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재개 vs 연장 논란...당국 ‘신뢰 회복’ 노력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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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기자
입력 2021-01-1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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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아주경제]


3월 예정된 공매도 재개 문제를 두고 여의도가 들썩이고 있다. 금융당국이 제도 개선안을 준비 중이지만 증권가는 물론 정치권까지 공방이 확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공매도 문제의 핵심이 '불신'에 있는 만큼 재개 시점에 연연하기보다는 확실한 제도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에 1969년 도입된 공매도 제도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차례 논쟁을 일으켜왔다. 문제가 나타나면 일부 내용을 수정하거나 보완 기능을 신설하는 땜질식 처방이 이어져왔다. 업틱룰(직전 가격 이하의 공매도 호가 제출 금지) 도입, 무차입공매도 금지 등 유의미한 조치도 있었지만 금융선진국 수준까지 제도 정비를 마치는 데에는 실패했다. 특히 여전히 수기 거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공매도 관련 대차거래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투자자 반발·정치권 비판 직면한 금융당국

공매도 재개 시점이 50여일 앞으로 다가오며 개인투자자들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커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 '총대'를 멘 가운데 양향자 최고위원 등이 동조하며 금융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일 문자 공지를 통해 3월 15일 종료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재차 밝혔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6월 공매도 금지 조치가 한 차례 연장된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금융당국이 재연장을 결정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공매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반발 역시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 코스피가 3000선을 돌파하며 지수 안정이라는 명분은 약해졌다. 다만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안이 이제 막 국회 논의를 통과했다는 점, 그간 거래소의 조사를 통해 증권사 등 시장조성자들의 무차입 공매도 사실이 일부 확인되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의 강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수면 아래 감춰져 있던 일들이 드러나며 적어도 문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기 전까지는 공매도 재개 시점도 미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지난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해 공매도 가능 기간 동안 하루 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이 6541억원이었다고 밝히며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이 개인투자자들의 보호보다 기관투자자들에게 아직도 쏠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금융투자업계 출신 국회의원으로 꼽히는 김병욱 민주당 의원의 경우 언론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의 효과에 따라 공매도 재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매도 재개해도 '폭락' 가능성은 낮아

다만 학계와 금융투자업계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공매도와 주가 하락의 관계에 대한 연구결과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공매도의 순기능이 부작용보다 크다는 것은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증권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이 개최한 '공매도와 자본시장' 심포지엄에서 변진호 이화여대 교수는 "평균적 공매도에 대한 연구 결과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장 공매도가 재개될 경우 주가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현재 코스피가 3000선을 넘어 순항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와 2차전지 분야 대형주들의 주가가 급격히 상승해서다. 이들 종목의 경우 공매도가 재개되더라도 물량이나 가격 탓에 영향력이 크지 않다. 대형주에 한해서만 공매도를 허용하는 홍콩도 공매도의 영향력이 중소형주보다 덜하다는 이유로 제도의 근거를 대고 있다. 3월 16일부터 공매도가 허용되더라도 지수가 폭락할 가능성도 적은 이유다.

과거 공매도 금지 이후 주가 흐름도 폭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려졌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가는 공매도 재개 6개월 이후 오히려 18%가량 상승했다. 두 번째 금지 조치가 있었던 2011년의 경우에도 주가는 유럽발 유럽 재정위기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까지 2000선까지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폭락을 유발했던 요인들이 해결되면 공매도의 존재 여부가 주가 흐름에 끼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지금처럼 지수에 대한 과열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매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매도가 갖는 '가격 발견' 기능이 주가 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연이은 임상 실패로 업종 전반의 주가가 폭락했던 제약·바이오 업종이 대표적 사례로 언급된다. 당시 임상 실패를 예측한 공매도 자금이 없었다면 주가가 더 치솟으며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재개 여부에 대한 논의보다 제도 개선이 우선 

개인 투자자들과 금융투자업계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안도 윤곽을 드러낸 상태다. 불법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적발을 위한 인프라와 조직도 한국거래소 등에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골드만삭스의 불법 공매도 사례 등 일부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과태료 부과에 그쳤던 처벌 수위는 대폭 높아질 예정이다.

공매도 금지 조치에서 제외되며 최근 개인 투자자들의 비판이 집중됐던 시장조성자 제도의 경우 일부 공매도 거래를 금지하고, 업틱룰 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일정 유동성에 도달한 종목은 시장조성 종목에서 제외된다. 이와 함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비판받던 공매도 시장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인 투자자들도 쉽게 이용 가능한 대주 서비스도 내놓기로 했다.

일본 등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비중이 높은 국가 사례를 참고해 한국증권금융 주도로 중앙집중형 시스템(K-대주시스템)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대주 서비스는 NH·신금투·키움·대신·SK·유안타 등 6개 증권사만이 제공하고 있으며 이용 규모도 크지 않다. 아울러 공매도를 위한 기관들의 대차 거래의 경우 위·변조 방지를 위해 △종목 △수량 △계약일 △거래 상대방 △대차기간 △수수료율 등 관련 내용을 전산화해 보관하도록 했다.

다만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안을 두고 부족한 점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법 공매도를 유발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팻 핑거(Fat finger·주문 실수)' 문제에 대한 보완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발생하는 불법 공매도는 대부분 잘못된 수량 입력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현재는 이메일, 메신저 등을 통해 주식을 빌린 뒤 공매도 주문을 내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주문 실수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는 지난 2019년 제정된 모범규준을 통해 증권사들이 착오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수로 인한 무차입 공매도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해외 주요 선진국처럼 대차 거래에 있어서도 별도의 전산거래 플랫폼을 이용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지난 13일 발표된 시행령 개정안에서 현재 사용되는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한 대차 거래도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직접 개인투자자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는 등 금융당국이 과거보다 공매도 문제 개선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대차거래 관행 등의 문제는 현재 개선안으론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공매도에 대한 불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향후에도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다시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재개 시점을 고집하기보다는 개선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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