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이상국의 파르헤지아] 최진석의 노자는 내로남불을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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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논설실장
입력 2021-04-1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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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간 '나홀로 읽는 도덕경'에 숨은 비수(匕首)와 한국 정치

[최진석 교수]



규제와 세금으로 아파트값 잡겠다는 헛똑똑이들

"아파트가격이 과하게 올라간다고 하면, 그것을 아파트 가격 문제로만 보거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 문제로 봅니다. 그것만 못 올라가게 제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 같은데, 국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것도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징벌적으로 세금을 부과해서 단기간에 가격을 떨어뜨리면 될 것 같지만, 가격이 떨어지지도 않고 괜히 조세의 공정성만 훼손하여 더 큰 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죠. 건설 경기가 죽어버리거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높아지는 현상들도 생기죠. 헛똑똑이들은 단순하고 과감해요."

시국과 관련한 인터뷰처럼 보이는가. 하지만 이 글은 노자 도덕경(老子 道德經)을 풀이하는 책 속에 들어있는 구절이다. 2500년전 사람의 생각을 옮겨주는 저자는 최진석 교수다.

그는 지금, 도덕경 36장의 '장욕탈지 필고여지 시위미명(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장차 빼앗고 싶으면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미명이라고 한다)를 설명하고 있다. 미명(微明)은, 쉽게 알기 어려운 미묘한 지혜라는 뜻이다. "가지려면 줘야만 한다." 이것을 최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세금을 더 많이 거두려면 경제활동의 자유를 더 줘라

"국가가 국민에게 종국적으로 얻어내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세금입니다. 그런데 이걸 얻어내려면 국민이 세금을 낼 수 있을 만큼 활동하도록 해줘야 해요. 세금을 많이 걷고 싶으면 국민에게 자유를 주고 경제적 활동을 하게 해주어야 해요. 그러면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얻는 것이 많아지고, 국민도 부유해지고 국가도 부강해질 수 있습니다. 허용하지 않고 빼앗으려고만 하면 얻을 것이 적어지죠...사회주의는 국가가 국민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지 않으니 국가 운영의 짐을 대부분 국가가 지죠. 그러면 국가는 과부하에 빠지고, 국민들로부터 얻어낼 세금도 당연히 줄어들죠. 국가가 부유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노자의 '필고여지(必固與之, 반드시 먼저 줘라)'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자 경제학의 기초가 되는 진리를 정확하게 집어내주고 있다.

저 헛똑똑이들을 말려라

최교수는 이쯤에서 도덕경 3장의 '사부지자 불감위야(使夫智者 不敢爲也)'를 인용한다. '저 헛똑똑이들로 하여금 함부로 뭔가 하지 못하도록 하라'라는 뜻이다. 노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고 했다. 작은 생선을 굽듯이 조심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智者)를 그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해석하지 않고, 스스로가 지혜롭다고 생각하거나 남이 자신을 지혜롭다고 하는 말에 우쭐해있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아까 미묘한 것들을 살필 수 있는 밝음을 지닌 사람이 진짜 지혜로운 사람인데, 이를 노자는 명자(明者)라고 했다. 이 명자와 확연히 구분하기 위해, 최교수는 지자를 헛똑똑이라고 불렀다. 이 헛똑똑이들은 지금 대한민국 현실공간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종교적이고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이념이나 신념에 빠지면 사람이 단순해져서 정책을 단선적으로 펼치고, 거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되죠. 좁다란 인식에 갇혀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단선적인 이들인지라 조심스럽지도 않고 신중하지도 않습니다. 조급하고 과감하죠. 이런 사람들이 통치를 하면 나라가 큰 일 납니다."

