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까지 와서도 ‘유죄’라던 검찰, 갑자기 입장 바뀐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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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종 인턴기자
입력 2020-11-0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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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 송우웅씨 사건... 당시 중앙정보부, 언론사에 위장취업시켜 정보원 활용

  • 활용가치 없어지자 갑자기 체포... 간첩으로 처벌

서울고등법원 전경 [사진=서울고등법원 제공]
 

1971년 11월, 고(故) 송우웅씨는 중앙정보부에 체포돼 '안가'로 끌려간다. 보름 동안 갇혀 있던 송씨는 우여곡절 끝에 풀려났다. 하지만 그는 중앙정보부의 '정보원'이 돼야 했고, 이듬해 1월 월간 '스포츠 한국' 취재기자로 위장입사하게 된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스포츠 한국' 사장 정모씨를 간첩으로 몰아가려 했다. 중정은 정보원을 이용해 정씨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적절한 시점에 정씨를 체포할 명분을 얻으려 했다. 송씨는 중정 수사관들의 감시와 통제 아래에서 활동하며 정씨에 대한 동향을 일일 보고했다.

1년 정도 중정의 '프락치'로 활동하던 송씨. 그러나 송씨는 느닷없이 중정 수사관들에게 체포돼 끌려간다. 그를 체포한 곳은 중정 '5국'. 중정은 이미 그를 정씨와 공범으로 만들어 둔 상태였다. 정씨 등과 함께 일본으로 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접촉했다는 혐의가 적용돼 재판에 넘겨졌고 법원은 그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송씨는 억울하다며 상소했지만 모두 기각돼 형은 확정됐다.

송씨의 억울함은 세상이 바뀐 뒤에도 풀 길이 없었다. 2018년 10월 송씨의 아들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재심이 받아들여졌다. 법원은 2019년 9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재심에서도 '유죄' 주장하던 검찰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1부(김미리 부장판사)는 지난 2월 19일 해당 혐의로 실형을 살았던 송씨 재심 선고공판을 열고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은 모두 증거능력이 없거나 나머지 증거들만으로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심에서도 검찰은 마지막까지 원심(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고 구형한다. 심지어 재심 1심이 무죄판결을 내리자 항소장까지 냈다. 나머지 혐의는 무죄라고 해도 밀항을 한 혐의는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던 검찰은 지난달 28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입장을 바꾼다. "밀항법 위반에 한해 항소를 제기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현명하게 판단해주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오히려 "오랜 기간 피고인의 명예 권익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변호인에게 경의를 표한다"면서 "공권력에 의한 불법구금 피해 호소 주장을 시정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송씨가 마침내 억울함을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과거사 사건 기계적 상소 않겠다'던 검찰
2017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인권을 침해했던 사건에 대해 검사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총장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후 지난해 대검은 '과거사 대응 매뉴얼'을 내기도 했다. 당시 대검 공안부 "재심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될 시 일률적인 상소를 지양하고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하면 상소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과거사 사건 재심에 대해 기계적으로 상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납북됐다가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어부들이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에도 검찰은 항소했다.

법조계는 이에 대해 "검찰이 신중했으면 한다"는 시각이다. 경기도의 한 변호사는 "과거사 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소를 하는 데 신중했으면 한다는 입장이다"라며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으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게 매뉴얼인데 본건 같은 경우도 기계적으로 상소한 측면이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송씨에 대한 재심 항소심 선고기일은 오는 27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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