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정부의 '보이는 손'이 인플레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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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3-02-28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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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위스가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쇼크’ 방어에 선방하는 모습이다. 스위스의 작년 물가 상승률은 3%를 소폭 상회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전 세계를 급습한 가운데 뉴욕시 규모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 스위스가 최악의 물가 폭풍을 헤쳐나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의 작년 물가 상승률은 3.5%로, 2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스위스 자체적으로 봤을 때는 물가 상승률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이나 미국(9.1%), 영국(11.1%), 유로존(10.6%)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는 매우 낮다. 

외신은 스위스가 물가 전쟁에서 선방한 배경으로 자국 통화인 스위스 프랑 강세와 함께 스위스 정부의 강력한 가격 통제를 꼽았다. 에너지를 비롯한 상품과 서비스 전 부문에 대한 스위스 정부의 ‘보이는 손’이 날뛰는 인플레이션의 고삐를 움켜쥐었다는 것이다.
 
토마스 조던 스위스 중앙은행 총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위스의 물가 상승률이 낮은 요인으로 스위스 프랑 강세를 언급했다. 그는 “(스위스 프랑 강세가) 해외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일부 흡수했다”고 말했다. 유로화 대비 스위스 프랑 가치가 지난 2021년 저점 대비 약 13% 상승하는 등 통화 강세에 힘입어 수입품 가격이 저렴해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를 통해 외부 세계의 인플레이션을 막는 방화벽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게 조던 총재의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스위스 프랑 강세가 인플레이션 상승을 억누르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막심 보테론 크레디트스위스그룹 경제학자는 유로화 대비 스위스 프랑의 10% 가치 상승은 헤드라인 인플레이션의 0.5%포인트 하락에 그친다며 “스위스 프랑 강세는 수입 인플레이션을 제한하나, 해당 효과는 과대 평가됐다”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스위스의 인플레이션 산정 방식이 유럽연합(EU)과 다른 점도 낮은 물가 상승률의 배경이다. EU의 CPI에서 전기료와 연료 물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6.6%에 달하지만, 스위스 CPI에서의 비중은 3.4%에 불과하다. 에너지 가격 상승세가 스위스 물가 지표에는 EU보다 작게 반영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스위스 정부는 에너지 가격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스위스 에너지 공급업체의 대부분은 공공 기관이 운영하고 있어 가격 변동성에 덜 노출돼 있다. 특히 가계 전기 요금은 1년에 한 번만 바뀐다. 스위스 에너지 가격은 작년 12월에 연율 기준 16.2% 상승했다. 이는 독일(25%), 네덜란드(30%), 영국(52.3%), 이탈리아(64.7%) 등 이웃 나라들에 비해서 매우 완만한 오름세다.

화석 연료 의존도도 낮다. CNBC는 “스위스는 에너지 공급에서는 수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다른 유럽 나라들보다 석유나 가스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고 짚었다. 

스위스는 에너지 외에도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식품, 주택, 교통 등 유로존에서 인플레이션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핵심 요소 가운데 약 30%가 스위스에서는 가격 통제 대상이다. 
 
가격 통제 덕에 스위스 식품 가격은 작년 12월 기준 연율 4.0% 오르는데 그쳤다. 미국(11.9%), 영국(16.9%), 독일(19.8%) 등의 식품 가격이 급등한 점에 비하면 이 역시 방어에 성공했다.
 
스위스는 특정 농산물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우유, 치즈 등 국내 식품 업계를 보호했다. EU와 별도로 농업 체제를 운영하는 등 오랜 기간 고수한 ‘보호무역주의’가 식품 가격을 방어한 셈이다. 스위스 사람들이 비싼 자국 내 상품 가격을 피해 더 저렴한 상품을 찾아 국경을 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배경이 이제는 물가 방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이어져 온 디스인플레이션(인플레이션 둔화)으로 인해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낮은 점도 한몫했다. 알렉산드로 비 UBS 경제학자는 “(스위스) 사람들은 수십 년간 낮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기대가 다소 경직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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