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 눈앞] ①文정부 최대 역점 과제 완성…‘독 되나, 약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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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철 기자
입력 2020-08-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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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대선 공약 ‘단골손님’…DJ 정부서 첫 공론화

  • 盧의 ‘못 이룬 꿈’…文, 자서전서 “끝내 못한 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른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후속 3법’을 통과시키면서 검찰개혁에 속도가 붙게 됐다.

지난해 공수처 설치법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과 함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여야 간 갈등의 중심에 섰다.

공수처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1호 공약’이라는 점에서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야당 후보였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직자 부패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며 대통령 친·인척과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 판검사, 국회의원 등을 공수처의 수사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정치자금법 위반·공직선거법 위반·부동산 투기·탈세·병역비리 등 10대 부패 및 비위 행위를 ‘대상 범죄군’에 넣었다.

국회 법사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법 일부개정안’, ‘인사청문회법 일부개정안’,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운영 등에 관한 규칙안’ 3건을 의결했다.

공수처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참여정부에서는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공수처 신설을 앞장서 추진했으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 등 검찰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 공수처 수사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된 탓에 정치권의 지지를 받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일”로 공수처 출범 불발을 꼽았다. 결국 공수처는 노 전 대통령의 ‘못 다 이룬 꿈’이자, 문 대통령에게는 ‘회한’로 남은 셈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공수처와 관련해 직접 제도화의 고삐를 죈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공수처의 현 정부에 어떻게 작용할 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공수처는 입법·행정·사법 등 소위 3부 권력이 모두 포함된다는 점에서 그 ‘칼’이 어느 방향을 겨눌지 모르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서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진한 인물이다. 금 전 의원은 이와 관련해 당론에 위배됐다는 이유로 당내 경선에 탈락한 데 이어 당 윤리심판원에게 ‘경고’를 받았다.

검찰 출신이었던 그는 또 다른 ‘옥상옥’의 탄생이 시대적으로,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별개의 사정기관을 만들지 말고, 기존 검찰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물론 홍콩, 싱가포르, 영국 등 공수처와 유사한 반부패기구를 운영하는 나라가 있기는 하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은 “소신이라는 이름으로 20년 DNA가 돼버린 민주당의 공수처를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검찰주의적 대안을 수도 없이 제시한 금 의원의 행위에 대해 평가가 있어야 한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혁의 자살’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검찰이 완전히 정권에 장악됐다. 공수처는 이미 대통령의 노후 보장보험으로 전락한 지 오래”라며 “(문재인 정부의) 최고의 국정과제가 대통령 무사 퇴임에 맞춰져 있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하여튼 문 정권은 집권 5년을 ‘대통령 안심 퇴임’ 준비로 보낸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라면서 “정치개혁은 진즉에 물 건너갔다. 위성정당으로 자기들이 패스트트랙까지 해서 도입한 선거구제를 스스로 무력화시켰다. 정치개혁이 자살해 버린 거다”라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는 이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라며 “애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트라우마에서 탄생한 정권이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공수처의 딜레마는 역대 정권에서 논의과정을 살펴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각종 비리 때마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전가의 보도(傳家寶刀)’처럼 나왔다.

공수처 설치는 1996년 참여연대가 검찰의 권한 분산을 골자로 하는 부패방지법 입법청원운동을 벌이면서 처음 공론화됐다. 1997년 대선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대선 공약으로 삼았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공직비리수사처로 대체하는 검찰 개혁안을 추진했지만 검찰과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이회창 총재 역시 공수처 도입에 찬성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때는 야당인 한나라당이 이를 반대했다.

현재 집권여당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도 2004년 6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언론 인터뷰와 인사청문회에서 공수처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기소권이 이원화되는 것과 대통령이 사정집행기관을 직접 운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정적 의사를 피력했다.

이 후보자는 기소권의 부여 및 대통령 직속 기관화에 반대한 것으로 해석됐지만, 미래통합당은 이를 집중 거론하며 정치쟁점화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2010년에 공수처 설치 찬성 입장을, 한나라당의 후신이면서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은 공수처 법안까지 발의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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