노자가, '헛똑똑이가 무슨 일을 벌이는 것을 막으라'고 긴박한 말투로 충고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최진석의 2021년 신간 '나홀로 읽는 도덕경'(시공사)]



나 홀로 읽는, 그리고 세상과 자기를 발견하는 책

철학자 최진석(사단법인 새말새몸짓 이사장, 함평 기본학교 교장)은 베이징대학에서 장자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20년간 주로 노장사상을 깊이 연구하며 후학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강의를 해왔으며 노자의 대한 저술도 여러 권을 낸 바 있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나 홀로 읽는 도덕경'(시공사)이란, 묘한 제목의 책을 냈다. 나 홀로 읽는? 코로나시대의 거리두기나 집콕을 염두에 둔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도덕경이 개인의 주체적인 사유를 돋우며 스스로를 살피게 하는 책이기에, 그 읽기 또한 '경전을 통해 세상을 발견하는 일에 도전하도록 독려하는' 그런 의미를 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최교수가 이 책을 내게된 데에는, 휘민이란 이름을 가진 독자와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혼자서 도덕경을 읽고 있었다. 이 독자를 만나 그가 궁금해하는 여러 가지 질문을 만났고, 최교수는 그 물음에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었다. 그 질문과 대답을 중심으로, 도덕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싶은 내용들을 덧붙여 독특한 노자 해설서가 탄생했다.

많은 이들이 도덕경을 접하지만, 이 책을 한번 훑고는 무궁무진한 의미의 결들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 채 스쳐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덕경은 그렇게 읽고 버릴 책이 아니라, 제대로 독파해 들어가야할 깊은 성채같은 고전이다.

물론 도덕경의 의미를 읽는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도덕경은 죽은 경전이 아니다. 시대를 따라 살아숨쉬는 책이다. 도덕경이 어떻게 21세기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카랑카랑한 제 목소리를 유지하는지를 스스로 느껴보면 어떨까. 생각을 채굴하고 발견을 음미하는 기회다. 이 책을 줄치며 읽노라면, 먼저 읽어간 사람의 팽팽한 시선을 행간마다 느끼게 된다.

노자사상을 포지셔닝해준 설명들

책의 묘미는 도덕경 독서와 관련한 지식의 기초체력을 다지게 해주는데 있다. 특히 신학과 철학과 사상에 관하여 동서양을 넘나들며 통찰을 제시한 대목이라든가, 공자와 노자의 사상적 차이를 뚜렷하고 설득력있게 드러내준 관점은 쏙쏙 들어온다. 이것을 이해하고 도덕경을 읽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보다 더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노자의 사유 특징을 설명한 이런 대목이다.

"공자의 사상에서는 이상으로서의 기준이 바로 예(禮)입니다. 예는 기준이니 누구나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공자도 이렇게 말한 겁니다. <예에 맞지 않으면 보지도 마라. 예에 맞지 않으면 듣지도 마라. 예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도 마라. 예에 맞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마라..> 기준을 인정하는 한, '구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구분하면 바로 이어서 배제와 억압이 진행되죠. 노자가 제일 부정적으로 본 것이 '구분'이예요. 구분이야 말로 폭력을 일으키는 주요한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구분하는 근거는 기준이고, 기준이 태어나는 토양이 본질이예요. 그러니까 폭력을 제거하려면 기준을 없애야 하고, 기준을 없애려면 본질을 부정해야 하는 거죠. 노자는 세계를 비본질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기준이 태어나는 원점을 붕괴시킵니다. 노자사상에는 해체주의적인 성격이 있어요." 이런 비교법이 도덕경에 흐르는 사상을 시원스럽게 이해하게 한다.

세상을 위한다는 정치는 부패한다

그러나 이 책이 탱탱한 탄력을 지니는 것은, 도덕경의 구절을 생생하게 설명하면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현실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칼끝으로 도려내어 보여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도덕경 13장의 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천하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줄 수 있고,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이나 아낀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의 대목에서 최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몸(身)은, 자기 자신이라는 주체적 개인을 말한다.

