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독일의 '산업 4.0' 10년이 한국경제에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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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1-11-1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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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독일의 4차산업혁명이 전반전 10년을 마쳤다. 이 혁명은 2011년 하노버박람회에서 메르켈 총리가 2명의 공학자와 1명의 고위공무원의 제안을 바로 개막사에서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느덧 “인두스트리 4.0”은 전 세계적으로 “킨더가르텐”이나 “아우토반”처럼 독일어의 “수출히트상품”이 되었다. 2011년이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였다. 독일은 제조업 강국으로서 이 위기를 가장 무난하게 통과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었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삭감의 결합’이라는 노사타협으로 실업자가 증가하지 않은 나라, 또는 일자리 120만개를 보존한 나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는 “독일의 고용기적”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다. 그렇지만 독일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제조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산업4.0”을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성공적인 극복에도 불구하고 중국 등 동아시아의 도전을 심각하게 인식했던 것이다.

독일에서 4차산업혁명은 한창 진행형이다. 지난 10년 동안 독일 기업의 62%가 “산업4.0”을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 정보통신연방협회 비트콤(Bitkom) 사무총장 베른하르트 로레더는 “산업4.0은 보다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가치사슬을 구성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제공하며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평가했다. 독일 기업의 95%는 산업4.0을 사업을 위한 기회로 간주한다. 독일 오토메이션 프락시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가 “산업4.0”에 의해 독일의 국제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렇지만 4차산업혁명의 현실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하다. 비트콤은 4차산업혁명의 발명국 독일이 4차산업혁명에서 뒤처질 우려가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산업4.0”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정작 독일 기업의 2/3는 스스로 지각하거나 이미 뒤처졌다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재원 부족(77%)이다. 다음으로 정보보호와 정보기술보안 요구에 따른 부담(61%), 전문인력 부족(57%)으로 나타났다. 로레더 사무총장은 “제조업은 독일경제의 심장이니 박동수를 높여야”하므로 “차기 연방정부가 산업4.0과 디지털 전환을 보다 빨리 진척”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나아가 로레더는 “산업4.0은 제조업을 넘어서 모바일, 보건, 기후 및 에너지와 같은 다른 분야에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향요인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생산공정이 변하면 노동의 내용과 양도 변하기 때문에 “산업4.0”이 “노동4.0”을 동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노동4.0”의 목표는 “디지털화된 노동사회”, 즉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로봇이 널리 보급되어도 사람이 수행할 일(자리)은 여전히 충분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금속노조 이사인 콘스탄체 쿠르츠 박사도 “생산노동4.0은 보다 건강하고 숙련을 높이며 자기결정권을 강화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디지털화와 자동화가 노동에 가져다주는 기회를 낙관하고 있다. 노조가 이처럼 낙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산업4.0”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데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노동4.0”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가장 전면에 부각된다. 생산과정의 지능형 자동화와 더불어 좋은 일자리는 노동자의 자율성, 자기결정권을 확대하는 일자리이다. 여기에서 창안된 개념이 “시간주권”이다. 노동자가 노동시간과 장소에 대해 유연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시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노동자가 노동시간의 길이를 스스로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사용자의 해고의 자유’로 이해되는 데 반해(외부 유연성), 독일에서 유연성은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처럼 고용안정을 위한 노동시간의 탄력적인 운용을 의미한다(내부 유연성). “시간주권”은 이 유연성을 위기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경제상황에서도 노동자가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의 실제 평균 노동시간은 41시간이지만 금속노조는 1980년대초 주35시간이 합의된 이후 금년부터는 주4일제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정해진 노동시간을 가령 일주일 단위로 배분할 때 무슨 요일에, 어떤 시간대에 배분할지를 결정할 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을 출근해서 할지, 재택근무 할지를 결정하는 데 노동자의 의사가 적극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과 노동시장의 변화는 독일 사회국가에도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면서 “사회국가 4.0”이 논의되고 있다. 급증하는 플랫폼 노동이 지금 당장 사회국가 재원 감소에 대응할 새로운 재원의 발굴을 요구하면서 로봇세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울러 이미 1980년대부터 논란이 되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은 그것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노동압박인지, 노동해방인지에 따라 이념적으로 좌우가 엇갈리면서 다소 혼란스럽게 논란이 되고 있다. 공동결정제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개혁방향을 둘러싸고 노사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독일의 4차산업혁명은 모든 현안에 대해 노사정연은 물론 시민단체까지 참여하면서 “산업4.0”, “노동4.0”, “사회국가4.0”을 축으로 궁극적으로는 “독일4.0”(콜만/슈미트)을 지향하는 총력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기업의 경계를 초월해서 산업생산을 디지털로 연결한다”는 “산업4.0”의 목표가 재벌 중심의 경제가 고착, 확산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현실에도 적합할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카르텔 체제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전범이었다는 독일의 뼈저린 역사적 경험과, 재벌체제가 경제성장의 기관차였다는 한국의 경험이 양립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아울러 4차산업혁명에서도 사회적 시장경제의 “인간 중심”의 가치가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도 한국경제의 수출 주도, 기업 중심의 경제철학에 부합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대유행의 출구(?)에서 4차산업혁명 10년을 바라보는 한국에 주는 뚜렷한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독일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직후부터 4차산업혁명으로 ‘재도약을 위한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듯이, 한국도 작금의 화려한 수출실적과 열광적인 K시리즈에 도취되기보다는 ‘탄소중립 2050’의 도전이 거세지고 효율보다 안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공급망의 ‘내재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대전환’의 국면을 헤쳐나갈 전략을 모색할 때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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