한다. 초격차는 말과 의지로 되는 것이 구체적인 실천 전략이 따라야 한다.
 
하늘이라도 찌를 것 같은 중국의 속도에 최근 제동이 걸리고 있다. 3년이나 지속된 팬데믹이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한풀 꺾이게 한다. 연초부터 본격적인 경제활동 재개에 돌입하고 있지만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진핑 3기 출범을 위해 둔 무리수가 만든 후유증이다. 국진민퇴(國進民退), 즉 퇴출 대상인 국영기업은 득세하고, 경제의 근간인 민간 기업의 활동 위축이 계속된다. 이로 인해 중국의 창업 열기도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는 분위기다. 미국의 집요한 중국 때리기도 약발이 먹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0%가 아닌 70~80%의 경제 상황이다. 중국 경제의 향방을 가늠자 역할을 하는 위안화가 약세도 돌아서 마지노선인 ‘포치(破七·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 이하로 내려가는 것)’마저 뚫렸다. 적신호가 더 오래 켜질 수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대조적으로 일본 경제가 모처럼 생기를 찾고 있다. 반도체 강국 자리를 한국과 대만에 내준 일본이 미국을 등에 업고 다시 공급망의 주축으로 끼어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중국 혹은 북한과 긴장 관계에 있는 대만이나 한국의 틈새를 파고드는 반도체 전략을 2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신(新)냉전이라는 글로벌 질서 재편 과정에서 일본이 역할을 찾아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손을 잡고 양자컴 등에서 기술 패권 일원이 되고 있을 정도다. 모처럼 일본 경제에 순풍이 분다. 탈(脫)중국 호재에 증시 활황에다 내수가 살아나고 수출마저 부진에서 반전되는 기미다. 추락한 경제가 기름을 붓고 가속을 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려고 분주하다. 여기서 더 밀리면 끝이라는 위기의식이 과거와 매우 다르다. 중국이나 일본에 속도에서 더 뒤처지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 속도를 되찾을 방도를 신속히 세워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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