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엔 없는 '제3자 명예훼손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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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윤혜원 수습기자
입력 2021-10-1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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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자 명예훼손의 그림자 中

최근 사회를 뒤흔든 사건 중 상당 부분은 시민단체의 고발로 시작됐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러나지 않았던 고위공직자의 비리나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서 수사하기 어려운 사건들 중 일부는 시민단체의 폭로를 통해 세상 밖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면에는 피해를 받은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한, 이른바 '묻지마 고발'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최근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 됐다. 특히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고발은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마저 흔들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제3자의 고발, 그중에서도 명예훼손 고발의 문제점을 세 차례에 걸쳐 되짚어 본다. [편집자주]


 

각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 [사진=형사정책연구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윤해성·김재현]

타인이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고발하는 이른바 '제3자 명예훼손 고발'은 해외에선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 각국에서는 명예훼손죄를 우리나라와 같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친고죄'로 두고 있다.

애초 제3자가 타인의 명예훼손을 대신해 고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친고죄는 피해자 본인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이 가능한 죄를 뜻한다. 또 해외에선 본인이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를 하더라도 처벌로 이어지기 어렵다. 독일·스위스·일본 등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진실한 사실'일 경우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는 2015년 11월 6일 각각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 폐지를 권고했다. 사건의 피해자들이 사실을 폭로하더라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바꾸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올 초 이에 대해 재판관 5(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제3자 명예훼손 고발을 두고 우리나라와 해외에서 발생하는 차이점,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미국, 애초에 민사사건으로 봐··· 일본, 사실 입증 ‘위법성 조각 사유’

대부분의 국가는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두고 있다. 이에 제3자가 타인을 대신해 명예훼손죄를 고발할 수 없고, 본인이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을 한 내용이 '진실'일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실을 적시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명예훼손을 애초 형사사건으로 다루지 않을뿐더러 본인이 고소하지 않는다면 사건이 진행되지 않는다.

미국 법체계의 논리는 ‘당사자성’이다. 명예훼손은 사적 문제여서 민사 재판으로 잘잘못을 가린다는 의미다. 사실을 말하는 행위를 당사자 간 문제가 아닌 국가가 처벌할 사안이라고 인식하는 한국과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

독일에서는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만 문제가 된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만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이마저도 사실을 입증하면 대부분 처벌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경우, 형법 제307조 1항은 사실적시 명예훼손, 2항은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구분해 각각 따로 처벌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더불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형법상에 두고 있는 전 세계 2개국 중 하나다. 그러나 일본은 법을 적용하는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도 한국과는 판이하다. 그 차이의 핵심은 바로 ‘공익성’이다.

일본 형법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실과 관련되고 또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을 도모하는 것이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사실 여부를 판단해 진실하다는 것을 증명한 때에는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판단할 때 공익성을 전제로 사실인지, 아닌지를 먼저 판단한다는 뜻이다. 즉, 공익성이 있는 경우, 사실을 증명하면 ‘위법성 조각 사유’에 해당해 처벌을 면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공익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되는 구조다. 일단 한국은 사실이 진실하더라도 처벌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두고, 그 다음에야 공익성을 따진다. 문제는 공익성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국제사회도 우려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표현의 자유 위축 가능성

이런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만의 특성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으로 이어진다. 사실을 말하더라도 처벌받을 수 있으며, 공익성이 있더라도 사실에 대해 처벌 받을 가능성이 남는 상황에서 특정 사안에 대해 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단법인 오픈넷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미투 고발, 소비자 이용 후기, 상사나 권력자의 갑질 행태 폭로, 학교폭력 고발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킨다”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진실들을 은폐시켜 사회의 발전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2011년 3월, 유엔 산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ICCPR)는 2015년 11월 각각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 폐지를 권고했다.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돼 있는 게 문제”라며 “사실임을 밝히면 죄가 없음을 인정해줘야 표현의 자유가 넓어지는데, 사실임을 전제로 해놓고 공익성인지 아닌지에 따라 죄가 되는지 여부를 따지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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