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혁명 위한 교육개혁] 정치에 휘둘린 '백년대계'…10년도 못 내다본 '대학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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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조 기자
입력 2021-07-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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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질 못 건든 교육개혁의 역사

  • 정치 논리 따라 바뀌는 대학 시스템

  • 질보다 양에 치중해…"자생력 키워야"

'인력=국력'인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사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앞으로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갈 것이란 추측이 있었지만, 그보다 먼저 대학이 무너지게 생겼다. 사교육과 해외유학은 여전히 성행하고, 대선 주자들은 당대 젊은 층을 대변한다며 교육개혁을 공약으로 내놓지만 사장되거나 합의 없이 추진되기 일쑤다. 이에 본지는 총 6회 기획을 통해 교육개혁의 참의미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오늘날 흔히 쓰는 '한계대학'이란 말은 언제 생겨났을까. 분명 학령인구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 전, 라디오 등에서 홍보하는 이름이 생소한 대학이 꽤 많다고 느끼기 전에는 없었던 말이다. 대학을 필수교육과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신입생 수가 모자라 재정 위기를 겪는 대학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출산율이 점차 감소하면서 경제활동인구 고령화, 노년부양비 증가 등이 우려되기 시작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대신 자녀 1명에 대한 관심·투자 집중도가 높아지는 것은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양보다 질'이라는 인식 속에서도 대학 시스템과 제도가 더디게 변화했다는 점이다. 정권마다 내놓은 교육개혁이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늘렸다 줄였다'···숫자에만 치중한 대학 존폐

 

지난 2011년 폐쇄된 전남 강진군 성화대. [사진=연합뉴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화 이후 교육개혁의 시작은 김영삼 정부에서 1996년 단행한 '대학설립준칙주의'였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1970~1980년대 국내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인력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제가 안정기에 접어든 후에도 대졸 인력 수요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교육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5·31 교육개혁'을 추진했다.

대학 설립 요건을 완화하는 대학설립준칙주의는 이때 등장했다. 교육부가 대학 설립 계획부터 단계별로 인가하는 방식과 달리 교사·교원·교지·수익용 기본재산 등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는 제도다. 미국처럼 대학을 쉽게 설치하고 또 문 닫을 수 있게 하자는 경제논리에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대학 설립 이후 더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 기준에 미달하면 곧바로 퇴출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주장은 묻혔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신생아 수가 감소하는 추세 속에 사립대가 우후죽순 생겼고, 부실 사학이 난립할 것이란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금세 가시화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2004년 '8·31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양적 팽창한 대학 정리에 나섰다. 대학정보공시제, 국립대 통폐합과 정원 감축을 골자로 한다. 이명박 정부는 부실 사립대 퇴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했고, 박근혜 정부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기조를 이어갔다. 그렇게 3대 정권을 거치면서 대학 정원은 16만명 이상 감소했다.

목표치를 달성했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들이 '점수 따기'에 몰두하면서 볼멘소리도 나왔다. 특히 지방대는 전국 대학을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수도권, 강원·충청권, 대구·경북권, 호남·제주권, 부산·울산·경남권 등 권역을 나눠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대학 질적 성장 위한 정치권 집단지성 필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런데도 여전히 불만이 쏟아지는 것은 단순히 대학이 입는 고통과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곧 대입을 앞둔 학생에게 불안과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지역 붕괴를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우선 대학 정원은 정시-수시 전형 비중에 영향을 준다. 이 비중은 정권마다 입맛 따라, 정치적 입김을 행사하는 인물의 비위에 따라 달라졌다. 현 정부는 수시 확대 기조를 깨고 수도권 대학 정시 비중을 40%까지 늘리기로 했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수시에 무게를 두고 대입 준비를 해온 수험생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대학 자생력도 문제 요소다. 정원을 몇 년간 줄여도 한계대학 문제가 불거지는 건 대학마다 '경쟁우위'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숫자 증감에만 치중하다 보니 질적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산업 변화에 따라 정원과 시스템을 바꾸면서 인문계열 등 순수학문은 죽고, 공대·의약계열 등은 정원이 급증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최근 대학마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교육 방법·내용을 바꾸려는 시도가 확산하고 있다. 전 교육과정이 대입으로 귀결되는 고질적인 사회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학 시스템은 중·고교 수업 방식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만능형 융합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대학의 묘수가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구와 지역, 학력 중시 풍조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속 시원한 해결책은 나오기 힘들다. 정치권에서부터 집단지성이 요구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촛불고지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권이 들어서면 특정 정파와 이념을 가진 집단의 입맛에 맞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합의와 공감 없이 강행됐다"며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고, 정치적 이념 실현을 위한 수단이 돼 온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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