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한 法, 국내 'AI 변호사' 출현 앞당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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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성 기자
입력 2023-02-2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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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미국 두낫페이(DoNotPay)의 인공지능(AI) 서비스는 미국 대법원에서 진행되는 재판에 참여를 검토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대화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당 AI는 간단한 주차위반 딱지 취소에 대한 조언에서 이혼 합의서 작성 등을 보조할 정도로 높은 범용성을 갖추고 있다. ‘챗GPT’에 사용되는 GPT-3.5 직전 엔진인 GPT-3를 2020년 도입한 이후 해당 AI는 다양한 판례를 학습하면서 비약적으로 서비스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 미국 ‘리걸테크(법률 정보기술)’ 기업인 렉시온(Lexion)은 지난해 말 법률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설명 기능을 제공하는 ‘AI 계약 도우미(AI Contract Assistant)’를 시장에 내놓았다. 해당 AI 역시 GPT-3를 도입해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문적인 법률 용어로 계약서 초안 작성과 조건 검토, 요약 기능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챗GPT’처럼 자연어 처리가 가능한 AI가 국내 법률시장에도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영국 등 주요 리걸테크 선진국은 간단한 재판 업무 보조가 가능한 수준인 언어모델 AI를 속속 내놓고 있다. 리걸테크 기술의 핵심인 방대한 빅데이터, 즉 ‘판결문’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판결문 공개에 소극적이던 우리 법원 역시 최근 AI 기술에 힘입어 민사·행정 소송 분야 미확정 판결문에 대한 공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국내 로펌이 도입을 목표로 하는 고도의 법률 인공지능 AI 출현 시기가 더욱 앞당겨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로펌들이 자연어 처리가 가능한 언어 생성 AI 도입에 나서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은 리걸테크 부서인 ‘이노베이션커미티’에서 운영 중인 기존 RPA(로봇 프로세스 자동화)에 번역과 법적 쟁점을 확인하는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또 계악서 자동 작성 플랫폼도 올해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별도로 리걸테크팀 ‘e율촌’을 운영 중인 율촌 역시 자연어 생성 AI를 통한 한국어 법률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자체적인 기술 마련이 어려운 중소형 로펌도 외부에서 AI 솔루션을 적극 도입해 법률 서비스 확대에 나서고 있다. AI 솔루션을 개발·제공하는 인텔리콘연구소 '도큐브레인'과 법령 검색기 '리걸브레인'이 대표적이다. 도큐브레인은 빅데이터를 통한 복잡한 문서 분류와 함께 판결문 등 각종 소송 자료를 제공하는 문서분석 검색기다. 해당 기업에 따르면 대형 로펌 1곳을 포함해 현재 10곳 넘는 로펌이 이를 도입한 상태다.
 
대형 로펌 소속 AI 전문 변호사는 “최근 로펌이 추구하는 리걸테크 서비스 방향성은 자연어 처리가 가능해 자연스러우면서도 법률용어에 익숙한 전문화된 ‘AI 비서’다. 그러나 방대한 판결문을 학습시켜 상당한 수준에 이른 선진국과 달리 아직까지 국내 로펌에서는 법률 AI 서비스를 단순 자료 검색이나 계약서 번역 등 한정적인 업무에만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국내는 판결문 등 AI가 학습할 수 있는 빅데이터 양이 상대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점이 이런 차이를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례가 풍부한 하급심 판결문 데이터가 매우 중요한데 지금까지 관련 데이터가 태부족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임영익 인텔리콘연구소 대표는 “공개되는 대법원 판결문도 몇 년 전에는 공개 비중이 2~3%에 그칠 정도로 데이터 자체가 매우 적었다. 하급심은 이런 경향이 더 심했다. 판결문에는 개인정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이를 비식별화하거나 지우는 작업이 필요해서 기술적으로도 공개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법원 경향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대법원이 2018년 지능형 기계학습 솔루션을 통해 판결문 비실명 처리 자동화와 정확도를 향상하면서부터다. 이를 통해 법원은 도입 약 5년 만인 올해 1월부터 1심과 2심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의 미확정 판결문에 대해 열람·검색 서비스를 홈페이지 등에서 제공하고 있다.
 
임 대표는 “법원에서 하급심 판결문을 많이 공개하면 그 자체로 판결문을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데이터 큐레이션 사업이 활성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후 이로 인해 만들어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2차적인 응용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하다. 법원의 판결문 공개 확대는 고도화된 법률 AI 서비스 발전에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다만 공개되는 판결문 양이 아직 제한적인 만큼 판결문 공개 범위를 더욱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공개되는 하급심 판결문은 올해부터 선고되는 판결에 한해서만 제공된다. 소액사건과 형사 하급심 판결 등은 검색·열람에서 제외된다.
 
임 대표는 “현재는 판결문 중 개인정보를 자동으로 비식별화하는 기술 완성도는 아직 80% 수준에 그치고 있다. 향후 95% 이상까지 비식별화가 자동으로 가능해지면 공개될 수 있는 판결문 내용과 범위도 증가할 수 있어 법률 AI 개발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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