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 힘대결에 10년 만에 출범'...RCEP, 내년 1월 1일 발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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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원 기자
입력 2021-11-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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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총 15개국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알셉)이 내년 1월 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발효된다. 

지난 2일 림 족 호이 아세안 사무총장은 "참여국들이 신속하게 비준 작업을 끝낸 것은 역내 및 전 세계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고 개방적인 다자간 무역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라며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되는 RCEP은 코로나19 이후 경제회복에 엄청난 힘을 실어줄 것"이라며 이와 같은 소식을 공식화했다. 
 

제37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참가한 아세안 정상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RCEP의 출범은 2012년 첫 제안 이후 근 10년 만이다. 당시 아세안 10개국이 호주,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뉴질랜드 6개국에 이를 제안해 관련 논의가 시작됐다. 이후 무려 7년 동안의 표류 끝에 협상국들은 2019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3차 RCEP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며 실질적인 협상을 종료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국의 자국 내수시장 침범을 우려한 인도가 빠지며 최종적으론 15개 회원국이 지난해 11월 RCEP 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RCEP 참여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32%에 해당하는 26조2000억 달러(약 3986조7400억원), 교역량은 전 세계 29%를 차지하는 5조6000억 달러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도 뛰어넘는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국 탈퇴 후 일본 주도로 협상이 이루어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재탄생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참여국들의 GDP가 10조2000억 달러(세계 GDP의 14%) 규모인 것을 고려할 때 2배 이상 크기다. 한국은 RCEP을 통해 일본과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다. 한·중·일 3국이 하나의 FTA로 묶이는 것 역시 처음이다. 
 
RCEP, 미·중 무역 힘대결에 힘겨웠던 출범
미국 행정부는 RCEP에 앞서 TPP를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무역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지난 2005년 브루나이, 칠레, 뉴질랜드, 싱가포르가 구성한 환태평양 지역의 소규모 무역협정에 2008년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가입 의사를 보이며 참가국들은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싱가포르 등 12개국으로 늘어났다. 이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TPP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중심축으로 삼으며 참가국들은 2015년 10월 합의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7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첫날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며 TPP에서 탈퇴했다. 미국 외교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는 트럼프를 비롯한 반대론자들이 이러한 거래가 미국의 제조업 쇠퇴를 가속화하고, 임금을 낮추며,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여겼다고 설명했다. 이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주도로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11개국들이 CPTPP를 만들었지만,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가입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 두었다.

트럼프가 TPP를 탈퇴하며 미국 주도의 국제 무역질서 구축이 표류한 가운데, RCEP이 이 자리를 빠르게 파고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무역 갈등에 직면한 중국은 '다자주의'를 내세워 국제 무역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선점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RCEP 협정의 성과를 치켜세우며 자국이 다자주의 체제와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020년 11월 15일 화상 방식으로 진행된 제4차 RCEP 정상회의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RCEP 협정안의 타결은 동아시아 역내 협력의 기념비적 성과일 뿐만 아니라,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향후 아세안 국가들이 역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국이 계속해서 지원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신화통신은 RCEP은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세계경제가 무역과 투자 위축, 보호무역주의와 일방주의 확대로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는 시기에 타결되었다고 자평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역시 연일 다자주의 체제를 강조하는 발언을 공개하고 있다. 시 주석은 올해 1월 25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개막 연설에서 다자주의를 10차례나 언급하면서 “다자주의라는 이름으로 일방주의를 행해서는 안 되며, 냉전적 사고방식을 피하고 내정 간섭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자주의와 각국의 이익을 앞세워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우군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됐다.
 

RCEP 개요 [그래픽=아주경제DB]

 
미·중 국제무역 2차전, CPTPP로 
올해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뒤늦게 CPTPP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전 행정부의 일방적인 TPP 탈퇴 결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영향력 축소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RCEP에 이어 CPTPP 가입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대만이 미국과 일본 등의 지지에 힘을 얻어 CPTPP 독자 가입을 추진하려 하자 서둘러 가입 신청서를 낸 것이다. 

지난 1월 29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평화연구소(USIP)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 참여해 중국을 겨냥해서 자국을 중심으로 한 인도·태평양 경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과정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비공식 안보협력체인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와 경제공동체인 CPTPP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과거 2019년 7월 30일 CFR와의 인터뷰에서 "무역에 있어서 규칙을 세우는 것은 미국 아니면 중국"이라며 "TPP에서 물러난 후 중국을 운전석에 앉힌 건 국가 안보나 노동자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대중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 9월 15일 미국·영국·호주의 군사·안보 협의체인 오커스(AUKUS)가 발족하자, 중국은 다음 날인 16일 CPTP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를 두고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9월 17일 "(중국의) CPTPP 가입 신청이 중국의 발전을 제한하고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노력에도 국제 자유무역을 향한 중국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다만 중국의 CPTPP 가입을 놓고 회원국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올해 의장국인 일본은 대만의 가입을 지지한 반면, 친(親)중국 성향이 짙은 동남아 국가들은 거대한 규모의 시장을 보유한 중국의 가입을 반기는 모양새다. 

향후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이달 12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양자 (화상) 정상회담 등의 자리에서 CPTPP 가입을 놓고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APEC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견제를 위해 CPTPP 복귀를 선언할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미국상공회의소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뉴질랜드 지부는 공동성명을 통해 바이든이 APEC 회의에서 CPTPP 복귀를 선언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며,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 역시 지난 8일 어떤 형태로든 미국이 CPTPP에 가입해야 한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선제적인 전략을 촉구했다. 

올 연말 1단계 무역합의 이행평가를 앞두고 열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의 양자 정상회담 역시 이목을 끌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정상이 직접 양국의 협력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목적에서 이를 제안한 가운데, 중국의 무역합의 이행 정도와 양국 교역 정상화를 놓고 관련 발언이 나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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