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SNS 규제에 흔들리는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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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호 모바일부 부장
입력 2020-11-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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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1월 20일 퇴임하면, 그동안 누려왔던 트위터의 무삭제 특권도 사라진다. 트위터는 일반 이용자와 달리, 현직 국가 지도자와 선거 후보자들에게 무삭제 특권을 준다. 이들의 글은 트위터의 규약을 위반해도 삭제되지 않는다. 글의 진위를 떠나 사람들이 일단 열람할 수 있게 그대로 둔다. 공익을 위해서다. 만약 자연인으로 돌아간 트럼프가 거짓이 담긴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면, 해당 글은 즉시 삭제되고 계정까지 동결될 수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운영기업의 게시글 규제에 대한 논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SNS가 정치와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고, 게시글 규제가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SNS의 등장 이후 사람들의 게시글은 가시화(可視化)됐다. SNS의 게시글이 ‘민의(民意)’를 반영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민의가 잘 반영됐는지를 떠나, 언론이 그 발언들을 기사로 재생산하면서 새로운 쟁점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대선을 앞두고 ‘통신품위법 230조’라는 생소한 법률이 큰 화제가 됐다. SNS 운영기업은 이용자가 쓴 게시글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며, 문제가 된 게시글을 임의로 삭제할 수 있다고 명시한 법이 바로 통신품위법이다. 이 법에 따라 이용자가 위법적인 콘텐츠를 게재해도 SNS 운영기업은 면책됐다. 그래서 SNS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통신품위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줬기 때문이다. 

올해 트럼프 대통령의 게시글에 트위터가 ‘사실확인 필요’라는 경고 딱지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SNS 운영기업의 게시글 규제가 논란이 됐다. 트럼프는 “보수적인 의견을 제한하고 있다”며 크게 반발했고, 경고 딱지를 붙인 근거가 된 통신품위법 230조를 재검토하라는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미 사법부는 SNS 운영기업이 게시글을 삭제할 때는 그 근거를 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법 개정을 공표했다. 트럼프는 “트위터는 제어 불능 상태”라는 트윗도 남겼다.

바이든도 통신품위법 230조의 폐기엔 찬성한다. 트럼프와 폐기 이유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민주당은 운영기업이 책임지고 게시글 내용을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짜뉴스와 사생활 침해, 아동 포르노가 SNS에 방치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바이든은 자신을 비판한 정치광고의 게재를 허용한 페이스북을 문제 삼고 있다. 공개 석상에서 마크 저커버크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에 대해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잘못된 정보가 SNS를 통해 확산하지 않도록 운영기업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통신품위법 230조의 재검토에 찬성할 만큼 SNS 운영에 대한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사진=트럼프 대통령, 바이든 당선인 페이스북 자료 사진)  


선거운동이 보수와 진보를 양분시킬 만큼 격해지자, 게시글을 관리하는 운영기업의 정책은 더욱 주목받았다. 게시글 삭제와 경고 딱지가 검열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어느 진영에 유리하게 작용했는지가 관심사가 됐다. SNS 게시글의 관리 체제에 대한 비판은 나날이 거세졌다. 통신품위법 230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기운은 더욱 고조됐다.

마크 저커버크(페이스북), 잭 도시(트위터), 순다르 피차이(구글) CEO는 지난달 28일 화상으로 열린 상원 공청회에 참석해 3시간 40분 동안 열변을 토했다. 공청회의 주제는 '통신품위법 230조가 빅테크 기업의 악행을 조장하고 있는가'였다. 잭 도시는 “230조는 표현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는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법률”이라고 강조했다. 저커버그는 통신품위법 230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인터넷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어서 통신품위법이 제정됐던 당시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선 법안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한 발 물러섰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73%가 ‘SNS는 정치적인 의견이 담긴 게시글을 검열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SNS 운영기업의 게시글 관리가 이용자들의 불신을 자초했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2016년 대선 이후 SNS는 가짜뉴스를 퍼뜨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잘못된 정보에 경고 딱지를 붙이는 팩트 체크 정책이 도입된 것이다. 가짜뉴스를 잡으려는 게시글 관리가 검열 논란을 일으키며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언론기관은 SNS 운영기업이 팩트 체크를 방패 삼아 보도내용을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는 보도의 자유가 없다. 통신품위법 230조 때문에"라는 트윗을 날린 적이 있다. 1996년 제정된 통신품위법 230조가 20년이 지나 표현의 자유를 지키던 방패에서 검열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SNS의 원동력으로 여겨졌던 표현의 자유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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