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빛나는 순간' 고두심 "멜로에 갈증…못할 이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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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1-07-0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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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순간' 진옥 역을 맡은 배우 고두심[사진=명필름 제공]

"제주의 풍광을 닮은 얼굴."

소준문 감독은 배우 고두심(70)의 얼굴에서 제주도 풍광을 읽었다고 말했다. 그를 영화 '빛나는 순간' 주인공을 꼭 맡겨야 하는 이유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고두심은 고향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물 공포증을 앓고 있지만, 제주도 앞바다는 잠수까지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의 양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서 제주도의 풍광과 향기가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빛나는 순간'은 인간 고두심에게도, 배우 고두심에게도 의미가 남다르다. 아름다운 제주 풍광을 담아내면서 그 안에 제주 4.3 사건의 아픔도 섬세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토록 목말라하던 통속극이라는 장르까지. 고두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경제는 영화 '빛나는 순간' 개봉을 앞두고 주연 배우인 고두심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주도와 작품에 관한 넘실거리는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고두심의 일문일답

'빛나는 순간' 진옥 역을 맡은 배우 고두심[사진=명필름 제공]


'빛나는 순간' 홍보 일정에 진심이시더라. 애정이 남달라 보인다
- '빛나는 순간'은 제주도의 정신이자 혼(魂)이라고 할 수 있는 해녀의 삶을 담고 있다. 동시에 제주 4.3 사건과 아픔을 다루면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여성의 인생도 녹여냈다. 촬영하는 시간 동안에도 정말 큰 위로를 받았다.

그 애정으로 '물 공포증'까지 이겨냈다고
- 중학교 무렵인가…바다에 휩쓸려 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물 공포증이 생겨서 바다에 들어가지 못했다. '인어공주'(2004) 촬영 때도 물 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했었는데 이번에는 '해녀' 역이라 뒷걸음질 치지 못하겠더라. 대역만 써서는 역할을 소화할 수 없었다. 죽기 살기로 찍었지. 다행히 제주도 앞바다에서 찍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해녀 삼촌들과 함께 찍는데······. 그분들이 저 하나 못 살리겠나. 하하하. 마음을 독하게 먹고 이겨낼 수 있었다.

소 감독이 고두심을 생각하며 '진옥' 역을 썼다던데
- 그렇다고 하더라. 감독님께서 '제주도 하면 고두심이고, 고두심이 제주의 풍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출연을) 거절하겠나. 하하하. 제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로맨스까지?
- 전 언제나 로맨스에 목말라하던 사람이라! 예부터 '우리나라 감독들은 다 눈이 뼜느냐'라고 했었다. 매번 엄마 역할만 주고······. 여배우지만 멜로 장르를 많이 못 해봤다. 늘 아기 키우는 엄마 역이었지. '전원일기' 이미지가 컸던 모양이다. 한이라면 한일까? 33살 차이를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라고 하는 데 파격이고 뭐고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 '나라고 통속극을 찍지 못할 게 뭐 있니?' 싶던 거지. 70살 먹도록 척박하게 살면서도 여자로서의 감정은 놓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빛나는 순간' 속) 감성을 담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진옥과 경훈의 사랑도 흔치는 않겠지만 있을 수는 있다고 여겼다.

'빛나는 순간' 진옥 역을 맡은 배우 고두심과 경훈 역의 지현우[사진=명필름 제공]


'가족의 탄생'(2006) 속 무신도 떠오르더라
- '가족의 탄생'도 '빛나는 순간'도 모두 '그럴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임했다. 물론 특별한 사랑이긴 하지. 그런 순간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연기하는 마음에서는 '그럴 수 있다'라고 중점적으로 생각했었다.

어떤 감정이 진옥과 경훈을 사랑에 이르게 한 걸까?
-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람이 '사랑'으로 다 감싼 게 아닐까 싶다. 경훈의 아픔을 읽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감싸주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서로 치유할 수 있었던 거구나…. 경훈을 보고 내 안에서 뭔가 꺼내서 그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숨을 틔운 그를 보며 진옥 역시 안도감을 느낀 것 같다. 그런 감정에서 사랑이 시작된 거 아닐까?

멜로 영화답게 키스 장면도 있었는데
-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이후 처음이지! 극 중 아들로 출연한 (김)흥수에게 뽀뽀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후로는 출연진과 흔한 신체접촉조차 없었다. 하하하.

경훈 역의 지현우는 어떤 배우였나?
- 외유내강. 겉모습이 가냘프다보니 사람 사이의 조합(케미스트리)이 좋을까 싶었는데 아니더라. 내면은 아주 강인한 데가 있다. 지켜야 할 선이 분명하고, 인물에 관한 고민 등을 몸으로 부딪쳐가며 익히더라.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남자다움을 느꼈고 믿음이 생겼다.
 

'빛나는 순간' 진옥 역을 맡은 배우 고두심[사진=명필름 제공]


영화는 로맨스뿐만 아니라 제주의 아픈 역사까지 담아내고 있다. 진옥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했는데
- 뼈 아픈 이야기지. 정치적인 문제나 역사 문제로는 잘 모른다. 다만 4.3 사건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 가까이 살고 있고 시대의 아픔을 전해 들었기 때문에 뼈에 박혀있는 거다. 극 중 경훈과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모두 즉흥 연기였다. 대본에는 간략하게 쓰여있었는데 연기를 시작하니 신들린 것처럼 (대사가) 쏟아져 나오더라. 찍고 나니 저조차도 '어떻게 해냈지?' 싶었다. 제작진들도 훌쩍이고 있고…. 당시에는 억울하게 가신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벌써 5년 전 작품이다. 최근 방송가에 '실버' 세대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졌는데
- 분명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정말 좋지. 외국에는 '실버 세대'의 로맨스도 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실버 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없었으니까. 이런 작품이 더 많이 나올 거로 생각한다.

새롭게 해보고 싶은 연기도 있을 것 같은데
- 뭐든! 하하하. 작가와 감독들이 나이 든 배우에게 꺼낼 수 있는 것들을 꺼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특히 여배우가 일찍이 '엄마' 역을 맡으며 다양한 역할에서 배제되는 것 같다. 시장이 크지 않아서 그렇지. 기존 배우들에게서도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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