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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주도해온 다자 통상협력이 흔들리면서 한국과 일본 간 양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필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양국이 공통적으로 겪는 성장 정체를 극복하고 첨단 산업 협력과 수출 다변화를 모색할 대안으로 한·일 FTA가 거론되는 것이다.
28일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6024달러로 추정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3만6132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경제는 2016년 이후 1인당 GDP가 3만 달러대에 머물며 정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총수출과 제조업 생산성도 부진하다. 지난해 수출은 전년보다 8.2% 증가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사실상 보합세에 머물렀다. 제조업 노동생산성지수는 올해 1분기 5.1% 증가했으나 부가가치 증가율은 0.4%에 그쳐 실질 개선 효과가 미미했다.
일본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22년 한국에 1인당 GDP에서 역전당한 뒤 3년 연속 격차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한·일 양국 모두 가입해있지만 시장 개방 수준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는 한국이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IPEF의 향방이 불투명해지면서 다자 틀보다는 양자 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일 FTA가 단순한 관세 인하를 넘어 첨단 산업 협력과 수출시장 재편을 위한 전략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이 수입하는 일본산 품목의 상당수는 소재·장비·중간재로 국내 제조업 경쟁력 유지에 필수적이다. 과거 수직적 분업 구조에서 최근 이차전지, 차세대 반도체, 로봇 등 첨단 산업분야 공동 개발과 연구개발(R&D) 협력이 늘어나며 양국 간 수평적 공급망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일본 요코하마시에 R&D센터를 설립하고 SK하이닉스가 일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과 협력하는 등 반도체 분야 협력이 대표적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CPTPP도 좋지만 유럽연합(EU)처럼 포괄적인 한일 경제통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한·일 FTA를 단순한 무역 협정이 아니라 산업 협력의 출발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RCEP은 자유무역 범위가 약 70~80%에 불과한 반면 한·일 FTA는 이를 90~95% 수준까지 확대해 산업 협력의 여지가 크다"며 "농산물 개방 등 민감 분야 부담이 큰 CPTPP에 앞서 한·일 FTA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CPTPP는 멕시코 등에 대한 추가 시장 진출 기회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지만 한국이 보호해야 할 산업이 있는 만큼 시기상 먼저 체결돼야 할 협정은 한·일 FTA"라며 "장기적으로는 단순 FTA를 넘어 산업 협력을 중심으로 한 경제 공동체 모델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협력이 기대되는 산업 분야로는 △전기차 △철강 △반도체 △조선 등이 꼽힌다. 허 교수는 "이들 산업은 현재 미국 내 투자 확대가 논의되는 분야"이라며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협력하고 공급망을 구축할 경우 대미 투자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이 커진 통상 환경도 한·일 FTA 추진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허 교수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한국의 총수출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일 수출 확대를 통한 수출 다변화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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