지지율 등락에 냉탕 온탕 오가는 정치

"천하를 위하는 사람은 부패하지만 자신을 위하는 사람은 부패하지 않습니다. 천하가 공유하는 윤리규정을 중시하는 자는 부패할 수 있지만, 자신을 위하는 자는 부패하기 어렵습니다. 이념에 빠진 사람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딱딱한 이념을 세상에 구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념과 현실 사이의 엇박자를 해결하지 못하고 억지를 부리다가 쉽게 독재자가 되거나 실패한 통치자가 됩니다....현재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은 어떻습니까? 독립적 개인이 아니라 폐쇄적 진영이 정치를 하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이 염치가 사라진 것에 있다고 봐요. 정치인들이 자기로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진영의 이익을 위해 논리도 법도 마음대로 해석하고 주물러요. 그런데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지 않고 진영이 요구하는 이념의 수행자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 장에 나오는 총욕약경(寵辱若驚)은 칭찬을 받거나 욕을 얻어먹거나 똑같이 놀라는 태도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말인데, 잘했다고 하는 지지율 상승이나 못했다고 하는 지지율 하락을, 똑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 칭찬과 비난에 갇힌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칭찬과 비난의 뜻을 살펴, 스스로를 가다듬는 것만이 진짜 자기를 지키는 지혜라고 노자가 오래 전에 팁을 준 것이다.

자기가 주장하던 것을, 자기가 부정하는 현상

도덕경 34장 불위주 항무욕(不爲主 恒無欲)을 설명하면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최교수의 논변이 펼쳐진다.

"다른 사람이 역사 해석의 주도권을 차지하려 할 때는 역사는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역사 해석의 독점을 반대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한 사람들이 역사해석의 주도권을 잡은 다음에는 자기의 역사해석만을 진실이라고 정해버립니다. 자신의 해석과 다른 것을 이제는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양성을 주장하다가 그것을 성취한 다음에는 다양성을 부정하게 되지요. 양심은 온데간데없고 자신만의 욕망에 빠져버리고 마는 거예요...우리 사회는 지금 양심이 권력화 정치화된 정도가 상당히 심합니다. 빨갛게 권력화된 것이냐 파랗게 권력화된 것이냐 하는 차이만 있죠....혁명 전까지는 혁명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만, 막상 혁명 안으로 들어가면 혁명이 시야에서 사라지죠. 이제 권력과 완장만 보입니다."

외국언론에 '신조어'로까지 등장한 한국의 부끄러운 정치관행인 '내로남불'. 그 내로남불의 심리적 파행과 전도(轉倒)의 양상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설명한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2500년전 노자의 입을 빌어서, 불위주(不爲主, (객의 마음을 잊고) 섣부른 주인행세를 하지 마라) 세 글자로 권력의 부끄러움을 수배하고 있다.

진영 속에 있는 자가 협치나 포용을 말할 순 없다

그의 말을 좀 더 따라가 보자.

"진영에 갇힌 자들은 협치를 할 수 없습니다. 포용력을 갖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협치나 포용은 협치나 포용을 하는 주체에 틈이 나 있고 여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틈이나 여백이 없다면, 다른 대립면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죠...조선시대 당쟁이나 진영에 빠져 서로 비난만 일삼는 지금의 상황이나 다를 바가 없죠....심지어 시인들마저도 진영의 틀에 빠져 사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시인들은 자신이 진영에 빠져 허우적댄다고 생각하지 않고 정치를 한다거나 현실참여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시는 어떤 기능적이고 자잘한 필요에는 응하지 않는 것입니다....모든 예술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그것이 기능적인 단계에서는 거의 쓸모없는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쓸모가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어떤 기준이 자리 잡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쓸모는 어떤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거든요."

기준의 눈치를 보게된 시인이 과연 정말 시를 쓰는 시인일 수 있느냐는 서릿발같은 물음이다.

최교수의 언어들에 의하면, 노자는 지금 대한민국의 국회나 청와대, 혹은 사법부나 정부 관료들의 직무실에 저마다 진실의 설검(舌劍)을 들고 들어가, 그 가식과 자기기만과 집단광기와 새로 쌓기 시작한 적폐까지를 하나하나 성토해가며 그 부끄러움의 전모를 소환할 기세다. 이런 도덕경을 읽어보았는가.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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