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혁명가들] 김세호 전 국토부 차관 "스마트 교통, 베테랑 전문가 적극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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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은 기자
입력 2020-06-1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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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 고속철 산역사..."무조건 좋은 솔루션 없어, 사회적 합의 바탕돼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통·모빌리티, 네트워크, 물류유통 등이 유망 산업군으로 주목받으면서 미래 교통의 개발과 상용화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본지는 한국 항만, 도로·철도 등 교통산업의 기반을 닦은 사람들, 현재를 살며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하는 '교통혁명가들(Transportation-frontier)' 기획을 총 9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사진 = 김세호 전 국토교통부 차관]

"저 혼자 한 게 아니거든요. 민간, 정부, 정치권, 언론 각자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당시에는 반대하는 분도 많았고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우리 사회 전체가 그만큼 레벨업이 돼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인천공항 개항, 고속철도 개통 등 한국 교통발전사의 심장에서 뛰었던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차관은 18일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짧지만 굵었던 공직생활을 뒤로 하고 지금은 인하대 아태물류학부·물류전문대학원 교수로 지낸다. 그러나 여전히 후배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과거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며, 선배로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런 교훈을 전달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 연대하는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네가 있었기에 나도 있었다"며 늘 스스로를 낮추는 그지만, 70~80년대 교통·물류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을 때부터 이 분야에 몸담아온 교통분야 전문가다.

그는 "87년도 일본에 갔는데 '물류6법'이란 게 있더라. 당시 우린 물류, 화물, 유통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관계법이라곤 자동차운수사업법에 화물자동차 관련 내용이 들어가 있는 정도가 다였다"며 "충격이 컸다. 안 되겠다 싶어 물류 관련법 초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또 "80년대 초 도시교통 관련법 대부분은 제 손을 탔다"며 "당시에는 사무관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현실에 맞게'를 재차 강조했다. 성공한 기술이라고 무조건 들여오기보다, 한국 현실에 맞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조건 외국에서 성공했다고 좋은 거냐, 기술발전했다고 좋은 거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며 "우리나라는 대중교통이나 택시제도가 나름대로 정교하게 발달돼 있다 평가받는 나라인데, 이걸 완전히 망가뜨리는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부작용은 어떡할 것이냐. 공유경제가 각광받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 고속철을 들여올 때도 이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그는 "고속철 계획 당시 독일, 프랑스, 일본 3개 국이 경쟁했는데, 프랑스의 동력집중식 기술을 채택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일본의 동력분산식이 더 나았을 것 같다고도 하고, 당시에는 자기부상열차로 하자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기술이라는 하나의 영역만 고려하는 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술이전이나 가격 등 여러가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속도라는 것도 어느 선까진 의미 있지만, 그 다음부턴 영업환경이 더 중요하다"며 "독일이나 일본이 시속 500㎞짜리 고속철을 개발할 줄 몰라서 하지 않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어 "목표가 뚜렷하다면 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시속 500㎞짜리를 가지고 있는데 서울-부산만 왕복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나"고 했다.

현실에 맞게 가면서 '철학'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김 전 차관은 "사회적 컨센서스(Consensus·합의)를 먼저 이루고, 바람직한 철학이 뭔지,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어떻게 제도화할 건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그래야 민간도 기술개발에 있어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가 바라볼 때 꼭 필요한 철학은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김 전 차관은 "지금 전세계적 화두는 서스테이너빌리티, 즉 지속 가능성인데 이를 교통 분야로 끌고 오면 결국 대중교통 중심, 특히나 무인자율대중교통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계획하고 있는 '스마트시티'도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거두려면 이런 철학이 녹아들어야 한다고 본다"며 "송도 스마트시티의 경우 주민들이 중앙공원까지 가기 위해선 자동차가 필수인데 어떻게 보면 계획 단계에서 철학이 바탕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청정도시라는 제주도 역시 승용차 없인 못 움직이는 도시가 돼버렸는데 안타까운 부분"이라고도 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도시를 '특색' 있게 만들고, 이로써 먹여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철학의 한 영역"이라며 "이런 고민이 없으면 도시가 베드타운화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동해북부선' 연결 역시도, 정치·감정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전 차관은 "동해북부선에 실을 만한 컨테이너 물동량이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며 "이 철도가 어떻게 북측을 바꾸고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지, 당장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냉정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했다.

그가 생각할 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축적된 전문성'이다. 이는 굵직한 사업을 추진할 때 '엔진'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결국 국가의 경쟁력으로 남는다. 해외 발주처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도 결국 많은 경험을 가진, 많이 아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경험으로 안다.

김 전 차관은 "전문성이 얕은 사람이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주저없이 이야기하고 때로는 전문가보다 비전문가가 이기는 현상은 과거나 현재나 여전하다"며 "개인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정책결정이 늦어지면 국가적 손실이 크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새 기관장이 오면 전임자가 한 일은 백안시하는 경향이 아직 우리 사회에 짙다"며 "한국이 대역사를 이룩했지만 축적된 전문성은 생각보다 취약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도 프랑스나 일본 등 선진국 정부와 같이 전문성 있는 인재를 계속 유지하고 갈고닦는 걸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컨대 시니어가 활동할 수 있는 협회 혹은 법인을 만들어 평소에는 최소한의 예산만 지원하고 국내외 프로젝트가 있을 때 이들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해온 사람들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필요할 때 이들을 한데 모을 시스템을 만드는 건 중요한 문제"라며 "해외 발주처는 과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길 듣고 싶어 하는데 아무도 없다는 게 뼈아픈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서 "예전 우리 때보다 사회가 다원화하며 공무원의 역할이 축소됐다 여길 수 있지만, 여전히 어젠다를 던지고 국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은 공무원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규제, 통제에만 공무원의 힘이 있다고 생각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전문성, 미래를 보는 시각을 갖고 이를 제도화해서 권위를 얻어야 한다"며 "안주하지 않고 계속 공부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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