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변창흠 뒤 아른거리는 ‘김수현 사단’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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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황재희 기자
입력 2021-03-1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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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완성할 적임자서 '공공의 적'으로

  • 사태 해결되도 정부 '아킬레스 건' 작용할 듯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여권에서 변창흠 국토부 장관에 대한 경질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변 장관에 대한 경질 언급은 부적절하다"며 일단 선을 그었다. 2·4 부동산 대책과 3기 신도시를 통한 주택공급 정책이 흔들리면 이번 LH 사태와 함께 현 정권의 뿌리부터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LH 사태는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반드시 털어야 할 무거운 숙제다.

청와대에서는 변 장관을 손쉽게 내치기엔 부담스럽다. 변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하반기 부동산 정책 마침표인 토지공개념을 통한 주거복지를 실현할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토지공개념은 19세기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주장한 사상으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인 김수현 청와대 전 정책실장이 소개한 개념이다. 김 전 실장은 떠났지만, 아직도 청와대에는 그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청와대, 여당 '변창흠 경질' 입단속··· 안팎에서 "양자택일하라" 불만 쏟아져

11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은 변 장관의 거취와 관련해 "아직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거취를 이야기하긴 이르다"면서 "조사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2·4 공급 대책을 주도하는 국토부 장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자칫 잘못했다가는 공급대책에 지장을 주고 부동산 시장에 잘못 영향을 줄 수 있어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이 '변 장관 경질'과 '부동산 공급대책 추진'이라는 두 가지 카드 중 하나는 버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4‧7 재‧보궐선거가 코앞인 데다 대선까지도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악재가 연달아 터지며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당 관계자는 "아직 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 청와대도 경질에 신중한 만큼 당 지도부는 입단속을 철저히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개별 의원들 사이에서는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는 만큼 변 장관의 거취 문제를 하루빨리 결정해야 한다'는 원성이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당 안에서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 한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변 장관에 대한 경질 언급이 세게 있었는데, 청와대와 민주당에서 '조사를 먼저 하고 상황을 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면서 의원들이 경질이나 사퇴를 주장하기가 어려워졌다"며 "그렇게 주장하게 되면 당 지도부와 엇박자가 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관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다른 한 중진 의원은 "많은 국민들이 집 하나를 장만하기 위해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다)하는 이런 상황에서 LH 사태가 터지면서 정말 분노하고 있는데 상황을 좀 더 보자고 이야기하는 당의 대응이 너무 안이하다"면서 "결정은 (VIP가) 따로 하겠지만,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더 이상 결단을 미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 다른 중진의원도 "다른 의원들의 생각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변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민심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어서 하루빨리 사퇴해야 그나마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는 지도부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실제로 사퇴나 경질의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막판에는 청와대에 변 장관의 경질을 요청하거나 변 장관에게 스스로 사퇴를 요구할 수도 있다.

김종민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변 장관이 장관직에 있거나 LH 사장으로 있으면서 지휘 책임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면 계속 일을 하는 것이고, 장관 말대로 부족함이 있다면 장관 스스로의 선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변 장관은 '김수현 사단'··· 목 안에 걸린 가시 되나

청와대가 결정을 미루는 배경에는 변 장관이 문 대통령의 하반기 부동산 정책을 마무리할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정권 초반부터 김수현 전 실장이 설계하고 주도했다. 김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인물이다. 참여정부 역시 총 22차례의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을 내놨는데, 이 뼈대를 만든 사람이 김 전 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사회수석을 맡았다. 사회수석의 본래 역할은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것이지만, 김 전 실장이 본래 역할을 넘어 부동산 정책 수립에 광범위하게 관여해 왔다는 사실은 청와대 안팎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금은 김 전 실장의 빈자리를 변 장관이 채우고 있다. 변 장관은 김 전 실장과 서울대 환경대 동문으로, 한국도시연구소에서 빈민가의 주거환경 개선 등을 연구해왔다. 또 김 전 실장이 서울연구원장 재직 시절 SH사장이던 변 장관과 함께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변 장관의 연구성과는 취약계층의 주거와 공동체 연구, 임대주택에 관련된 것이 많다. 2014년 소장을 맡았던 한국도시연구소는 1980~90년대 쪽방촌·판자촌 등에서 현장 활동을 했던 '도시빈민연구소'에 일부 진보 성향 학자들을 영입해 1994년 출범한 단체다. 인사의 상당수가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신봉자들로 알려졌다. 토지 사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세금으로 공공이 환수해 주거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한국도시연구소 소속 주요 인사로는 김 전 실장과 변 장관 외에도 강현수 국토연구원장, 최병두 대구대 교수, 김용창 서울대교수, 하성규 주택관리연구원 원장 등이 있다. 이들은 재개발로 인한 강제퇴거 문제와 쪽방·고시원 등 취약계층 주거 형태, 공공임대주택 주거복지 연구 등을 해왔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변 장관을 시장 전문가보다는 주거복지 전문가라고 평가한다.

실제 변 장관이 취임 후 내놓은 첫 번째 작품은 '2·4 부동산 대책(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이다. 정부는 해당 대책에 대해 "주택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해 서울 32만호, 전국 83만호의 주택 부지를 공급하겠다는 내용"이라고 홍보했지만, 방점은 사업방식의 주체가 민간에서 정부로 바뀌는 데 찍혔다. 개발 절차를 단축하는 대신 토지소유자들이 소유권을 정부, 지자체, LH·SH 등 공기업에 넘겨 기존 민간 조합을 해산하고 공공이 사업을 주도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김수현-변창흠 사단의 한국식 토지공개념 실험이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가 토지 이익을 균등하게 배분할 '공공의 선'으로 칭한 공기업에 대한 믿음이 바닥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임원은 "LH사태가 일단락되더라도 이번 사태가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처럼 따라다니며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라며 "정부가 집값 폭등의 '공공의 적'으로 지목한 재건축 조합들의 탐욕과 공기업 직원들의 탐욕이 다르지 않음이 매우 천박한 방법으로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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